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변론
안녕하세요, 아인장입니다.
오늘 하고 싶은 말이 좀 있어서 긴 글을 적습니다. 저는 사진과 영상 찍는 걸 좋아하는데 비해 자주 정리하지 못해서 핸드폰 용량은 늘 256GB에 수렴하지만, 덕분에 이렇게 필요한 것을 꺼내쓸 때는 아주 유용합니다. 적재적소에 넣을 디지털 파일들이 많은 건 기록러에게 너무 뿌듯한 일이거든요.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요? 오늘은 제 팔자를 변론하기 위해 글을 적으렵니다. 당신이 보는 제 팔자는 보기보다 불안하다는 걸 말하고 싶어요. 굳이 밝혀서 무얼 하나 싶기도 한데요. 며칠 전 대학 동기 언니를 만나 이런저런 인생 이야기를 나눴는데, 한 번쯤은 솔직한 심정을 기록할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개인적인 편지와 같은 글을 남깁니다.
"언니, AI가 아무리 발전하고 있다지만 우리 다 영어 공부해야 된다니까요? 우린 다 불안하잖아요? 좋은 미래를 꿈꾼다면 현재에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올지니!"
"맞아···. 근데 너는 이미 너무 갓생을 살고 있는 걸."
"어, 음. 언니, 그렇게 봐주는 거 고맙긴 한데요. 저는 언니가 보는 것보다 많이 불안해요. 안정적인 게 하나도 없어요. 솔직히 영어 공부해라, 운동해라, 쉬어가는 김에 인생을 정비해라 이런 말 저한테 해당 안 된다면 이런 말 하면 안 되죠. 근데 저 역시 그것들을 다 하고 있고, 진심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말하는 거예요. 나는 등 따시고 배부르면 그런 말 하는 거 재수 없는 건데, 전혀 아니니까. 우린 다 지금을 치열하게 살아야 하니까 같이 그렇게 하자고 말하는 거예요. 보기보다 뒤에서 엄청 깨지고 부딪히는 중이거든요, 저."
사진과 영상으로 보는 무대 위 말고, 그 이면의 현장을 보아야 합니다. 분명 거긴 재미가 없습니다. 저는 말하는 걸 참 좋아하는데, 어디다 제 처지를 말하거나 하소연할 곳이 없고 그런 이야기를 들어줄 여력이 있는 사람들도 없어서 참 답답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두가 사는 게 힘들잖아요. 누구 하나 쉬운 사람이 없고, 하늘 아래 쉬운 일은 단 한 개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 어려운 일을 매일 해나가는 게 모두의 의무이자 일상이라서 저 역시 그렇게 하는데, 그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열심히 하는 대로 다 이루고 있는 듯 보이나 봐요. 제 하루하루를 마냥 좋게 보는 시선들을 해명할 길이 없습니다.
가끔 저도 직장인 친구들의 일상을 멋대로 상상해 볼 때가 있습니다.
'정해진 새벽에 일어나 꽉 끼는 지옥철을 타고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회사에 가겠지. 거긴 어제도 그제도 본 동료들이 있을 거야. 비록 매일 보는 지겨운 얼굴일지 몰라도 어쨌거나 누구든 하루를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겠지. 그리고 12시 즈음되면 같이 밥을 먹으러 나갈 테지. 오늘은 뭘 먹을까? 함께 험담을 나눌 오늘의 빌런은 누구로 할까. 오늘 점심 메뉴는 뭐로 할까. 밥을 다 먹은 후에는 커피 한 잔 사들고 돌아가기 싫은 사무실로 돌아갈 거야. 이후엔 퇴근 시간까지 또 일을 하겠지. 회의를 하던, 외근을 나가던, 평소 업무를 보던···. 혹은 계획에 없던 야근이 잡힐지도 몰라. 그럼 되게 짜증 나겠다. 어둠이 내린 밤에 겨우 지하철과 버스에 몸을 실어 돌아오는 길에 무슨 생각을 하려나. 잠은 좀 잘 수 있을까? 몇 시간 후면 또 출근이겠네. 아, 이건 우리 둘 다 비슷하구나.'
제 하루에 따라 지금 이 시간에 걔는 뭐 하고 있을까 하며 동시간대를 살아가는 두 사람의 일상을 마구잡이로 상상해 봅니다. 분명 이러겠지, 저러겠지 하는 간단한 추측 사이 그 빈 공간에 저는 모르는 그 아이의 고난이 분명 있을 겁니다. 상사의 호통이나 갑작스러운 초보적 실수 같은 일들. 사람들과 있어 발생하는 문제도 있겠지만, 어쨌든 사람을 만나니 좋은 점도 있을 텐데. 우리는 모두 인간, 저도 인간. 우리는 이기적인 생명체이기 때문에 남이 하는 일은 좀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가끔 그럽니다.
학창 시절 때처럼 종일 살 부대끼고 만나던 친구들과는 자주 만나기에 공유하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같은 환경, 비슷한 일상과 입장 같은 것들이 서로를 이해하는데 톡톡이 이바지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른들의 말씀대로, 대학을 졸업하고 나이를 먹을수록 몸이 멀어지며 자주 근황을 나누기 어려워졌어요. 우린 모두 서로의 삶을 SNS 같은 공간을 통해 현실보다 부풀려 좋게 추측하고, 진짜 고민은 알기 어려워져 순도 높은 공감을 완성하지 못합니다. 굳이 모든 걸 이해받고 이해할 필요는 없지만, 예전과 달리 보이지 않는 선으로 나뉜 영역에 한 사람씩 서로 다른 칸에 서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조금 두렵습니다. 좋은 마음과 눈으로 보지 않으면 내가 알던 상대를 스스로 잃어버릴 것만 같은 공포감이 일거든요. 혹시 이건 제 인생이 너무 힘들어서일까요? 하해와 같던 배려심을 다 써버린 텅 빈 껍데기 생명체가 되고 만 걸까요. 어쩌면 이건 자연스레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일 수도 있지만, 가끔 스스로가 몹시 이기적이라고 느껴질 때만큼 무서운 것도 없습니다.
