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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변의 잡설 Aug 15. 2022

<질서 너머>, 조던 피터슨

'자기 계발 이데올로기', 조던 피터슨의 말은 조던 피터슨의 말로 반박

1. 학부 새내기 때는 세상의 모순에 분개하며 혁명으로 부조리를 뿌리째 뽑아내야 한다고 믿었다. 많은 이들이 그랬을 것이다. 선배들의 말은 매우 매력적으로 들렸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점점 생각이 변했다. 정확히 말하면 단순히 나이가 들었기 때문은 아니다. 경험의 총량이 늘어나면서 그동안 바라본 세상이 어릴 적 내 머릿속으로 막연히 떠올리던 모습과 너무나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내가 어릴 적 생각하던 것들이 사실은 파시즘과 매우 닮았다는 점 또한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 당시 읽었던 책이 이병주의 '지리산'이다. 지리산을 읽으면서 내 생각을 다시금 점검하게 되었다. 


그 후 어떠한 주장을 하기가 매우 조심스러워졌다. 자기 검열이 더욱 심해진 것이다. 다른 이들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의심이 깊어졌다. 의심이 깊어지면 확신을 갖기 어려워지고 자칫 허무주의와 냉소주의로 빠질 수도 있다. ('에라 모르겠다. 운동이나 하고 책이나 읽자. 돈이나 벌고 맛집이냐 가자')




2. 요즘 (사실 그가 유명해진지는 꽤 오래된 것 같지만, 나는 언제나 트렌드에 뒤처지므로) 조던 피터슨이 핫하다길래, 조던 피터슨의 책을 읽어볼까 했는데 우연히 내 책장에서 그의 책 <질서 너머>를 발견했다. 나도 모르게 책을 수집해두었던 것이다. (그렇게 수집만 해둔 책들이 대체 몇 권인가..) 


그는 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이토록 유명해졌을까. 책을 뒤적이다가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어 옮겨 적어 본다. (하단 참조)




3. 조던 피터슨은 마르크시즘과 나치즘을 비판하고 나아가 비판의 지점을 이데올로기 전체로 확장한다.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회현상을 무리하게 단순화하고 심지어 유사종교화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창시자들은 지대를 추구하고, 추종자들 또한 그에 빌붙어 지대를 추구한다. 집단은 자연스레 일사불란한 체계를 갖추게 되고 전체주의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피터슨은 이데올로기를 외치는 사람들을 경계하고, 자기 계발에 전념하라고 말한다. 자기 계발을 잘 해낸 뒤에 '더 큰 문제'를 바라보라는 것이다. 


그러나 피터슨의 주장은 주목할만하다. 어디까지나 개인윤리로써 받아들일만하다. 그런데 피터슨이 한국 유튜브를 보면 어떻게 말할지 궁금하다. 자기 계발 유튜버들이 뒤덮고 있는 한국 유튜브 생태계를 보고, 자기 계발 이데올로기를 외치며 책과 강의를 파는 유튜버들을 경계하라고 하지 않을까. 피터슨 또한 거울을 보는 기분일 듯하다. 



4. 결론

이데올로기 비판 부분은 마음에 든다. 자기 계발의 중요성 주장 또한 개인윤리로서 받아들이기에 좋다. 그러나 이데올로기 비판이 왜 갑자기 자기 계발의 중요성으로 귀결되는지 설득력이 부족하다. 마치 '책을 많이 읽으면 부자가 된다'는 주장만큼이나 어색하다. 무엇보다 조던 피터슨은 자기 계발을 외치며 명사가 되었고 큰 부를 축적하지 않았나. 조던 피터슨의 말은 조던 피터슨의 말로 반박 가능하다. 




- 니체는 일신교 사상의 목표지향적인 구조와 그것이 제시하는 의미 있는 세계 바깥으로 인생의 목적이 밀려나 불확실해짐에 따라 허무주의가 부상하여 우리의 실존을 황폐하게 만들 것으로 믿었다. 그리고 만물을 창조한 아버지를 대신해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가 사람들을 지배할 거라고 주장했다. 194


- 도스토옙스키 역시 자신의 걸작 '악령'에서 니체와 같은 문제를 거의 동시대에 다루었다. (중략) 도스토옙스키가 보기에 공산주의는 긍정적인 발전이 아니었다. 몇몇 공리에 기초한 엄격하고 포괄적인 유토피아적 이데올로기는 과거의 종교나 군주제, 심지어 그리스도교 이전 야만의 시대에서 횡행했던 그 모든 잔인성을 뛰어넘을 위험이 있었다. 194


- 니체와 도스토옙스키는 공산주의가 종교나 허무주의를 대신하는 합리적이고 일관성 있고 도덕적인 대안으로써 사람들을 매료시킬 테지만, 그 결과는 치명적일 거라고 예견했다. (중략)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곳에서는 삶의 뿌리가 잘려나가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195


