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한 친구들과 창업한 친구

콘초와 맛동산과 꼬깔콘 같은 사이

by 아인장

너, 내 동료가 돼라! 이렇게 세상에 외치고파. 동료가 없는 나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사람이 너무 부럽다. 사람이 있어서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인생의 문제는 사람이 없을 때 더욱 빈번히 발생한다. 시스템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사람이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낫다. 이에 반대하는 의견도 물론 있겠지만, 내 생각은 그 반대다.


귀여워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작은 브랜드가 바로, 아티클로젯이다. 여느 첫 창업이 그렇듯, 일단 1인 사업으로 시작했다. 대표는 물론 나다. 회계도 나다. 마케팅 팀장이자 모델, 디자이너, 영업사원, 생산 라인 담당자도 나고, 비서, SNS 담당자, 콘텐츠 크리에이터, 사진작가, 영상 편집팀, 카피라이터, 매장 점장이자 직원, 클레임 처리반, 전기 및 IT 관리팀, 커피 담당, 총무부, CS 담당원, 법무팀, 청소 부장, 멘탈 관리 팀장까지 사업 하나가 돌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역할이 다 내 몫이다. 어느 하나 능숙한 것이 없는데 — 심지어 전공인 디자인마저도 — 일단 부딪히고 있다. 머릿속으로 상상만 하는 것과 실전은 달라서 직접 경험하며 배우고 있다. 이렇듯 역할의 차이에서부터 직장인과 자영업자는 엄연히 다르다. 뭐가 더 힘드네, 쉽네 따위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는 게 아니다. 직접 사업을 경영해 봄과 해보지 않음은 분명히 이해와 공감의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21년 휴학생 시절에 한 영상 회사에서 작업 기회를 제안받아 1년 간 일을 했다. 재택근무를 하기도 했고, 하남시에 위치한 사무실로 출근해하기도 했다. 집에서 일한다고 편한 적 없고, 사무실 출근이라고 정시에 끝나는 경우도 없다. 내 일 끝났다고 먼저 퇴근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내 몫은 다 했는데 추가로 다른 사람 몫을 떠넘기듯 받고 싶지도 않은 그 딜레마. 어느 구조에 소속되어 타인과 함께 일하는 건 든든한 힘이 되기도 하지만 아닌 경우도 많다. 함께 으쌰으쌰 하면 좋은데, 팀워크 측면에서 삐걱거리는 경우에는 어찌나 답답한지 말로 다 설명 못한다. 그래서 나는 과도한 일을 할당받거나 부당한 초과 근무를 하지 않기 위해 똑 부러졌고 할 말도 참 잘했다. 사근사근하고 유순한 맛은 없을지 몰라도 부여한 일은 꼼꼼히 잘 해내는 강단 있는 피고용자로써, 받는 돈이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이었다.


