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 열심히 하시죠?라고 물어 오면
나는 늘 내 맘에 안 드는 대답을 하고야 만다.
'열심히는 하죠.'
난 왜 '는'자를 붙여야만 했을까?
나의 맘을 잠시 헤아려 본다.
아마 나는 보통의 성과를 염두에 두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은연한 서글픔이 그림 뒤에 숨어
창작의 욕심보다 먼저 '바보같이!'라는 혼잣말이 철거덕 내 맘에 들어와 앉아 버릴 때.
그림이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적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를 종종 생각했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자연의 노력은 아무리 칼바람이 불어도 서글프거나 밉지가 않다.
부뚜막에 장작을 지펴 음식을 하고 난 뒤 그 주위는 오랜 시간 뜨거움을 잃지 않는다.
심지어 전기포트에 커피 물을 끓여도 주전자를 데워 준 자리는 빨리 차가워지지 않는다.
그 열나는 열을 다시 지펴가며
이름 없는 화가들은
자신만의 연금술사가 되기 위해 꿈으로, 희망으로 용해된다.
'운빨'을 사유의 도구로 삼아
그림을 사서 파는 상인보다 더 상인처럼.
아니, 좀버러지같은 상인처럼..
더럽게 그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슬픈 현실.
하지만 그것을 '좋다더라'하며 사놓고
물어 달라는 인간들은 당연히 오를 것이라 생각하고 사들인 아파트도 물어 달라 할 것인가?
세상이 쓸데없이 꾀죄죄해 보이는 경우가 더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