- 그렇다면 허무주의와 전체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만의 가치를 창조하고, 그에 따라 살 수 있을 만큼 강한 개인이 되는 것이다. (중략) 허무주의와 전체주의 대신 이 길(초인)을 택한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치로 이루어진 우주론을 만들어야 한다. 196


- 하지만 두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와 융은 이 개념을 수포로 만들었다. 우리에게는 의식적인 선택으로 가치를 창조할 만큼의 자아가 없다는 점을 입증한 것이다. 경험의 한계, 수많은 인지 편향, 짧은 수명을 고려할 때 그 누구도 무에서 (ex nihilo) 자기 자신을 창조할 천재성은 갖고 있지 않다. 196


- 니체의 주장에는 다른 문제들도 있다. 각 사람이 자신만의 가치관에 따라 산다면 무엇이 우리를 통합시킬까? (중략) 초인들이 창조한 가치에 비슷한 점이 없다면, 초인들의 사회는 어떻게 끝없는 마찰을 피할 수 있을까? (중략) 오히려 지난 150년간 의미는 위기를 겪었고, 나치 독일, 소련, 중화인민공화국 같은 전체주의 국가들이 나타났다. 니체와 도스토옙스키가 걱정한 것도 이런 허무주의와 이데올로기가 이끄는 사회적 심리적 파국이었다. 196


- 과학적 방법론은 분명 유용하지만 가치는 주관적인 것이므로 현실의 구성 요소가 아니라는 과학의 세계관은 결코 타당하지 않다. (중략) 인생의 참된 의미는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것, 그럼에도 보편적인 것에 있다. 예를 들어 양심이라든가, 종교적 경험이 춤 노래 단식 명상 같은 행동뿐 아니라 화학적 작용으로도 유발된다는 사실이 주관적이면서 보편적인 것의 존재를 뒷받침한다. 종교가 수많은 사람을 끌어들인다는 사실도 내면에서 들리는 어떤 보편적인 것을 가리킨다. 197


- 우리는 전체주의의 결과를 목격했다. 그들은 집단이 인생의 짐을 나눠지고, 올바른 길을 제시하고, 끔찍한 세계를 달콤한 유토피아로 바꿀 수 있다고 선전했다. 198


- 나치즘 역시 강력하고 위험한 이데올로기였다. 그 철학(니체 철학)은 나치즘에 상당히 이상하게 반영되었다. 니체는 개인의 발전을 장려했지만 나치가 한 일은 집단의 가치관을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었다. 사실 니체는 나치즘 같은 이데올로기가 부상할 수 있는 문화적 역사적 조건을 확인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199


- 오늘날 세계에는 보수주의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인종 및 젠더 사상 포스트모더니즘 환경주의 등의 각종 '주의 ism'들을 믿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솔직히 말해 그들은 일신교도와 다를 바 없다. 그들의 신앙은 입증되기보다는 선험적으로 인정해야 하는 공리와 근본적인 믿음에 기반을 둔다. 200


- 중요한 문제들을 다룰 때는 개별 원인들을 신중하게 분석한 뒤에 잠재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고 실행하고서, 그 효과를 조심스럽게 평가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중략) 반면 문제를 단순하게 축소하고 그 문제를 야기하는 악인을 등장시켜 공격하는 것은 훨씬 쉽고 즉각적인 만족을 준다. 이데올로기 추종자들은 특별한 노력 없이 그래도 되는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한다. 201


- 이데올로기 창시자는 세계를 크고 무차별적인 조각들로 나누고, 각각의 문제점(들)을 밝히고, 그럴듯한 악당을 내세운 뒤, 이를 설명해주는 원리나 작용력 몇 가지를 만들어낸다. 그런 뒤에는 그 몇 가지를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강조하고, 다른 중요한 (어쩌면 더 중요한) 변수들은 무시한다. 이를 위해 동기 체계나 대규모의 사회 연구 또는 가설들을 활용하면 효과적이다. 또한 부정적인 감정 분개 파괴심을 일으키는 암묵적 원인들과 설명 원리들을 뽑아낸 뒤에, 그에 대한 모든 의심과 토론을 금기시한다. 다음으로는 이론의 효과를 사후 분석의 영역으로 몰아넣고, 모든 현상은 이 새로운 전체주의 이론의 부차적 결과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학파가 출현해 이 알고리듬적 환원을 선전하면 이데올로기는 학계와 일상 모두에서 지배력을 얻게 되며, 이에 따르지 않거나 비판적인 사람들은 암묵적으로나 명시적으로 악마화 된다. 그런 활동, 그런 게임에 기대 타락한 지식인과 무능력한 지식인들이 모두 번성한다. 이 게임에 가장 먼저 뛰어든 자들은 참가자 중 가장 영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임의로 선택한 원리를 가지고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에서 근본적으로 작동하는 핵심 동기에 관해 이야기를 지어낸다. (중략) 추종자들은 그 이야기에 매료되고, 지배적일 수 있는 새로운 위계 구조에 합류하길 바라면서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하지만 추종자들은 스승들보다 덜 영리한 탓이 '기여한다'나 '영향을 끼친다'라는 말을 'ㅇㅇ의 원인이다'라는 말로 미묘하게 바꾸고 만다. 202