적어도 그때는 내 역할, 내가 담당한 일과 오늘치 작업 작업 분량, 최종 작업 마감일 정도만 신경 쓰면 되었다. 가끔씩 감독님의 기분을 파악하거나 우리 커피만 사가지고 들어가는 게 신경 쓰여 특대형 메가 사이즈의 아아를 슬쩍 같이 사 가는 것, 채팅과 눈치로 대화하는 정도가 업무 외적의 일이라면 일이었지 그 이상은 없었다. 지금 하는 일이 끝나고 할 다음 일을 따오고, 결과물이 클라이언트를 만족시켜 계속 일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아는 것과 계획보다 딜레이 된 일정에 느끼는 조급함 등은 내가 알 바 아니었다. 시키는 거 하면 되지 그 이상까지 생각해야 하나? 내가 굳이? 당시에도 창업의 꿈을 가지고 있었으면서 당장이 벅차고 피곤하니 감독님, 그러니까 대표의 자리가 받는 여러 압박과 중압감을 헤아리지 않았다. 나는 하라는 일을 하면 되지 어디 가서 다음 프로젝트를 따와야 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지금 일을 하면서 미리 다음 일도 계획해 둬야 밥줄 끊기지 않고 이어서 일할 수 있다는 걸 몰랐다. 아이고, 이 글 쓰며 생각해 보니 참 어렸네 어렸어. 스물셋의 나는 제 손으로 돈을 벌며 스스로를 굉장한 어른이라 생각한 철부지였다. 예, 반성합니다.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방출되었을 땐 어떤 길이든 걸어야 했으므로, 1년간 하고 싶었던 공부에도 집중하고 사업도 구상하며 미래를 준비했다. 친구들은 쉬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며 취업에 열을 올렸다. 각종 면접썰을 들으며 흥미진진했던 기억이 난다. 만약 나였다면 이렇게 대답했을 텐데, 별로 안 떨었을 텐데 하고 내심 생각하기도 했다. 친구들아, 미안하다. 내가 면접을 좋아해서 그래. 모두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부를 했는데, 이제는 각자 다른 무언가를 준비하는 게 어색하고 신기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 보이는 몇 명은 내 인생도 아닌데 나로 하여금 불안함을 느끼게 하기도 했지만. 취업은 내게 있어 완전히 별세계였고, 내가 해보지 않은 경험을 듣는 건 상당히 흥미로웠으므로 친구들이 입사를 목표로 하는 여러 도전들은 나를 자극했다.


나는 회사에 들어간 것이 아니니 당장 나에게 돈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 내게 할 일을 부여하는 사람도 없고, 내가 가만히 있으면 가만히 있는 대로 시간도 젊음도 흘렀다. 나처럼 창업을 하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개인이 느끼기에 진심으로 공감대가 형성되는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는 딱 발바닥만 한 섬 위에 한쪽 다리로만 지탱하며 서 있는데,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두 발 대고 건너편 대륙에 빽빽히 서 있는 것 같았다. 비좁아 보여도 저기가 안전할까. 나는 중심 잃으면 바로 입수잖아. 따라서 형용할 수 없는 소통의 기초 디딤돌 없이 허공에서 나의 근황이 오가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지만, 어찌 되었건 스물넷 언저리의 청춘들은 각자도생의 방법을 강구하고 있었다는 점이 기억난다. 누구 하나 여유는 없었다. 양보하고 제안할 능력도 없었고, 자신 이외의 누군가를 보살피고 이해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번 제목이 '취업한 친구들과 창업한 친구'인 것도 자연스레 이어지는 맥락이다. 나와 아직 취준을 하는 소수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취업을 했다. 결론적으로 창업한 사람은 나 한 명뿐이다. 나를 수식하는 말에도 복수 접사 '-들'을 붙이고 싶지만 눈 씻고 찾아보아도 창업의 길을 걷는 사람이 없다. 어지간한 영화나 드라마 제목에도 'OO친구들'라고 이름 붙이는데 여긴 아니다. 그래서 완벽한 데칼코마니 구을 완성할 수 없다. 나도 어딘가에 끼고 싶다. 비슷한 길 걷는 사람, 어디 없어요? 우리 친구 하지 않을래요.



같은 길을 걷진 않지만, 나를 이해하고 응원해 주는 좋은 친구들이 있다. 음, 아닌 경우도 있다. 솔직하게 창업 후 보이는 몇 가지 반응이 있다. 상대방은 내게 전혀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보인다. 내가 진심으로 잘 되진 않길 바라는 묘한 마음이. 이건 삐뚤어진 시각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마음이 100이라면, 한편에 질투나 샘 비슷한 감정이 10-20을 차지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는 몇몇의 말투와 눈빛에 스민 그런 감정을 느낀다. 인간에겐 촉이라는 감각이 있다. 대놓고 그런 낌새를 보일 때는 정말 놀랐다. 숨김없이 말하자면 슬프다. 그리고 이해한다. 다 사람이고 남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과 그 반대의 마음이 언제나 공존한다는 걸 안다.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몇 사람을 잃었지만, 이 또한 인생의 배움 아닐까. 우정은 시간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를 아마도 100에 가까운 마음으로 응원하는 친구들과 함께 하며 외로움을 털어낸다. 각자의 바쁜 시간을 쪼개 나를 찾아주고 안부를 묻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 오프라인 매장을 열고 맞이한 3월, 고등학교 친구들과 축배를 들었다. 6개월이면 끝날 가게인데도 축하한다고 와줬던 친구들이다.


