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피면 안돼!

by 사포갤러리








집.jpg Watercolor on Paper/ Life(12호)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내게 궁금했어.

난 왜 적당한 슬픔이 될 수 없는 걸까?

난 왜 적당한 사랑이나 미움을 모르는 걸까?

난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허사 한 감정을 사그러 뜨릴 허영이나 사치를 경험해 봤기나 했을까?

난 과연 이 슬픔을 당신 뜻대로 승화시킬 수 있을까?


나이 들수록 입에 단 것이 싫어.

그런데 왜 지금 보이지 않는 당신을 향해

매일 구걸하듯 "바람 피면 안돼!"

단 말을 퍼 놓는 것일까?



영심이가 말이야.

당신이 아파 죽을 때쯤

맨날 내게 와서 위로하는 말이

천국에서 다시 만나면 된다 했어.

그래서 조금 슬픔을 넘는 생각을 하곤 했지.

그런데 당신이 가고 나니

내가 따라 죽을까 봐

천국에 가면 천사로 변하니까

얼굴을 못 알아봐서 만날 수가 없다는 거야.

아마 벌써 다른 천사와 바람이 났을 거란 얘기지.

이런, 이런...





나팔꽃.jpg Watercolor on Paper/Life(12호)






요즈음 당신이 간 지 한 달쯤 지나니

가끔, 아주 가끔...

우리는 더러운 이별이 아니고

존재를 초월한, 마음대로 헤어질 수 없는 이별이

다행이었다고 생각해.



당신도 이해하지?

내 자아에 깊이 매료된 순박한 자아의 당신은

오히려 나의 청량한 꿈이었어.

하지만 오늘은 피곤해서 그 꿈 마저 제대로 뵈는 게 없어.

그런 이유로

당신이 늘 술 마시는 나를 싫어지만

딱 한 잔만..

한 잔은 너무 심하다, 두 잔은 돼야지...

한 잔만 더 마실까?

에라이 모르겠다.

마시자, 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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