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흐름을 담은 커피 경험에 대해서
올해도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쉽(WBC)이 열리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이에 맞춰서 국가별로 대표를 뽑는 대회가 진행 중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KNBC (Korea National Baristar Championship) 대회가 진행이 되었다. 몇 번 글에서 다룬 적이 있지만 이런 경연이 이제는 너무 특화되어서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지만 스페셜티 커피 씬의 최전선을 확인을 할 수 있는 기회여서 커피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찾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특히나 요즘같이 유튜브가 발달이 된 시대에는 이런 대회의 경연 영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어서 대회장이 아닌 집에서도 조금만 관심이 있으면 예전보다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 KNBC 경연 장면을 보면서 몇 달 전에 열린 US Barista Championship 대회와 비교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바리스타 챔피언쉽 경연은 15분 동안 바리스타가 준비한 3가지 음료 (에스프레소, 밀크 베버리지, 시그니처 음료)를 서빙하는 전체 과정을 심사하는 형태로 진행이 된다. 심사는 4명의 센서리 심사위원, 2명의 테크니컬 심사위원 그리고 1명의 헤드 심사위원이 맡게 된다. 센서리 심사위원들은 바리스타가 준비한 음료가 의도한 데로 맛과 향미를 얼마나 잘 표현했는지를 평가한다. 테크니컬 심사위원은 15분 동안 바리스타가 하는 모든 행동들을 기술적인 관점에서 점수를 매기고 헤드 심사위원은 프레젠테이션을 포함한 다른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모든 대회가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이 되는데 마지막 결승에 오른 6명에 대해서 파이널리스트라는 타이틀을 부여하고 이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바리스타가 그 해의 챔피언이 되는 방식이다. 처음 세계대회 우승을 차지한 모모스 커피의 전주연 바리스타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바리스타 경연 대회에 대한 인지도가 이전보다는 많이 올라갔다.
올해 한국 대회 우승은 연희동에서 디폴트 벨류라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신창호 바리스타가 차지했다. 이미 커피 씬에서 유명한 바리스타이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사이폰을 사용하는 세계 대회에서 입상을 한 기록도 가지고 있는 분이다. 이외에도 여러 분야의 대회에 지속적으로 참여를 했었고 이번이 이런 종류의 경연에 참가하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이번 KNBC에 출전을 결심했다고 하는데 좋은 결실을 맺게 되었다. 보통 경연을 하면 프레젠테이션의 주제가 있는데 이번 신창호 바리스타의 경연 주제는 '커플'이었다. 그래서인지 오프닝 음악으로 젝스키스의 '커플'을 사용했는데 왜인지 모르게 올드스쿨, 복고풍스러운 느낌이 나서 한 편으로는 예스러운 느낌이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본인의 주제를 음악을 통해서 위트 있게 풀어낸 것 같기도 했다. 근데 젝스키스의 '커플'이라는 노래를 모르는 해외 심사위원들에게는 이 부분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이지만...
'커플'이라는 주제에 맞게 경연의 전체적인 모습은 서로 다른 재료들을 매칭 해서 커피의 새로운 경험을 전달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콜롬비아 원두에 에티오피아 원두를 매칭 시켜서 두 원두가 가지고 있는 향미의 뉘앙스를 극대화하는 에스프레소를 그리고 시그니처 음료에서는 오이시럽, 우뭇가사리, 무즙을 얼린 얼음 같이 이색적인 재료들을 매칭 시켜서 커피에서 열대과일의 향미와 질감을 표현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다만 밀크 베버리지는 기존에 매장에서 사용하던 농축 우유를 사용하는 부분은 약간 아쉽기는 했다. 그래도 많은 경연 대회에 참가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15분 동안 물 흐르듯 프레젠테이션을 보여준 부분이 우승을 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근데 이번 한국 바리스타 챔피언쉽 우승자의 경연을 보면서 뭔가 다른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그건 위에서도 잠깐 언급한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몇 달 전에 있었던 미국 대회를 보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은 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같은 바리스타 챔피언쉽 경연이었지만 둘의 경연은 느낌이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약 2개월 전쯤 진행된 미국 대회의 우승은 유튜버로 더 유명한 Morgan Eckroth (모건 에크로스)가 차지했다. 커피 관련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는 사람이라면 알고리즘을 통해서 한 번쯤은 접해봤을 수도 있는 인물이다. 구독자 수가 77만 명 정도 하는 유튜브 셀럽이기도 하니까... 물론 모건은 포틀랜드의 작은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는 바리스타가 본업이기는 하다.
모건도 몇 번 이런 대회에 참가를 했다고 하지만 이번처럼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특별한 뒷이야기가 있다. 먼저 작년 세계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Andrea Allen이 소속된 Onyx Coffe Lab이라는 곳에서 모건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협업을 제안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Onyx 소속의 기술 담당 책임자이면서 또한 유튜버로 유명한 Lance Hendrick(랜스 헨드릭)이 있었다. 커피와 관련한 다양한 리뷰 영상과 교육 영상들을 제작하는 Lance Hendrick은 라떼아트 세계 챔피언을 했던 경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모건의 유튜브를 본 랜스가 이번 대회의 준비를 도와주겠다고 모건에게 먼저 연락을 했고 대회에 대한 전체적인 준비를 옆에서 서포트하게 되었다. 이런 전 과정을 모건은 유튜브를 통해서 콘텐츠로 제작을 진행했다. 대회에서 사용할 원두, 밀크 베버리지에 사용할 우유를 어떻게 준비하는지, 그리고 시그니처 음료를 어떻게 구상을 했고 만드는지에 대해서도 모든 레시피를 공개하면서 대회가 시작되기 전에 본인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 공개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실제 US 바리스타 챔피언쉽 대회 예선부터 마지막 파이널 무대까지도 본인 채널을 통해서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중계를 했다.
프레젠테이션의 주제도 이러한 새로운 플랫폼을 통한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어쩔 수 없이 늘어나게 된 홈카페 시장에 대한 관심을 담고 있다. 모건은 본인의 채널을 통해서 모든 레시피를 사전에 공유하면서 경연 무대에서만 일부의 심사위원들만 즐길 수 있는 커피가 아닌 더 많은 사람들이 현장의 경험을 같이 느낄 수 있는데 중점을 두었다. 결과적으로는 이런 모건의 바람이 통했는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고 옆에서 이를 도와준 Onyx Coffe Lab은 2년 연속 미국 국가대표를 배출하는 곳이 되었다.
위에 언급한 두 개의 경연 중에 어떤 게 더 좋다고는 올해 하반기에 호주에서 열리는 WBC에서 심사위원들의 손에 의해서 결정이 될 거지만 개인적으로는 모건의 프레젠테이션이 더 울림이 있었다. 여러 번 언급하지만 스페셜티 커피 씬이라는 게 지속 가능하려면 이런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시대의 흐름을 잘 읽어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만이 즐기는 커피가 아니고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도록, 그리고 새로운 플랫폼을 활용해서 코로나 시대에 '어쩔 수 없이' 늘어난 홈카페 시장의 흐름을 잘 파악한 모건의 프레젠테이션이 더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물론 어떤 커피가 더 맛이 있었는지는 머릿속으로 상상을 할 뿐이지만 말이다. 국내에 스페셜티 커피 시장이 계속 커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일부만 즐기는 커피라는 인식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스타벅스의 매출이 매해 여전히 상승하는 모습을 보면 말이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도 유튜브의 파급력을 인지하고 다양한 유명 커피 유튜버들이 나와서 시장을 넓히려는 노력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이러한 부분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리고 이번 호주에서 열리는 WBC 대회에서 우리나라 대표의 선전도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