"전기세랑 자릿세는 내가 쏜다!"

"확실히 공간이 있으니까 편하네."

"타이밍 딱 좋은데?"


휴무일 하루, 매장 소개와 상품 설명에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곁들였다. 친구들의 추천으로 로제엽떡과 교촌 허니콤보까지 야무지게 먹었다. 어엿한 성인이 되었으면서도 알코올보단 음료가 땡기는 20대 여성 셋이서 정말 즐겁게 맛있는 시간을 보냈다. 자연스레 요즘 사는 얘기를 했다. 직장인과 자영업자와 취준생. 각자의 인생 고민이 가득했다. 거지 같은 출퇴근부터 진상 손님들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하는 셋의 모습, 성격과 행동은 1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서 묘했다. 똑같은 교복을 입고 꾸밈 하나 없는 얼굴과 몸매이던 여고생들의 모습이 어느덧 20대 후반을 향해가는 우리의 모습과 겹쳐 보일 때, 정말 묘했다.


"나이 먹을수록 10년 지기, 20년 지기가 많아지잖아. 그게 이런 건가 봐."

"에휴, 진짜 시간 왜 이렇게 빠르냐."

"로제 엽떡 개맛있음."


대충 이런 내용들로 함께한 몇 시간이 힐링이었다. 떡볶이와 치킨에 제법 배가 불렀음에도 "과자 안 먹을래?" 한 마디에 주섬주섬 일어나는 모습도 여전한 우리를 보여주었다. 희한하게도 함께 과자를 사 먹어본 적이 없어 서로의 과자 취향을 전혀 몰랐던 것이 놀라웠다. 각자 한 봉지씩 골랐는데, 어쩜 취향이 이토록 다채로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먹고 싶은 거 쏙쏙 잘 골라 나눠먹었다.


"내가 고른 게 별로여도 이해해. 이게 내 취향임."

"오, 아닌데? 나도 이거 좋아함."


콘초, 꼬깔콘, 맛동산 같은 셋의 수다와 미래 설계는 이후 몇 시간 더 이어졌다. 서로 다른 환경에 있음에도 어느 부분에서는 진짜 모습으로 함께할 수 있는 관계가 현재를 버티는 힘이 되어준다. 그래서 인생에는 친구가 필요한 건가 보다.



친구들. 사랑하는 내 친구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한다. 이성적인 이해관계를 벗어나 순수함에 가까운 인간관계 속에서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따스함을 주고받는다. 모든 걸 나눌 수는 없지만, 친구니까 응당 꺼내 보일 수 있는 속마음을 보이며 비슷한 불안감을 달랜다. 구태여 취업과 창업을 기준으로 사람을 나누면 한쪽은 여럿이 되고 한쪽은 단신이 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인생이라는 레이스에서 볼 때 우리는 다 혼자다. 그 긴 레이스를 쪼개고 쪼개고 또 쪼개어 보면 어느 한쪽으로 인원이 몰릴 때도 있다는 것. 지금 내가 선택한 길에 함께할 동료는 없지만 앞으로 생길 수도 있고 생각보다 많아질 수도 있다. 다만 주의해야 하는 건 지금 외롭고 벅차다고 중도 포기하거나 징징대기만 하는 거다. 직접 부딪히며 해보니 알겠다. 사람이 혼자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걸. 한 사람의 역량 역시 중요하지만 함께 하는 팀이 있다는 게 얼마나 힘이 될지를 배운다. 나는 직접 경험하면서 사람의 중요성을 배우고 있다. 인재의 중요성을 배우고 있다. 언젠가 나를 수식하는 표현 뒤에도 복수 접사를 붙이고 싶다. 그럴 수 있도록 영차영차 끈기 있게 나만의 경기를 운영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