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는 게 다가 아니다
어른이에게
이 책을 어른이에게 바치는 데 대해 어린이들이 용서해 주기 바란다. 내가 그에게 책을 바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상상해 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무엇이든 알고, 어린이의 마음까지도 이해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이유는 그가 이미 몸은 커버렸는데, 아직도 안은 어린이기 때문이다. 그는 위로받아야 할 형편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로도 충분하지 않다면, 나는 이 책을 어린 시절의 그에게 바치고 싶다. 어른들은 모두 한때는 다 어린아이였으니까 말이다. (생각보다 이를 기억하는 몇몇 어른이 있다.) 그래서 '바치는 글'을 이렇게 고쳐 쓰고자 한다.
어린 시절의 어른이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너무 유명해서 익숙한 〈어린 왕자〉의 서문을 조금 변형했다. 나는 어린이나 어른 하면, 꼭 어린 왕자의 첫 글이 생각난다. 〈어린 왕자〉는 읽으면 읽을수록 묘한 매력이 있다. 책 표지와 제목만 보면 평범한 동화 같은데, 내용은 생각보다 어렵다. 단순한데 심오하다. 명확하게 보여주는 기승전결 스토리를 기대한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내내 해소되지 않는 답답함을 경험해야 한다. 그래서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어야 아는 명작이다. 읽을 매마다 다른 느낌을 받으며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저명한 서문을 조금 바꾸어 어른이에게 바치는 이유는 세상의 모든 어른은 어린아이이기 때문이다. 어른은 도대체 뭘까? 나이 좀 먹었다고 어른이 되는 건 결단코 아니다. 전혀 아니다. 몇십 년 살았다고 어른이면 세상 사람은 다 어른이게? 나잇값 못한다는 표현은 그냥 있는 게 아니다.
어른의 의미는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스무 살 성인이 되면 어른이다 할 수도 있고, 삶의 경험이 켜켜이 쌓여 눅진해지면 어른이다 할 수도 있다. 나에게 있어 어른은 후자에 가깝다. 나이는 기준이 못 되다.
모두의 마음속에 10대의 시절이 선명하다. 그보다 어렸을 적도 기억하지만 그때의 것은 오래된 영화 필름처럼 끊기는 부분이 잦다. 나는 아직 20대라서 인지 스무 살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비교적 잘 기억한다. 굵직한 에피소드도 있고 인생의 잊지 못할 큰 이벤트도 몇 번 있었기에 그것들을 기점으로 역사를 되짚어가면 된다. 하지만 좀 더 나이를 먹으면 그럴 수 있을까? 이건 내 생각만으로 단정 짓긴 어렵다. 하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은 50대 이상의 주변 사람들에게 물으니 그들도 10, 20대 시절이 엊그제 같단다.
여든이 넘어 구순을 바라보고 계시는 우리 할머니조차 결혼하던 약 70년 전 시간을 기억하신다. 포대기에 이모를 업고 대문을 넘어들어오는데 어디 갔다 이제 오냐며 시어머니한테 혼났다는 이야기와 밥하는데 제대로 하라 구박받은 이야기는 할머니의 단골 토크 소재다. 아마 가장 강렬했던 기억이 할머니 안에 남은 듯 같은 이야기를 주로 하신다. 이를 통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지난 어린 시절은 영원히 자신의 안에 살아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모든 어린이의 꿈은 어른이 되는 것이고, 모든 어른의 꿈은 어린이가 되는 것이다. 어렸을 땐 막연히 어른이 되면 좋겠다 싶고, 막상 어른이 되면 그때가 좋았지 하며 엄마 손 잡고 어디든 가던 시절이 그립다. 나는 내가 아직 완전한 어른은 아닌 것 같다. 인간적 성숙도 면이나 경험적 측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다. 완전한 어른이란 게 있느냐 하면 그것도 모르겠다. 세상은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다.
하지만 '어떤 어른이 되지 말아야 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한다면, 절대 되고 싶지 않은 어른 상이 있다. 오, 벌써 입이 근질거릴 정도의 사례가 가득하다. 전지전능한 신이 된 듯 하늘 가장 꼭대기에서 아래로 인간 세상을 가만히 내려다보면 여기나 저기나 별 다를 게 없다. 해외여행을 가서도 가장 많이 깨닫는 거다. 먹는 거나 입는 거, 어떤 의식이나 예절이 좀 다르긴 한데 큰 틀에서 보면 한국이나 타국이나 비슷하다. 먹고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다. 그러나 조금 더 가까이, 디스플레이 화면을 확대하듯 어느 부분을 크게 보자면 분명 차이가 있다. 근래 내가 포착한 차이 나는 장면은 바로 어른의 모습이다.
정말 수만 가지 종류의 어른이 있다. 그걸 또 두 부류로 나누면 좋은 어른과 나쁜 어른이 있다. 나쁘다는 워딩이 좀 극단적이라면 좋지 못하다 정도로 표현할 만한 그런 사람들을 만난다. 어쩜 저렇게 늙었을까, 나이는 뭐로 먹은 걸까, 저 사람도 어렸을 땐 안 그랬을 텐데. 이러한 후기가 남는 내가 되고 싶지 않은 어른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나는 저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굳게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