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시대에서 영화 보기의 고단함..
영화를 보며 생각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 한다. 하지만 이 글은 <승리호>라는 최근 화제였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영화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기도 하고 굳이 나까지 이 영화를 둘러싼 약간은 소모적인 논쟁에 참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영화 이야기가 아닌 영화를 보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OTT를 통해서 영화를 보는 것이 당연한 뉴 노멀 시대의 영화 관람에 대해서.
<승리호>를 비롯해서 요즘 하나의 트렌드처럼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하는 한국 영화들이 늘어나고 있다. 처음부터 넷플릭스를 통한 배급을 생각한 영화들이 아니지만. 첫 번째 시작은 <사냥의 시간>이었다. <파수꾼>이라는 영화로 여러 상을 받은 윤성현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인 <사냥의 시간>은 제작 전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대중들에게 호감도 높은 젊은 배우들이 다수 출연하면서 그 관심도는 더 커졌다. 하지만 영화는 코로나로 인해서 개봉을 몇 번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넷플릭스를 통한 개봉을 선택하게 된다. 이런 선택은 어쩔 수 없는 과정이었다고 생각된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본인이 모든 비용을 내서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닌 이상, 영화 투자자에게 그만큼의 보상을 해주지 못하면 영화의 제작은 점점 더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사냥의 시간>도 결국은 영화 제작에 들어간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서 배급권을 넷플릭스에 넘기면서 극장 개봉을 포기한 케이스이다. 이런 선택을 한 것에 대해서는 좋다 나쁘다 말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 나름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은 영화사의 대표이든 투자자이든 아니면 감독 중 누군가 일 것이다. 그리고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다른 결과를 감내해야 하는 이상한 상황이 온 것 같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OTT시대의 영화 보기의 고단함에 대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사냥의 시간>은 우리나라 영화 중에 처음으로 아포칼립스 배경을 소재로 다룬 영화 중에 비주얼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이런 아포칼립스의 분위기를 보여주고 싶은 감독의 욕심이 너무 지나쳐서였는지 다른 부분에는 조금은 신경을 덜 쓴 것 같아서 아쉬움도 있었다. 하지만 충분히 즐길만한 영화였고 나름의 평가를 받을 만한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아포칼립스 배경의 다른 한국영화인 <반도>와 굳이 비교를 하자면 훨씬 나은 연출을 보여주는 장점을 가진 영화다. 그렇지만 영화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이후 대중들의 혹평을 받았다. 이런 반응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만약에 넷플릭스가 아닌 극장에서 공개가 되었다면 이와 같은 극단적인 혹평의 반응이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다. 만약은 만약이니까.
OTT 플랫폼은 그 이름에서 나와 있듯이 누구나 언제든지 쉽게 접근을 할 수 있는 서비스이다. 여기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접근의 용이성은 '쉽게 이탈'할 수도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읽힌다. 이전보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속도 더 빨라지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고. 영화 관람이라 하면 어느 정도의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서 극장이라는 갇힌 공간에서 한 번의 호흡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어디에서는, 언제든 그리고 호흡도 끊어서 영화를 소비할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뀌었다. 개인적으로는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해야 제대로 영화를 감상한 거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관람 환경은 영화라는 매체에게 상당히 가혹한 환경이 아닌가 한다. 필름으로 촬영해서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여러 사람과 같이 관람하는 전통적인 영화의 기준이 변모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사랑이 깊은 단체에서는 아직도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여러 국제 영화제에서는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한 OTT 플랫폼의 영화들에 대한 반감이 존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반감을 인식해서인지 넷플릭스에서는 언젠가부터 세계적인 거장들과 계약을 하고 그들의 작품을 넷플릭스를 통해서 배급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계속 유수의 영화제에 자신들의 로고가 박혀 있는 작품들을 내보내고 있다.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를 보는 것도 하나의 관람 형태라는 것을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노력 때문인지 아니면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만드는 거장들의 네임벨류 때문인지 깐느, 베를린, 베니스 같은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이제는 넷플릭스 영화들이 공식 경쟁부문에 포함되어 상을 받는 것이 어느 정도는 당연한 일이 되었다. 미국의 로컬 시상식인 아카데미 같은 경우는 약간 다른데 여전히 아카데미의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극장 상영을 반드시 해야 하는 조건이 남아있다. 아카데미를 노리는 넷플릭스 영화들은 OTT에 공개되기 1~2주 전에 극장 개봉을 하는 형태로 배급이 진행이 되고 있다. 