중단하면 다음 날
아무리 애써도 달라지는 색 배합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는 큰 작업이므로 찔기게 붙어 색깔을 마무리하고 어둡진 바깥에 나오니
비가 오고 있었다.
아니, 빗님이 오시고 계셨다.
이런 날은 아들에게 김치 우동을 한번 끓여 주고 싶다.
몇 번 끓여 보니
술안주로도, 양식에 찌든 햇 것의 입맛에도 맞는 듯 싶었다.
나는 요즘 술에 취하지만 않으면 제법이다.
겁나기도 무서운 세상이지만
'저 여자는 누구일까?'로만 여겨지는
그런 곳에서 당번 청소도 열심히 하곤 한다.
할머니들이 주로 오시는 면사무소 요가 시간에 나는 개근생이다.
.
.
세월이 앞으로 내 앞에 어떻게 펼쳐질까?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연필을 깎다 보면
수북한 잔해에 어울리지 않는 날카로운 연필심과
여리게 받치고 있는 나무 기둥 사이에
그림으로 펼쳐질 세상을 그리는 나 자신도 모르니 말이다.
나는
끝을 만지작거린다.
그의 끝이 그랬듯이
나의 끝이 지리멸렬하거나
포장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