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고혈압이라니?
2025년 7월, 난생처음 느끼는 끔찍한 두통이 있었다. 머리의 왼쪽 부분만 아픈데, 특히 왼쪽 관자놀이에서 수평으로 들어가는 부분이 찌르듯 아팠다. 정확히 영화에서 빌런이 머리에 총구를 대는 부분이다. 그 부위를 중심으로 머리 왼편과 목 왼쪽 뒤가 특히 아팠다. 머리 왼편에서 번지는 찌릿하고 불쾌한 통증이었다.
'왜 이러지?'
진정한 두통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머리가 아플 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거라 생각하겠지만, 진짜 머리가 아프면 찍 소리 못 낸다. 머리가 너무 아파 무엇에도 집중할 수가 없고 그저 '아··· 아···.' 하며 머리를 쥐어 싸맬 뿐이다. 나는 하필 더위에 취약한 타입이기도 하고, 후덥지근한 야외에서 격한 운동을 하고 나면 쪼개질 듯한 강한 통증이 있었기 때문에 더위를 먹었나 싶었다. 하지만 첫 통증이 나타난 게 낮 12시 시원한 스타벅스에 앉아있을 때였으므로 운동을 과하게 해서 아프다는 결론을 도출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했다. 두통은 한 번 시작되면 최소 30분에서 최대 1시간 이상 지속되었고, 매우 기분 나쁜 감각이었기 때문에 통증이 시작되면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요즘 좀 피곤해서 그런가.'
그때까지 올해 나는 하루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었다. 매일 새벽 3-4시에 잠들어 아침 8시경 일어나는 루틴으로 살고 있었다. 오프라인 스토어 휴무일이 내가 쉬는 날이었지만, 사업을 해보면 알듯 원래 휴무일은 영업일과 다를 바가 없다. 쉬는 날에는 영업일에 못하거나 영업일이 정상 작동되도록 하는 배경의 일들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영상과 상품을 만들고, 상세페이지를 만들고, 홍보 피드를 만들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계획하고, 청소를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기 위해 머리를 굴리면 휴무일 이틀은 언제 있었냐는 듯 지나간다. 밤은 자는 시간이 아니다. 그저 할 일을 마저 하는 조도가 낮은 시간대일 뿐. 새벽 취침이 루틴이 되고 취미나 여행, 쉼 등 나를 돌보는 시간은 안중에도 없는 게 지당했다.
자영업이라는 게, 사업을 운영하는 게 원래 휴일도 여가도 없지만 하계 스토어를 운영하는 동안 후회가 없도록 최선의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에 나 자신은 모든 것의 뒷전에 두었다. 나는 중요하지 않다. 일과 사업이 어떻게는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나는 젊고 체력도 좋은 편이니까 괜찮아. 그게 한심하고 안일한 생각이었음은 한 달간 병원을 오가며 상공을 떠도는 혈압 수치를 보고 깨달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두통은 점점 잦아졌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현되었다. 처음엔 더운 야외에서 운동을 하는 중에 혹은 그 후에 주로 아팠다면 점점 통증의 빈도가 잦아졌다. 아침에 머리가 아파서 깨고, 새벽에 머리가 아파서 자기 힘들었다. 멀쩡히 있다가 갑자기 아프고, 머리가 웅웅 울리며 귓속에서 맥이 펄쩍펄쩍 뛰는 게 자주 느껴졌다. 눈을 뜨고 할 일을 하다가 돌연 시작되는 두통에 인상을 쓰기 일쑤였고 이러다 머리가 터지는 건 아닐까, 혹시 머릿속에 뭔가 공포스러운 게 자라고 있는 걸까 우려되기도 했다. 무언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통증을 느낀 지 약 일주일 만에 병원에 갔다. 대체 어느 병원에 가야 하는지도 몰라서 두통에 효과가 있다는 신경내과를 찾아갔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한 일주일 전부터 머리 왼쪽이 너무 아파요. 목 뒤에서 쭉 올라와서 머리 왼쪽이 갑자기 아파요. 여기 관자놀이 부근이 제일 불편해요. 여기서 쭉 안쪽으로요. 안이 아파요, 안이. 딱 총 대는 자리요." 내 머리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특히 운동 끝나고 나면 갑자기 심하게 아파요."
"무슨 운동하시는데요?"
