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와 둘이 시레기코다리찜을 먹으러 갔다.
코다리는 좀 딱딱한 것이 통으로 누워 있었고
시레기는 온갖 양념에 파묻혀 산발한 머리카락처럼
길게 엉켜 있었다.
하나는
'많이 드세요.'하더니
코다리 살과 먹을만한 짧은 시레기를 어줍잖은 젓가락질로
골라내기에 힘들어 보였다.
가만히 보니 옆에 가위가 놓여 있어
쓱싹쓱싹 내가 잘라 주었다.
하나는
'아, 그런 방법이 있구나.'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하나가 잘라주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는데
안잘라 주는 것이 아니라 몰라서 못자르는 것이
더 좋고 편한 생각이 들었다.
재바르게 먼저 잘라 줬다면
다음에도 당연히 또 잘라주길 바랬을 것이다.
어느덧 이해고 오해고 뭐고
형식에 편승하지 않은 삶에 가까워진 것일까?
그 사람도 그래서
항상 내가 자르고 챙겼는데
그 사람에게는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그는 보이는 기대였던 것이다.
살면서
희망처럼 보이지 않는 기대가 아니면
구기고 찢은 다음 꽁꽁 싸매서 잘 치워 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