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 선택을 후회할까

가장 싫은 말

by 아인장

동생은 진짜 눈물이 없다. 슬픈 영화를 봐도, 감동적인 영화를 봐도 안 운다. 엄마랑 내가 훌쩍일 때마다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마음이 여리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동생이 나보다 여리지만 참 눈물 없는 애다. 영화에서 '이제 울어라' 판을 깔아준 장면에서조차 건조한 동생의 눈알을 보며 진짜 이상한 놈이네, 생각하기도 한다. 로봇이야, 뭐야. 눈물이 왜 안 나?


사실 나 역시 눈물이 많은 편은 아니다. 가장 최근에 운 게 언제였는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별로 우는 타입은 아니다. 자주 울진 않지만, 대놓고 슬프거나 감동적인 장면에서는 어김없이 눈가가 촉촉해진다. 기억을 더듬어 볼 때, 읽으며 엉엉 울었던 책 몇 권이 생각난다. 대표적으로 『콩나물 시루』, 『미스터 션샤인』,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이다. 내용을 말하면 스포가 되기에 대강의 묘사만 하자면, 소중한 것을 잃는 장면이 슬프다.


특히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은 가족들과 외식하러 이동하던 차 안에 읽은 거였는데, 딸 유디트의 시체를 챙기지 못하고 버릴 수밖에 없는 장면에서 진짜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났다. 눈물이 멈춰지지 않았다. 그만 울고 싶은데 고장 난 것처럼 줄줄줄 눈물이 흘렀다. 식당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도 한동안 계속 울었다. 엄마, 아빠가 왜 이러냐며 네가 이러면 우리가 울린 줄 안다고 웃겨하면서 동시에 당황하던 생각이 난다. 주문받으러 오신 직원분과 음식 서빙하러 오신 직원분도 날 힐끔 보았다. 진짜 "흐어어엉···." 울면서 나조차 이 끝없이 샘솟는 슬픔과 눈물에 식은땀이 났다. 겨우 육칼과 육전을 먹으며 잠잠해졌는데, 다 먹고 차를 타면서 책 표지를 보니 또 슬퍼졌던 참으로 난감한 경험이었다.


밤에 잠들기 전 꼭 책을 읽는 습관으로 새벽에 혼자 눈 밑에 휴지를 붙이고 눈물 콧물 쏙 빼며 읽은 책들은 괜히 크게 울면 가족들이 놀랄까 봐 숨죽여 울게 했다. 누가 보면 되게 걱정스러웠을 거다. 이외에도 범죄 프로그램에서 정말 억울하고 원통한 사연이 소개되어도 눈물이 난다. 세상에는 눈물을 흘릴 일들이 많다.


그동안 크게 운 경험을 늘어놓았지만, 정말로 나는 눈물이 많은 편이 아니다. 한 번 울 때 쏟아내는 타입이랄까? 내가 작품을 감상할 때가 아닌 일상에서 눈물이 없는 이유는 아마 좀 이성적인 편이어서다. 특히 일을 하거나 갈등을 해결해야 할 때, 내 생각과 주장을 상대방에게 정확히 전달하고 싶을 때 머리가 차가워진다. 흥분해서 득 될 게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며, 하나하나 조목조목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해야 하기 때문에 감정의 강도가 강해졌다가 쿨타임이 시작된다.


그런데 이런 내가! 올해 3, 4월에 정말 많이 울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본 것도 아닌데 그냥 내 인생이 막막하고 현실이 속상해서 자주 울었다. 눈물을 보이는 건 어쩐지 나약해 보여서 싫은데 진짜 자주 울었다. 눈에 물기 차오르는 게 쉬웠다. 마음만 먹으면 금방 두둥실 눈물을 채워 올릴 수 있었다. 혼자 자면서도, 가게에 있으면서도 문득 눈물이 났다. 가장 최악이었던 건 자꾸 엄마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거였다. 멀쩡히 얘기하다가 눈이 빨개지며 왈칵 눈물이 날 때 스스로가 너무 싫었다. 감정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휩쓸리는 나 자신에 화가 났다. 조절 능력이 부족한 스스로가 창피하면서 엄마가 신경 쓰이게 만드는 것도 싫었다. 부끄러웠다. 나이 스무 살 넘게 먹고서도 부모 걱정이나 시키는 한심한 자식. 내 가장 든든한 밑천인 자존감과 자신감도 떨어졌다. 모든 게 다 안 좋았다.



