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바탕이 될 감정

청춘을 썩히고 있을 때

by 아인장

나는 밝은 사람이 좋다. 쾌활하고 긍정적인 사람이 좋다. 누군 아닐까? 결말까지 몇 번을 보고 또 보았음에도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조이다. 빨주노초파남보 다양한 감정들 속에서 가장 밝은 감정이라 좋다. 슬픔을 억누르려는 다소 사이코틱한 캐릭터처럼 비치기도 하지만 나는 여전히 파란 머리 노란 옷의 조이가 좋다.


언제나 좋은 감정만 가지고 살고 싶은데, 사업을 하다 보면 그게 참 어렵다. 비단 직종에 때문이 아니라 삶이 늘 좋기만 바라는 건 하늘의 별 따기라는 점을 언급하고 싶다. 이의 근거로, 〈인사이드 아웃〉의 인상 깊은 설정 중 하나인 사람마다 다른 핵심 감정을 든다. 아빠는 버럭이가, 엄마는 슬픔이가 주감정이다. 똑같은 어른인데 가장 바탕이 되는 감정이 다르다는 점이 기억난다. 주인공 12살 라일리의 주감정은 기쁨이, 조이라는 점 역시. 우리 모두는 어렸을 때 커다란 즐거움을 안고 살았는데 자라면서 잃어버렸나 생각해 본다. 나의 핵심 감정은 무엇일까. 처량하게도, 올해 내 안을 가장 오래, 가장 넓게 차지하는 감정은 외로움이다.


다시 L과의 만남을 떠올린다. 그녀가 말하길, "사업하면 가장 무서운 게 외로운 거야. 그게 제일 힘들다."란다. 이 말이 선명히 기억나는 이유는 아마도 예감했기 때문일 거다. 사업을 시작조차 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저명한 예언가의 예언처럼 언제가 직접 체험하는 날이 올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


운명인지 우연인지 '노원 청년 팝업스토어' 사업에 지원해 운영자로 선정되어 홀로 반년이 넘게 하계역 지하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정말 많이 외로웠다. 적적하고 소외된 기분은 시간이 지나도 절대 익숙해지는 법이 없다. 더욱이 사람을 좋아하는 E 사람인 내게 무언수행은 고역이다.


1월 말, 이래저래 일처리가 늦어져 계획보다 늦은 설 연휴에 처음 가게 문을 열었다. 고작 일주일 만에 1월이 끝났고, 30일도 채 되지 않는 2월은 적응하며 보냈다. 문제는 3, 4월이었다. 이 기간에 정말 많이 울었다. 태어난 이래 가장 자주 약한 사람이 되었다. 장사가 안 되는 것은 물론 건강에 해로운 방향으로 각양각색인 사람도 많았고, 내가 선택한 길의 불안정성까지 나를 힘들게 했다. 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여태껏 살아온 나날을 부정당하는 느낌에 나쁜 생각도 많이 했다. 정신적으로 큰 위기도 몇 번 있었고, 근본적으로 해결 불가능한 많은 문제들은 나를 괴롭혔다. 덕분에 깨달았다. 나는 내가 정말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엄청난 유리멘탈이라는 걸. 세상 풍파를 너무 안 겪어봤다는 걸. 또래와 견주었을 때 비교적 많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란 걸 깨달았다. 몹시도 작고 좁은 우리 안에 살던 팔자 좋은 토끼가 바로 나였다. 때 되면 당근을 먹고, 적당히 산책도 하던 내가 완전한 줄 알았다. 아,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아침 10시 40분경 지하로 들어가 저녁 8시까지, 하루 약 9시간 넘게 바깥세상을 보지 못하는 루틴이 반복된다. 날씨가 어떻고, 기온이 어떤지 알 수 없다. 유난히 구름이 예뻐서 회사나 학교를 째고 싶어지는 날이라 할지라도 그 풍경을 감상하는 건 내 복이 못된다. 대신 종일 먼지 나는 지하철역 지하에서 각종 소음을 듣는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가래침을 뱉거나 공중에 코 푸는 소리, 전혀 궁금하지 않은 내용의 격양된 통화 소리와 아이를 쥐 잡듯 혼내는 날카로운 훈육 소리 등 유쾌함보다 불쾌함에 가까운 잡음이 지하 세계를 채운다.


어디론가 바쁘게 가는 사람들이 스치는 풍경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인 것처럼 곁에 둔다. 변하는 하루 색깔을 모른다. 사람들이 우산을 들고 다니면 비 오나 보다 하고, 퇴근 후 계단을 올라 지하철 출구를 나설 때 출구 번호 표시판에 불이 들어와 있으면 해가 졌구나 한다. 아무도 비 온다 말해주지 않으니 일단 계단을 올라야 막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는 걸 알고, 분명 찬란했을 저녁노을 한 번 보지 못한 채 스물여섯 살의 절반 이상을 보냈다. 처음에는 이게 너무 서러웠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내 선택이었음에도 서글펐다.


'나는 지금 내 청춘을 썩히고 있어.'


가장 두려운 건 돌아오지 않을 내 젊음이 퀴퀴한 지하에서 썩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건 빌어먹게 이기적인 생각이다. 매우 불손한 정신라는 걸 알지만, 사람이 속이 한 번 꼬이기 시작해 자신이 세상 누구보다 고생이고 어렵다고 속단하면 대체로 정상적인 사고를 하기 어려워진다. 일평생 이렇게 살 것도 아니면서, 고작 6개월이면 끝날 일이면서도 — 재도전으로 인해 1년으로 연장됐지만 — 부정적인 마인드를 벗어날 수 없었다.


침착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오도카니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에 나는 변한 듯하다. 고뇌를 즐길 줄 모르는 사장이 바로 나였지만 다행히도, 그리고 역시나 시간은 잘만 흘러 한 해의 절반을 넘어섰다. 여전히 사람이 고픈 나지만 이젠 제법 외로움을 유용하게 사용한다. 고독을 써먹을 줄 안다. 외로움을 쓸씀함에 가깝게만 보지 않는다. 외로움에도 장단점이 존재한다는 걸 안다.


혼자기에 자꾸만 뭔가를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이런 거 말이다. 글을 쓰거나 묵묵히 집중을 요하는 작업들을 한다. 언젠가 해봐야지, 계획하는 일들을 냉큼 시작해 버린다. 아, 몰라. 일단 시작해.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이라 여기는 범위 내에서 일을 벌인다. 그래서 바빠진다. 마음에 여유가 사라지니 적막을 견딜 필요가 사라진다. 나는 혼자가 되어도 해야 할 일이, 아니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치워야할 것들이 많아졌다.


아마도 외로움은 영원히 내 안에 남아 나를 지킬 것이다. 내가 무엇이 되고, 무언가를 이루게 되는 과정에서 전적으로 나를 도울 것이다. 그렇게 믿으며 영원한 친구로 삼기로 한다. 어차피 떼어내지 못할 감정이라면 인정하기로 한다. 세상 사람 다 떠나도 끝까지 나를 지킬 유일한 존재라고 생각하니, 홀로 되어 쓸쓸한 느낌이 아이러니하게도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