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하는 거지
"무슨 생각하면서 하세요?"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연아 킴은 그냥 솔직한 심정을 말한 거라던데 명언이 됐다. 아무 생각 없이 습관처럼 하신단다. 그냥 묵묵히 하신단다. 연아 킴이 말씀하시길 그냥 한다고 하신다.
생각하지 않음이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경우를 떠올려본다. 음··· 잘 모르겠다. 난 생각하지 않고 뭘 하는 경우가 잘 없다. 단순 노동을 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 김장하는 날 배추 속을 넣을 때, 만두를 빚을 때, 줄 맞춰 무언가를 정리할 때 등 — 늘 다음 계획을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가끔은 강제로 생각을 꺼야 한다. 가령, 면접을 보거나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투두리스트를 처리할 때가 그렇다. 긍정적인 방향이든 부정적인 방향이든 생각을 멈추는 것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게 쉬워서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때문에 억지로 생각하기를 멈춘다. 그리고 당장 눈앞의 해결해야 하는 일에만 집중한다. 연아 킴이 말씀하신 '그냥 한다'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좀 더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그림을 그릴 때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아예 안 하는 건 아니고, 생각의 크기나 이어짐이 비교적 작고 짧은 느낌이라고 할까? 그저 내 손이 움직이는 대로, 손이 가고 싶은 대로 슥슥 칠하고 묘사한다. 물론 어디를 어떤 색으로 칠할까 같은 작은 계획을 세우기는 하지만 대개는 무(無) 생각 상태로 그린다. 스트레스는 없다. 그 순간에는 그림과 나, 둘 뿐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 도구가 색연필이기 때문에 색연필을 쥐고 색을 칠할 때의 내가 가장 편안한 것 같다. 종이 표면의 오돌토돌한 질감 때문에 색연필이 지난 자리에 자잘한 흰 여백이 남는다. 그럼 다시 그 자리를 문지르고 또 문질러 색을 채운다. 마침내 고운 빛깔이 종이를 가득 채운다. 부드럽고 따뜻한 분위기의 그림이 완성될 때 나는 내 손으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 기분을 느낀다. 원하는 색을 골라 칠하고 메꾸며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냥 한다.
보통 좋아하는 일을 하면 생각을 비우고 한다. 복잡함보다 즐거움이 커서 그렇다. 그래서 시간이 잘 간다. 또,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해도 피곤하지 않다. 혹은 덜 피곤하거나 흥미가 피로를 이긴다. 그래서 우리는 좋아하는 일을 하며 먹고살아야 하고 그런 일을 찾기 위해 무수한 도전을 해야 한다. 물론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그 순수했던 선호감을 잃어버리기 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일이 인생의 가장 바탕이 되는 것이 옳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좇아 브랜드를 만들었고, 나 혼자의 계획과 노력으로 이런저런 일을 벌이며 세상에 나와 아티클로젯이 있음을 외치고 있다. 그 과정은 분명 외롭고 순탄하지 않으며 미래에 성공한 내가 되짚어 볼 때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순간으로 기억되는 장면들도 있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기 때문에 누구의 탓도 하지 못하고 모든 것에 직접 부딪히며 배우고 바꾸어가며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진정으로 깨닫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 1가지를 하기 위해서는 싫어하는 일 99가지를 해야 한다는 말은 참말이라는 사실을.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생각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딱 한 가지 일을 하기 위해 나는 억지로 생각을 끄고 입 다물로 해야 하는 아흔아홉 가지의 일을 하고, 견디고, 싸운다.
직접 경험해 본 결과,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생각을 비우는 일은 쉽지 않다. 긍정보다 부정이 쉬운 게 본디 인간이라 안 그래도 하기 싫어 죽겠는 건 하면서도 그냥 죽을 맛이다. 드라마틱한 일 없고, 영화 같은 순간은 더 없다. 그러나 묵묵히 해야 함을 알고 지금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마땅히 취해야 할 자세이자 태도다.
생각하는 인간, 호모 사피엔스이면서도 생각하지 않음이 나은 선택지라는 걸 안다. 생각의 늪에 깊이 빠지긴 쉽고 빠져나오긴 어렵다는 걸 배웠다. 그래서 난 요즘 생각을 잘 안 한다. 내 인생의 결과는 좋은 결괏값으로 세팅해 두고, 거기까지 가는 과정은 그냥 하기로 한다. 입 딱 다물고, 생각 딱 멈추고 그냥 한다. 그냥, 그냥 한다. '왜', 혹은 '무슨'와 같은 의문은 접어둔다. 오직 '어떻게'에만 집중한다. 어린 나이에 무거운 책임감과 꿈을 지고 성공한 연아 킴이 말씀하셨는데, 믿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