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다보면
밑에 깔린 물감은 언제고 그 정체를 불안하게나마
보여준다.
물감을 긁어내고 올리고...를 반복하는 나의 작업에서는
물감을 올린 후 아무리 지우려고해도
앞선 작업의 물감이 흔적없이 사라지는 법은 없다.
나의 그림에서만큼은 또한 그 흔적이 필요하다.
그것은 많은 여운을 주며 아우라를 만드는데
적잖이 도움을 주지만.
냉정하게 지우고 싶은 세상의 일들.
지나간 일은 잊기도 하고 잊혀지기도 하지만
잊히지 않는 일은 잊기 위해
감추어라도 두고 싶은 마음일 때가
종종 있다.
이제 자꾸만 멀어지는 과거 속에만 존재하는 그.
잊은 물건 속에 갑자기 튀어나와 기억속에서만
잊을 수 없노라 말하는 그.
나는 오랜 시간을 없는 그와 함께
현재를 과거처럼 과거를 현재처럼 섞어서 살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과거이고 너는 현재다.'라고 일러주는 그.
나도 그 누구에겐가 과거가 될 때까지
상하지 않는 나로써의 몸과 마음을
가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