"그 야외 하천변에서 에어로빅 하는데, 이게 날이 더워서 그런 건지···. 한 1시간 이상 아파서 여기(관자놀이 부근)를 꾹꾹 눌러요."
"어떤 일 하세요?"
"디자이너예요."
"그럼 컴퓨터 많이 하시겠네요?"
"네, 거의 하루 종일 해요."
"목 뒤가 엄청 뭉쳤어요. 엄청 딱딱하네. 혈압 재볼게요."
몇 초의 시간이 흐르고,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혈압이 되게 높네. 지금 140 넘게 나와요. 나이가 어린데 벌써 이러면 안 돼요."
"아···."
"지금 서른도 안 됐는데 벌써 고혈압 약 먹으면 되겠어요?"
"아뇨···."
"일단 두통약 좀 드려볼 테니까 드시고 3일 뒤에 다시 오세요. 주사도 맞고 가시고요."
청진기로 진료도 받고, 손목 맥박도 재고, 동맥경화 검사도 받았다. 고요한 특수치료실에 누워 검사를 받는데 무섭기까지 했다. 하필 올해 뇌출혈로 쓰러진 지인이 있었기 때문에 머리에 문제가 생긴 것이 두려웠다. 나쁜 상상은 멈추는 법을 모른다. 의사 선생님이 동맥경화는 아니고, 혈압이 높아서 그런 거라고 하니 다행이었지만, 내 연령대에서 보기 어려운 수치가 내심 신경 쓰이는 모양이신 듯했다. 병원을 자주 방문하게 되면서 선생님은 내게 혈압약의 종류와 기능, 고혈압의 원인, 상식적인 예방법 등에 대해 말씀하셨다. 듣기만 해도 겁 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 위험 앞에 있다.
내가 고혈압이라니? 참담한 경고와 함께 약을 받았다. 처방받은 약 중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면 버티지 말고 먹으라던 약이 있었는데, 그 약을 먹으면 속이 쓰리고 자꾸 토를 했다. 덕분에 며칠 뒤 병원에 가기 전까지 참 고생을 했다. 그냥 있다가 갑자기 머리가 아프고, 그래서 약을 먹으면 토를 하는 악순환이었다. 머리와 귀 속에서 두근두근 뛰는 맥박소리가 점점 커져 거슬리고, 갑자기 시작되는 통증도 잦아져 하는 수 없이 다시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리니, 해당 약을 빼고 다시 처방해 주셨다. 혈행 개선 약이라나 뭐라나 그랬는데 혈압약은 아니지만, 두통 치료에 먹는다고 했다. 가끔 약이 잘 안 맞아 부작용이 일어나는 사람이 있다는데 그게 하필 나였던 거다.
단 하루의 쉬는 날 없이 나를 갈아 넣은 결과가 청년 고혈압이라면, 이건 분명 잘못되었어. 팝업 스토어 하반기 지원에도 합격되어 운영 기간이 연장되면서 구청 담당자 변화 및 정비를 이유로 7월이 되어서야 올해 첫 휴식기를 가진 거다. 달콤할 휴식기에 하고 싶던 일이 많았는데, 한 것은 혈압 안정화뿐이었고 병원과 약국을 오가는 일이 전부였다. 혈압은 3주가 넘게 130에서 140을 웃돌았고, 진료를 받으러 갈 때마다 오늘은 제발 혈압이 낮아졌길 바라며 괜히 의사 선생님의 눈치를 보기도 했다. 집에서 엄마가 쓰는 가정용 혈압계로 혈압도 자주 쟀지만, 매번 혈압은 130을 거뜬히 넘기며 내 나이면 120 이하여야 정상이라던 의사의 말을 가뿐히 무시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네 번째 내원에서도 138 정도의 수치가 나왔을 때는 절망스럽기까지 했다.
병원에서 딸기향 물약 컬러의 두통주사를 맞았다. 오른팔에 두 번, 왼팔에 한 번 바늘을 꽂고 하얀 천장을 올려다보는데 그냥 좀 슬펐다. 작은 빨간 피멍이 생긴 주삿바늘 구멍을 볼 때도 슬펐다.
'이제 겨우 1년 되어가는데 벌써 이러면 어떡해? 이렇게 해도 결과가 엄청나지도 않은데···. 내가 건강을 잃고, 나이 스물여섯부터 혈압약을 먹기 시작해야 하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일까? 진짜 짜증 나네. 억울해. 아, 근데 영상 편집해야 하는데···. 그거 언제 하지? 이제 휴무 기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어떡하지···.'
