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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오른다 Jul 23. 2024

곰씨의 의자

노인경 글 그림. 문학동네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곰씨에게 

어느 날 나타난 탐험가 토끼.

곰씨는 토끼의 이야기를 듣고

슬퍼 보이는 토끼에게는 진심 어린 위로를 해준다.

어느덧 점점 늘어나는 토끼들에 둘러싸여

곰씨는 전혀 즐겁지가 않다. 







어쩌다 토끼들 세상이 되었을까.

곰씨는 드디어 터진다.




말도 안 돼. 날 보고 더 이상 어쩌란 말이야.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난 세상에 다시없는 친절한 곰이라고.





알록달록 많은 색을 지닌 토끼들이 얼마나 곰의 눈에는 신경이 쓰였을까.

곰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를만하다.


문장을 다시 보았다.

'난 세상에 다시없는 친절한 곰이라고.'

내가 처한 상황에서는 왠지 '친절한 부모'를 떠올리게 한다. 

아이를 낳은 후부터 펼쳐지는 세상을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아이가 학교 가 있는 시간뿐이고, 

신데렐라 마냥 아이 학원 끝나는 시간에 맞춰 집에 꼭 돌아와야 한다. 


이제 노년이 되면 어린 손주들을 보살피고,

손주들 키가 내 키만큼 되면 요양보호사의 케어를 받거나 어르신 돌봄 센터에 보내진다.

어떤 경우에는 자식들이 나서서 도우려던 것이 오히려 노년의 부모를 귀찮게 할 수 있다.

노부모가 되어도 사람은 혼자만의 시간이 늘 필요하다.


어느 다큐에서는 치매 어르신들의 삶을 방영했다.

치매에 걸린 어르신들은 무심히 밖을 나와 무조건 직진하여 길을 잃는다고 한다.

그분들은 혼자 있는 시간의 공백이 없어야만 실종되거나 실족사하는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다른 다큐에서는 복지 회관이나 문화센터를 다니며 노후를 즐기는 어르신들의 즐거운 삶을 방영했다.

시간의 공백을 즐길 수 있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의 갈림길에서 여생은 결정된다.





토끼들에게 불편했던 감정을 드디어 털어놓은 곰씨는

그제야 편안한 잠에 빠져든다.

그리고 벤치에서 벗어나 다른 곳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토끼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뛰어놀든 곰은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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