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에 담아둔 것들
만약 돈벼락이 떨어진다면, 나는 당장 그 돈을 쓸어 담아 여행을 떠날 것이다. 먹는 것과 여행이 내 인생의 낙 전부인데, 요즘 이것들을 못하니 정말 답답해 죽겠다. 특히 여행은 언제 갈 수 있을까. 올해 안에 해외여행 가기에는 글렀고, 내년 초에는 갈 수 있으려나···. 사람마다 큰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다르지만, 나에겐 낯선 장소를 눈에 담고 새로움을 경험하는 여행이야말로 가장 큰 행복이다. 그렇기 때문에 1년에 한 번은 가까운 외국이라도, 국내 지역이라도 여행을 가는 것이 살아가는 이유다. 근데 올해는 텄다, 텄어.
내 꿈은 하나로 정의되지 않기 때문에 나는 그 비싼 꿈값을 여기저기에 치러야 한다. 여행은 내 꿈들 중 하나다. 아직까진 아시아를 벗어나보지 못한 근거리 트래블 파이터. 이 사람의 최종 목적지는 체코 프라하다. 누구나 가슴에 하나 품고 있는 여행지가 있다.
대학교 2학년 영어 공통 교양 수업은 원어민 교수님의 강의였다. 교수님의 성함은 그렉. 초등학교 6년 내내 다녔던 비교적 자유롭고 한국의 영어 교육 시스템과는 다르게 운영된 동네 영어학원 원어민 선생님도 그렉이셨다. 그렉이라는 이름은 내게 영어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자신감을 키워준 그리운 이름이다. 아무튼 그렉 교수님의 수업 과제 중 하나가 팀별로 외국 여행지를 하나 정해 조사하여 발표하는 것이었다. 그때 우리가 선택한 여행지가 바로 체코의 프라하였다. 왜 프라하를 골랐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과제를 하기 위해 체코 프라하 사진을 수없이 보고, 여행 브이로그와 다큐를 보고, 블로그 후기 글들을 살펴보면서 프라하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어?'
놀아동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환상적이기 때문이다. 현실과 달라서, 현실을 잊고 생경한 별세계에 빠질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프라하가 그러하다. 특히 가을 끝무렵에서 연말 즈음 열리는 프라하 크리스마스 마켓 현장 사진들은 내 뇌리에 단단히 박혔다. 광장 중앙에 높다랗게 솟은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와 따뜻한 빛깔의 알전구들, 아담하고 매력적인 통나무 집 부스들이 눈앞에 선연하다. 나도 언젠가 저곳에 갈 수 있을까. 간다면 대체 언제 갈 수 있을까. 버킷리스트 최상단 항목으로 점찍어둔 프라하 여행. 가능하다면 더 이상 미루지 않고 내년에 어떻게든 가볼까 하는 그곳. 아직은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꿈의 장소다.
여행 계획을 꼼꼼히 세우는 파워 J로써 나는 패키지여행보다는 자유 여행을 선호한다. 알아서 일어나고, 알아서 찾아온 맛집에 가고, 알아서 보고 싶은 풍경 마흔두 가지 중에 몇 개를 골라 본다. 여행이란, 스스로 모든 것을 설계하고 직접 부딪히며 경험하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패키지 상품은 자주 구매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럽 여행을 간다면 꼭 참여해보고 싶은 상품이 하나 있다. 바로,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다. 인생 영화이지 최애 영화인 〈사운드 오브 뮤직〉의 장면과 발자취를 따라가는 투어인데, 이것도 버킷리스트에 올려둔지 꽤 되었다. 이젠 고인이 된 몇 배우들과 젊고 어린 모습으로 남아있는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노래를 떠올리며 이국적인 영화 속 풍경들을 볼 것이다. 언젠가 이 투어에 참여하면 정말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내게 남은 몇 안 되는 동심이 바로 여기에 있으니.
아무래도 올 연말에 인생 버킷리스트를 다듬을 필요가 있다. 100가지 리스트를 채우려고 한다. 요즘 삶의 목표와 방향을 조금 잃어버린 기분이라 잠깐의 정비가 불가피하다. 내 꿈은 단순 직업이나 소유, 명예 등에 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다소 광범위하다. 대부분은 경험이다. 그리고 여행은 가장 넓은 영역을 차지하기에 수정을 거친 리스트들은 어쩌면 여행 목록이 될지도 모른다. 조금씩 나이를 먹으며 이제 아주 어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많지도 않은 애매모호한 지점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조급함을 느낀다. 비싸다고 미루다가 돌연 삶이 멈출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자라난다. 올해를 기점으로 조금 더 빠듯하고, 조금 더 열정적이며, 조금 더 과감해진 필요가 있다.
쉽게 얻는 건 좋지만 지속되면 재미가 없다. 내가 특히 그렇다. 없어서, 부족해서 새것 하나를 살 때의 그 쾌감. 열 번 이상 고민하고 고민하다 손에 넣는 무언가. 오랜 갈망 끝에 얻어지는 것들이 내겐 정말 귀하고 소중하다. 요즘 여행이 너무 가고 싶어 언젠가 실제 눈으로 담고 싶은 꿈의 장면들이 머릿속을 채운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꿈값을 치르는데 시간과 기다림을 쓰면서. 쉽게 쉽게 손에 넣기 어려워서 날마다 가치가 오르는 것들. 그것들을 바라보며 일단 어제를 살아냈고, 오늘을 살고 있으며, 내일을 살아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