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

0의 상태로 있는 것

by 아인장

사람마다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다르다. 비단 휴일에 하는 일뿐만 아니라, 잠깐의 이동이나 대기 시간에 하는 일도 저마다 다르다. 나는 가만히 있는 건 할 수 있는데, 멍 때리거나 아무 행동을 취하지 않고 시간 보내는 걸 정말 못한다. 이건 기질의 문제. 그래서 자주 책을 본다. 읽을거리가 없으면 불안하고, 시간을 그냥 '흘려' 보내는 느낌이다. 책이 없으면 중국어 단어를 외우거나 짧은 동영상 강의를 듣는다. 이밖에 다른 일로 시간을 보내는 게 참 어렵다.


내 과거를 소개하며 나를 어필해야 하는 순간을 맞닥뜨릴 때 할 이야기가 있으려면 끊임없이 뭔가를 해야 한다. 일회성 말고,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 이상 지속하고 있는 행위가 필요하다. 유지 기간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 스스로 꾸준하다고 느끼는 건 최소 6개월 이상이므로 난 그 이상 지속해 온 나 스스로와의 약속과 성장을 꺼낸다. 일정 기간 이상의 꾸준함이어야 상대를 설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들 '공백기'가 무섭다고 한다. 누군가 "이때부터 이때까지는 특별한 내용이 없는데, 이 공백기에는 뭘 하셨나요?"라고 묻는 게 두렵단다. 붕 떠버린 일 년, 혹은 몇 개월이나 몇 년의 시간을 급히 포장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겠지. 일개 인간의 삶으로 볼 때, 서류상으로 비어있는 시간 동안 잘 먹고 잘 자고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살았으면 충분하지만 치열한 사회 속에서 하얗게 비어있는 시간은 분명 치명적인 결핍이다. 우린 타인에게 나의 여백을 들키는 걸 두려워하고, 어떻게든 나라는 사람의 역사를 알차게 꽉 채우려고 노력한다.


공백기의 길이와 기준, 부끄럽지 않은 역사의 두께도 개인별로 다르겠지만 나는 가끔 내 주위의 인생 여백미가 넘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가장 먼저 하는 생각은, '걱정이 안 되나?' 하는 것이다. 사지 멀쩡하고, 집안에도 문제가 없는데 — 제삼자의 시선으로 캐치하지 못하는 이면의 이야기가 있을 수도 있지만 — 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을까 궁금하게 만드는 몇몇 사람들. 차라리 공부라도 하지, 아니면 알바라도 하던가. 나이가 찼는데 왜 그렇게 청춘을 보낼까? 어쩌면 그들 같은 여유로운 삶의 태도를 갖는 것도 좋겠지만.


분명 각자 매일 하는 모종의 습관 같은 일들이 있겠지만, 보편적인 인식에서 볼 때 젊은 인생을 아깝게 흘려보내는 듯한 지인들을 볼 때 난 복합적인 감정이 든다. 내가 애정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당연히 잘 되고 행복하길 바라기 때문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싶으나, 근본적인 인생의 모든 문제는 남이 해결해 줄 수 없으므로 나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남의 인생에 대고 뭐라 참견하는 것도 예의 없어서 그냥 내 선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을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듯 보여서 되려 내가 겁난다.



나는 하루하루의 시간이 아깝고, 나보다 성공하여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동경하고, 그들을 보고 자극을 받는다. 무(無)로 흘려보내는 내 젊음을 눈뜨고 볼 수가 없어서 일단 현실에 최선을 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력서와 같은 서류의 칸을 채워야 할 때, '더 열심히 살 걸' 하는 아쉬움을 느낀다. 그러면서 전에 했던 일들이 내 능력의 근거로써 남을 설득시킬 무기가 될 때, '이거 하기 잘했다'와 같은 뿌듯함도 느낀다. 어떤 기회가 나에게 올지 모르니 일단 지금 최선을 다해 사는 것. 할까 말까 고민될 땐 일단 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미래의 나를 위한 선택이자 결정이었다는 것을 여실히 깨닫는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올지니!


내가 믿는 몇 문장 중 하나다. 이것은 진짜다. 기회는 딱 한 번만 오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 기회들은 다 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잡을 용기와 무기가 준비되어 있다면 일단 한 번 비벼볼 수는 있다. 내게 그 기회를 달라고 외칠 수 있다. 간절한 외침과 투쟁으로 기회를 잡는다면 더없이 기쁘고, 아쉽게 놓친다면 무엇을 보완하고 쌓아야 할까 연구할 새로운 기회가 되기도 한다. 뭐든 된다.


나는 전공과 상관없는 일도 하고 있다. AI 시대에, 앞으로 현대 직업의 90%가 사라진다는데 이제 전공이 무슨 소용이란 말이야? 어차피 한 가지 일만 하고 싶지도 않으니 잘 되었다. 대신 남보다 배로 노력하고, 배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기회를 잡을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보다 더 아무것도 안 할 수 없다. 냉철하게 나는 오늘이 가장 짧고, 절대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살고 있다.



나름의 최선으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당장은 금전적인 보상과 여유로 결괏값이 매겨지지 않아서 나는 때론 괴롭다. 뭐라도 하며 꿈꾸는 미래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앞만 보고 달리는 고독한 경주마가 돼버릴까 무섭다. 그렇지만 갖가지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간, 나는 어쩌면 마땅한 시험대에 오른 것은 아닐까. 수험생 시절 수능을 앞두고 불안해하던 우리에게 선생님들이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불안하면 더 공부해. 안 하면 더 불안해진다."


선생님, 진짜 정답이세요. 열아홉 살에 이미 배웠다. 아무것도 안 하면 오히려 불안하다는 걸. 불안할수록 노력하고 공부하라는 걸. 불안을 피하지 말자. 정면승부다. 의식주가 가장 중요한 건 맞아, 근데 그거 말고 내 성장과 발전 방향으로의 행위도 놓치지 말자.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것도 될 수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