이런 영화들 중에서 운이 좋으면 국내 극장에서도 같이 개봉하는 케이스가 종종 있다. 조만간 있을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주요 부분의 후보에 오른 데이빗 핀처 감독의 <맹크>, 아론 소킨 감독의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뮤지컬 영화인 <더 프롬> 같은 영화들이 국내에도 넷플릭스에 공개되기 전 극장에서 잠깐 개봉을 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정말 극장에서 개봉을 했다 정도의 의미를 둘 수 있을 만큼 찾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적은 수의 상영관에서 보기 힘든 시간에 말이다. 다른 예로 영화 <그래비티> 우리나라에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2018년도에 만든 <로마>라는 영화도 넷플릭스에서 제작을 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그해 베니스에서 처음 공개가 되고 그 이후 수많은 상을 받은 작품이다. 아카데미 작품상에도 가장 유력했으나 아쉽게도 OTT 플랫폼에 대해 보수적이었던 당시의 분위기 때문에 아쉽게도 작품상까지는 못 받았지만. <로마>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아주 잠깐 극장에서 상영을 했었다. (시네마테크 또는 예술 영화를 전문으로 상영하는 극장을 제외하고)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극장은 정말로 흔하지 않았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흑백으로 제작이 된 <로마>는 그 당시 가장 최신의 음향 기술인 Dolby Atmos로 작업이 되었다. 감독이 영화 속 화면 안과 밖의 소리를 통해서 전달하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 이 최신의 음향기술을 선택을 했고 꼭 Dolby Atmos 사운드 시스템이 있는 극장에서 보기를 권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 음향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극장은 멀티플렉스의 대형관 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멀티플렉스의 가장 좋은 영상과 사운드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상영관은 가장 흥행성이 높은 영화가 차지하는 게 당연하다. <로마>처럼 흑백 화면으로 멕시코의 독립 내전을 시기의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예술 영화를 이런 상영관에서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로마>를 감독의 연출 의도 그대로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었다는 말이다. 그 당시 유일한 방법은 Dolby Atmos 사운드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파주에 위치한 명필름 아트센터에서 보는 것이었다. (파주까지 영화를 보러 갈 사람들이 있을까 하겠지만 이 당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명필름 아트센터에 <로마>를 보기 위해 방문했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해 극장에 가는 것이 힘들어지고 그래서 여러 상영관들이 상영회수를 줄이고 그러다가 문을 닫기까지 하는 상황이다. 대중의 영화 관람 형태도 점점 OTT 플랫폼에 익숙해지고 있다. 닫힌 공간에서 혹시 모를 위험을 무릅쓰고 극장에 가는 것을 꺼려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리고 극장에서 개봉해야 할 영화들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가 되고 있으니 더 영화관을 찾아서 갈 일이 줄어든. <사냥의 시간>이 처음을 알렸고 그 이후 박신혜와 전종서 배우가 주연한 <더 콜>도 개봉을 미루다가 넷플릭스, K-SF를 표방한 <승리호>도 마찬가지의 케이스였다. 얼마 전에는 <신세계>로 유명한 박훈정 감독의 신작도 <낙원의 밤>도 넷플릭스 공개를 결정했다. 올해 개봉을 생각하고 제작을 했던지 아니면 하고 있는 영화들 중에 대부분이 넷플릭스 또는 다른 OTT를 통한 개봉을 이제는 당연히 선택지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 상황이 급격히 호전되어서 이런 현상이 줄어들 수도 있지만 2020년에 개봉을 생각하고 있다가 결국 그렇지 못한 많은 한국 영화들이 넷플릭스에 판권을 넘겨서라도 제작비를 회수하고 싶어서 줄을 서고 있다는 말도 있다.
이야기를 다시 <승리호>로 돌려보자. <승리호>가 공개된 이후 여러 반응 중에 극장에서 큰 스크린으로 광활한 우주에서 펼쳐지는 스페이스 오페라를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는 것을 많이 보았다. 제작사에서 이런 반응을 미리 염두에 두고 다행스럽게도 넷플릭스에 배급권을 넘기면서도 극장 상영 권리를 남겨 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쩌면 극장에서 <승리호>를 관람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을 하는 영화들의 경우 극장에서 보는 것이 불가능한 게 사실이다. 위에서 언급한 넷플릭스에서 제작을 한 영화들이라면 그들이 니즈에 따라서 극장 개봉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OTT 플랫폼을 통해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봐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극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 영화는 그냥 집에서 봐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좋은 변화일 수 있겠지만, 나처럼 영화는 극장에서 관람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는 이런 영화 관람 환경은 너무나 낯설고 힘든 변화이다. <로마>를 보기 위해 파주 출판단지까지 찾아가야 하는 일이 어쩌면 영화를 큰 스크린으로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당연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얼마 전 4K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개봉한 왕가위 감독의 <해피 투게더>를 극장에서 관람을 했다. 매일 상영하는 것도 아니고 하루에 한 번 정도 상영회차가 있는 영화를 어렵사리 보게 되었다. 수 십 번을 본 영화였지만 큰 스크린으로 다시 영화를 관람하니 여전히 새롭고 경이로운 영화였다. 매체가 다양해질수록 다양한 콘텐츠 소비 패턴 또한 다양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구닥다리 같아도 영화라는 매체는 극장에서 계속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