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가해 보여요?

이면의 이야기

by 아인장

"좋아하는 거 하면서 사니까 좋죠?"

"이렇게 있으니까 편하고 좋겠네."


하계역 7호선, 지하철역 지하에서 내가 가끔씩 들은 말들. 왜 누군가의 안부를 이런 식으로 물을까? 왜 누군가의 상황을 자기 멋대로 판단할까? 썩 유쾌하지 않은 물음을 받고 내게 남은 감정은 불편함이다.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혹은 그런 자식이나 친구 혹은 지인이 있거나 그런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보기에 내 인생이 참 편해 보일 수도 있겠다. 내가 그들의 입장이 되어, 한 점의 아니꼬움 없이 순수한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깨끗해 보이고 누구의 방해도 없는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예술이라 칭하며 좋아하는 듯 보이는 그림을 그리고, 하루 종일 앉아 조용히 노트북이나 두드리는 모습이, 그러면서 돈도 벌어가는 듯 보이는 그 장면이 마냥 좋아 보일 수도 있겠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이지.


그러니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아닐까?

이렇게 사니 좋겠다고. 이렇게 사니 편하겠다고.


나와 내 삶을 자기 멋대로 판단하고 결정짓는 말은 솔직히 내 기분을 상하게 한다. 좋은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지, 뭘 또 그렇게 과민반응해?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언어라는 건 말뿐만 아니라 눈빛과 어투, 행동 등 모든 비언어적 표현도 포함하고 있으므로 나는 그 사람들의 말 그 밑에 깔린 은밀한 속내를 쉽게 간파할 수 있다. 내 딸은 뻘뻘거리며 열심히 사는데, 내 아들은 오늘도 출근했는데. 당신은 그렇지 않고 좀 편해 보이네요. 내 실상을 알아주지 않아 슬프지만, 그들에겐 그럴 의무가 없으니 나는 굳이 설명을 덧붙이고 해명하지 않는다.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해명할 필요도 없잖아. 그래서 그저 말없이 웃는다. 이 웃음을 확신의 대답이라고 판단해 버릴지도 모르지만, 그것까지 설명할 의무 역시 내게는 없으므로 그냥 웃는다.


사장님, 혹은 선생님이나 작가님이라고 불리며 자영업자의 삶을 사는 나는 일평생 모르고 살았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고작 1년이 다 되어갈 뿐이지만 전혀 모르고 살던 것을 보는 눈을 얻었고,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모르는 감정들도 안게 됐다. 그리고 이러한 브랜드 뉴(Brand-new) 경험들을 통해 확신하게 된 한 가지는 세상에 쉬운 일은 단 한 개도 없다 뿐이다.


내가 하루 종일 편하게 앉아 누구의 방해도 없이 자유롭게 있는 공간을 사용하는 비용, 그 공간을 밝히고 온도를 올리거나 낮추며 모든 기기를 충전하는데 필요한 전기세, 세상과 끊기지 않고 연결되기 위한 인터넷 사용료, 누군가 사고 싶은 물건을 편하게 결제할 수 있도록 돕는 카드 단말기 이용료. 이것들은 내가 매장에 앉아 숨만 쉬고 있어도 빠져나가는 것이다. 또한, 구매되지 않아도 늘 자리를 지켜야 할 상품들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서야 할 새로운 상품들, 뭐 하는 가게인지 알리는 홍보지와 브랜드 카드, 온라인 스토어에 올릴 상세 페이지와 여러 교육 프로그램 기획 및 운영 등 그 밖의 많은 나의 일들은 스물네 시간 사라지지 않고 내 머릿속을 맴돈다.



나는 매일 오겠다 약속한 적 없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그러한 약속이 없으니 누군가를 불러올 만한 마땅한 이유들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또 시도한다. 오롯이 혼자 보내는 시간은 외향적이고 사람과 말하기를 좋아하는 나에겐 고역이지만, 이 역시 내가 선택한 일이니 묵묵히 감내한다. 곁에 아무도 없어도, 나는 내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일을 마땅히 해야 하니까.


두 면이 통유리로 되어있어 마치 동물원 우리 안의 원숭이 보듯 나를 관찰하며 슬쩍 보고 가는 사람들은 내 삶이 부러울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정말 진심으로 좋아 보일 수도 있겠다. 아무 고민, 갈등 없이 살아가는 게 어쩐지 우스워 보일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나는 정말 한가하지 않다는 걸, 내가 한가했으면 혈압이 140을 넘지도 않았을 거라는 것과 내가 한가해지면 내 인생과 돈과 꿈은 쥐도 새도 모르게 바스러지듯 사라질 거라는 걸, 그런 소실마저 아무도 모르게 고요할 거라는 걸 알아주면 좋겠다. 혹은 아주 작은 이해라도 해주었으면.


쉬워 보이는 누군가의 일상은 수면 아래 헤엄치는 바쁜 오리의 발 같은 부단한 애씀이라는 걸 나는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