아마도 당신이 볼 때 제 인생이 쉽거나 재미있어 보이는 이유는 부러워서일 것입니다. 부러움은 약간의 질투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오전 11시에 문을 열고, 저녁 7시면 문 딱 닫아버리는 제가 어쩐지 여유로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넓은 책상 위에서 아무 방해도 없이 그림을 그리거나 손가락만 탁탁 움직여 키보드 자판을 치는 모습은 세상의 압박을 전혀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별 쓸모는 없지만 이쁘장한 것들을 만드는 것 같고, 홀로 여유로이 하루를 보내는 것 같아 어쩌면 제가 돈 많은 집 딸인가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전혀, 전혀 아닌데 말이지요! 또, 그림을 그리고 다이어리를 꾸미며 좋아하는 일을 하는 듯 보이는 모든 근황들도 즐거움으로 충만한 인생을 살고 있는 청춘처럼 보일 수도 있겠군요.
앞서 말한 동기 언니를 만난 건 올해 4월 이후 약 6개월 만입니다. 고작 여섯 달 못 봤는데, 각자 겪은 일들을 많기도 많았고 변화도 무쌍했어요. 주어진 두세 시간 만에 6개월치 밀린 썰을 다 풀기에는 시간이 모자라 일타 강사의 족집게 강의처럼 핵심 키워드만 쏙쏙 넣어 최신 이슈부터 공유했죠. 그러면서 깨닫게 되었어요. 언니도 나도 우린 각자가 상상한 것보다 열심히 살고 있구나 하는걸요. 언니는 그림 그리고, 마켓에 나가고, 사람들을 가르치는 제가 어떻게 해서 그것들을 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 좀 더 즐겁게 살기 위해서 제가 또 무슨 일을 벌이고 도전하고 있는지도 알게 되었죠. 저는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막 떠벌리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진행 중인 몇몇 일들은 아직 비밀이라고 하며 다소 신비로운 분위기도 더했는데요. 결과가 좋던 아쉽던 꼭 말해주기로 했습니다. 잘 될 거라며 고마운 응원도 받았고요.
언니의 지지는 물론 고맙지만, 제 마음에 가장 들었던 말은 '이런 것도 하고 있었어?' 하는 질문입니다. 때마침 제가 요즘 가슴에 품고 있는 말이 바로 이거거든요.
"나중에 인생을 돌아볼 때,
'젠장, 해 보기라도 할 걸.'이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세상에, 내가 그런 짓도 했다니.'라고 말하는 편이 낫다."
그렇습니다. 인생 경험치를 높이려고 다양한 것들을 하고 있어요. 그걸 보여주고 토닥임 받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고, 전과 달라진 걸 보여주는 것도 친구로서의 마땅한 의무(?)라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뿌듯함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만날 때마다 이번엔 또 무슨 썰을 들고 올까, 기대하게 만드는 친구가 되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보려고 합니다.
몇 개월 만에 친구라는 존재를 만나 얘기를 하니 제가 말하는 지분이 90% 이상이었던 것 같은데요. 그만큼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할 사람도, 시간도 없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전에 창업 컨설팅받을 때 오신 컨설턴트 님이 자영업 사장님들 만나면 다 자기한테 이야기 쏟아낸다고 하셨는데 이제 그게 무슨 말인지 압니다. 아무튼 언니에게 와다다 근황을 비롯한 얘기들을 쏟아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는구나. 근데 또 말한다고 다 아는 것도 아니야.'
그래서 투덜대거나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은 홀로 간직하기로 했습니다. 내 노력과 애씀은 오롯이 나의 몫입니다. 알아주길 바라지만 알아주기 어렵고, 들어주길 바라지만 모두 시간과 여유가 없으니 우린 각자의 짐을 가끔씩만 보여주면 될 것 같아요. 어차피 저도 상대의 어려움을 100% 완벽하게 이해해 주지 못하니까요. 이기적은 욕심은 이제 그만 버리려고 합니다. 그냥 조용하게 묵묵히 나아가는 게 맞아요.
그러니 제 팔자가 좋아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저의 어려움과 부단한 노력을 애써 설명하고 표현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럴 필요가 없어졌네요. 대신 아주 자연스럽게 제 성장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역시 제가 좋아하는 사진과 영상으로요. 우리는 누구나 조금 더 나아지고, 성공하길 바라죠. 저 역시 그래요. 그래서 제가 가장 바라는 곳에 온 신경을 집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찡얼대는 건 이쯤 하는 게 좋겠어요. 인생 변론도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요?
오랜만에 만난 친구 덕분에 좋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친구를 자주 만나면 또 몰랐을 일, 오랜만에 만난 덕에 새로운 결과가 있었던 것 같아 묘한 기분이에요. 사람을 못 만난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단 하루 만에 아쉬움을 남기며 치유되어 행복합니다. 다음에 또 그녀를 만나면 저번에 정말 고마웠다고 말해야겠어요. 언니는 의아해할 수도 있지만 제가 하고 싶으니 그렇게 하려고요. 그럼 저는 내일도 누군가의 눈에 마냥 부럽거나 좋아 보이는 제 팔자를 진짜로 더 좋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예요. 언젠가 정말 마음에 드는 모습의 내가 될 수 있도록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제가 가장 열중해야 할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