'내가 왜 사업을 한다고 했을까? 왜 안 될까? 도대체 뭘 더 해야 하지? 누가 좀 도와주었으면···. 아, 살기 싫다. 사는 게 재미가 없네. 애초에 시작이 잘못된 건가 봐. 난 아무 능력이 없는 것 같아. 나는 내가 되게 큰 그릇이라고 생각했는데, 모든 게 다 부족한 사람이었네.'


부정적인 사고는 쉽다. 아니라고 믿는 모든 걸 입 밖으로 꺼내거나 머릿속을 잠식시킨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후회하는 건데, 후회가 정말 많이 됐다. 이럴 걸, 저럴 걸, 바꿀 수 없는 과거를 탓하며 당시엔 최선이었을 모든 선택을 후회했다. 운동을 할 시간도, 잠잘 시간도 없이 노력하는데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건강을 버리고, 수면을 버리고, 휴식을 버리며 쿵쾅거리는 맥박소리를 벗 삼아 사는데도 이 모양이라니. 이상한 손님들도 많이 만나며 세상의 녹록지 않음도 몸소 겪었다. 최악이었다. 눈물은 짜증 날 정도록 자주 나고 비관은 끝을 모르고 이어진 몸과 마음이 힘든 봄이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내 선택을 후회할까?'


엄마는 내 검은 기운을 가장 가까이서 가장 자주 접하는 사람이었기에 당시의 내가 얼마나 어둡고 침잠해 있는지 제일 잘 알았다. 얼마 뒤, 엄마가 말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니? 그럼 그냥 그만둬. 요즘 가끔 후회해. 네가 처음 사업 한다고 했을 때 말릴 걸, 시키지 말걸. 온갖 검은 기운 다 뿜어내는데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는 거야?"


삐뚤어질 대로 삐뚤어진 마음은 위로받길 원하면서도 불평불만이 쉬워서 그 말도 듣기가 싫었다. 엄마가 하는 말이 어떤 마음에서 비롯된 건지 알지만 솔직하게 사업을 포기할 생각은 없으니 그만두라는 말이 듣기 싫었다. 대신 내 귀에 꽂힌 말은 '엄마가 후회한다'는 말이었다. 애초에 사업 무서운 줄 모르고 덤비는 딸을 막을 걸 후회한다는 엄마의 말이 탁 꽂혔다. 은근하게 나도 생각하던 거라 더 잘 들린 걸지도 모르겠다. 웃기게도 제대로 사업을 운영한 지는 겨우 5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면서 하지 말걸 그랬나, 후회하는 내가 부끄러웠지만 그땐 그랬다. 덕분에 알게 된 건 내가 경험이 아직 부족하고, 세상의 풍파를 훨씬 더 많이 겪어봐야 하는 애송이라는 사실이다. 내 그릇의 크기가 어떤지는 아직 잘 모르겠으나, 그 속에 담긴 것이 아직 별거 없다는 게 탄로 난 순간이었다.


내 인생은 내 몫이지만, 엄마를 가장 자주 만나고 함께 살 맞대며 살다 보니 그녀의 생각에도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활발하고 웃기기와 말하기를 좋아하던 딸이 하루하루 생기와 웃음을 잃어가는 것을 보며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마 잠깐이라도 엄마는 진심으로 내가 이 일을 시작한 걸 후회했을 것 같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큰 만큼 후회를 남기어 버렸다는 실패감이 무거웠던 지독한 시간을 난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