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아야 하고
잘 죽어야 한다...
죽음에 대해서의 마음가짐이나 보편적인 경고나
대처하는 선악의 경우나 두고 갈 주위에 관해서도
자주 생각한다. 요즘 들어.
시인 오규원의 '죽고 난 뒤의 팬티'에 극히 동감해서
정말 몸이 안좋은 경우는 팬티에 신경쓴 적도 있지만
아마 나는
덜 마른 물감이 나의 죽음을 조금은 애잔하게
만들 것이라는 상상을 가끔 하곤한다.
사람들이 가끔 작업실을 방문할 때
덜마른 물감이 옷에 묻지 않도록 늘
주의를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렇게 쌓인 그림들은 나의 부재와 함께
어떻게 없어질까?
레테의 강을 건너면.
이 세상을 망각할 수 있다면.
그래서 내게 그림보다 전부인 것을 만나
내 그림을 남의 그림 보듯 마주친다면.
'누구의 호작질인지 대단하네.'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저승과 이승은 간극의 차이라는데
죽지 알고는 따라갈 수없는 머나먼 길이라는 사실이
오늘따라 참으로 힘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