톡, 톡, 떡어지는 빨간빛 투명 액체가 긴 호스를 따라 내 팔로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도 영상을 찍으며 브랜드 성장기로 남겨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속상해도 찰나의 소스와 스토리를 놓칠 수가 없었다. 와당탕탕 부딪히며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걸 잃으면서도 '내가 지금 이렇게 브랜드를 키우고 있어요.' 같은 이야기를 쌓고 싶어서. 내가 나의 시간과 돈과 청춘을 써 얻은 결과가 건강을 잃는 거라면, 청년 고혈압 환자가 될 위기에 놓이는 거라면, 과연 이 투자는 옳은 걸까? 나 혹시 엉뚱한데 꼬라박고 있는 거 아니야?
침대에 누워 주사를 맞으며 하얀 병원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참 바보 같다. 어쩜 이렇게 나약하냐? 너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 많아. 어쩌려고 벌써 이래.'
투자의 결과가 이토록 참혹해지고 나서도 양가적인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렇지만 그 모든 걸 포괄하는 한 가지 생각은 내가 참 모지리 같다는 거다. 알면서도 완전히 뜯어고칠 생각은 없지만, 앞으로는 정신 좀 차리고 포기할 건 포기하면서 힘 좀 빼야겠다 다짐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다. 이건 하늘이 전하는 경고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가장 요구되는 삶의 태도 중 하나가 바로 '존버 정신'이다. 뭐든 꾸준히 하는 놈이 이기는 거다. 뭐든 버티는 놈이 이긴다. 오랜 시간을 들여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건 쉽지 않기에 이러한 말이 나온 듯하다. 사실 어려운 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들이는 것이다. 뭐가 나올지 모르지만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믿으며 삶의 가장 귀한 것을 쏟아붓는 행위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반증 같아 고개가 끄덕여진다. 실제로 정말 '존나게 오래 버티는' 사람은 많이 없기도 하거니와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하다.
사람마다 투자하는 영역이 다르다. 건강일 수도, 학력일 수도, 재력이나 명예, 또는 행복일 수도 있다. 행복은 목표나 목적이 아닌 과정이라 하지만 행복의 본질이 무엇인지 뜯어보기 전에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것은 아마도 행복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든, 돈을 벌기 위해서든 먹고살려고 하는 모든 행위는 결국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것이 아닌가? 그냥 먹고사는 게 아니라 잘 먹고 잘 살고 싶어서, 즐겁고 행복하게 사람답게 살고 싶어 매일 열심이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오늘도 집 밖을 나서는 이유, 돈 줘도 못 산다는 그 귀한 시간을 어딘가에 가서 쓰는 우리는 모두 행복을 위해 현재를 투자하고 있다.
올해 내가 가장 많은 것을 쏟아붓는 곳은 당연 아티클로젯이다. 유지하거나 나아가지 않으면 폐업이 디폴트 값인 게 사업이라 나는 내 시간과 건강, 노력, 정성, 여유 등 모든 것을 여기 투자한다. 솔직히 건강까지 갈아 넣고 나니 엄청난 회의와 허무가 몰려와 건강은 전보다 적당히 투자하지만. 아티클로젯은 살고, 아인장은 죽으면 의미가 없으니까. 아무튼 무조건 잘 된다는 믿음과 비전 하나로 청춘을 바쳐보고는 있는데, 이 결과가 모호하다는 게 희뿌연 안개 같다.
비누로 꼼꼼하게 닦아 최고급 휴지로 물기를 톡톡 제거하고 부드러운 새 안경닦이로 깔끔하게 정리한 안경을 쓰고 보듯 선명하게 미래를 볼 수 있다면 나는 보고 싶다. 한 3년에서 5년 정도의 미래를. 아니면 딱 1년 뒤의 모습이라도···. 지금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결코 헛되지 않으며, 이토록 멋지게 몸집을 키운 걸 딱 한 번이라도 보고 싶다. 그만큼 불안한 현재는 약간의 미래를 갈망하게 만든다. 지금 내가 하는 투자가 정말 현명한 투자인지 슬쩍 답을 보여준다면 참 좋을 텐데.
아, 다행히도 지금은 괜찮습니다. 머리 안 아파요. 귓속에서 맥박은 자주 뛰지만···. 뭐, 별일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