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by 사포갤러리








20151106_134720[1].jpg Sappho-Metaphor/Mixed Media








내가 어릴 때

맘대로 산으로 들로 뛰어 다니면서 따뜻해 보이지 않는 세상을 느낄 때면

나는 속으로 '내가 어른이 되면...'이란 if의 가정을 머리 속에 꼬깃꼬깃 접어 넣곤 했었다.




내가 어른이 되면

내가 먼저 빵을 배불리 먹은 다음 나와 허물없어 보이는 사람들 순서대로 빵을 나눠 줘야지.

내가 어른이 되어 아이가 생긴다면

매일 따라 다니며 밀밭의 문둥이에 놀라지 않도록 감싸 줘야지.

내가 어른이 되면

마당에 오래된 등이라도 밝혀서 달빛에 눈을 비벼 가며 침을 묻혀 글을 쓰는 일은 없도록 해야지.

내가 어른이 되면

산너머 놀러 갔던 친구 호빈이네.

놀다가 갑자기 어두워진 날씨에 돌아갈 길이 겁나서 울자

호롱불에 날 데려다 주시고 홀로 돌아가신 호빈이 어머니께 맛있는 케이크 사드려야지.

내가 어른이 되면

아버지처럼 자신의 술이 우리의 밥보다 앞서는 그런 위장의 신호는 절대 지키지 않을 거야.



그리고

난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

그런 if가 실현되었는지는 잘 모르겠고...

이젠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엉뚱하게도


어릴 때 꿈꾸던 미래의 if가 아니라

뒷걸음질 쳐 사라져가는 if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돌아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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