- 이런 종류의 이론화 작업은 영리하지만 게으른 사람에게 특히 매력적이다. 냉소와 교만은 유용한 수단으로 쓰인다. 새로운 지지자들은 그런 이데올로기 게임에 능통해지기 위해서 경쟁 이론이나 다른 방법론, 심지어 사실 자체를 비판하는 법을 배운다.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하는 이론에 불가해한 어휘가 딸려 있으면 더욱더 좋다. 비판자들이 그 뜻을 해독하느라 귀중한 시간을 허비할 것이기 때문이다. 203


- 프로이트는 인간의 동기를 성, 즉 리비도로 환원시키려 했다. (중략) 우리는 한 분야에서 성이 끼치는 영향을 진짜로 발견할 수도 있지만, 그럴듯하게 꾸며낸 뒤 부풀릴 수도 있다. 그와 동시에 중요하고 의미 있는 다른 요인들을 덜 중요하게 취급함으로써 하나의 설명 원리를 거기에 부여된 필요에 맞게 무한히 확장할 수 있다. 203


- 마르크스도 그랬다. 그는 기본적으로 계급에 기초한 경제적 관점에서 인간을 설명하고, 역사를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영원한 전쟁터로 설명했다. 마르크스의 알고리듬에 통과시키면 어떤 것이든 척척 설명이 된다. (중략) 하지만 마르크스주의를 실천한 곳들은 모두 파국을 면치 못했다. 그럼에도 현재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수치를 모르고 마치 중요한 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듯 그 사상에 새로운 옷을 입혀 계속 수명을 연장시키려 한다. 204


- 이런 종류의 이데올로기적 환원은 사이비 지식인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자들의 특징이다. 이데올로기 추종자들은 지적 차원의 근본주의자로, 고집이 세고 융통성이 없다. 그들의 독선과 사회공학에 대한 도덕적 주장은 근본주의 못지않게 뿌리 깊고 위험하다. 아니, 그보다 더할지 모른다. 이데올로기 추종자들은 이성 그 자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다. 자신들의 주장이 논리적이고 사려 깊다고 옹호한다. 205


- 이 이야기의 교훈은 무엇일까? 자신의 이론으로 일신교를 만드는 지식인들을 조심하라.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를 하나의 변수로 설명하는 것을 경계하라. (중략) 하지만 이데올로기적 환원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단순성, 용이함 그리고 진리에 통달했다는 환상을 한껏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잊지 말자. 악당이나 악당 무리를 발견할 때마다 우리 자신도 이데올로기를 휘두르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 있다. 206


- 당신 자신에게서 세계가 잘못된 이유를 찾는 것이 도덕적으로 훨씬 타당하다. (중략) 맨 처음에 해야 할 일은 당신 자신의 크고 명백한 결함을 해결하는 것이다. (중략) 당신 편은 무조건 선하다고 가정하고 사방에 있는 적을 쫓기보다는, 당신 안에 그 적이 있으며 당신의 나약함과 부족함이 세계를 망가뜨린다고 생각하는 편이 심리적으로 훨씬 더 적절하고, 사회적으로 훨씬 덜 위험하다. 208


- 플루트를 연주하는 방법? 한쪽 끝을 불고, 손가락을 움직여 구멍을 막아라. 맞는 말이지만 효과는 없다. 세부 사항이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현실은 대규모의 정교한 과정들과 체계들로 구성되어 있는 탓에 포괄적이고 단일하게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은 20세기에 유행한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믿음은 순진하고 자기도취적이며, 그것이 조장하는 운동들은 분개하고 게으른 사람에게 거짓된 성취감을 준다. 이데올로기에 빠진 사람들이 신봉하는 공리들은 개종을 주도하는 자들이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신과 다를 바가 없다. 209


- 문제를 정의할 때는 남을 탓하지 말고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크기로 개념화하고, 문제를 개인적으로 다루는 동시에 그 결과를 책임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겸손하라. 방을 청소하라. 가족을 보살피라. 양심을 따르라. 바르게 살라. 생산적이고 흥미로운 일에 전념하라. 이것들을 잘 해냈을 때 더 큰 문제를 찾아 도전하라. 여기에서도 성공한다면 더 야심찬 계획으로 이동하라. 이 모든 과정에 꼭 필요한 출발점으로서, 이데올로기를 버려라 209



추가)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음. 

그들에 비하면 오히려 근본주의자들이 훨씬 정직하다. 그들은 자신이 어떤 대상에 대한 임의적 믿음에 헌신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초월자와의 관계를 받아들인다. 근본주의자들은 우리의 중심인 신을 우리가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파 유대인, 이슬람 강경파, 그리스도교 근본주의자는 논리적으로 압박을 가하면 결국 신이 불가사의한 존재라고 인정한다. 그런 인정을 통해 그들의 주장은 도덕적 올바름과 진정성을 획득한다 (적어도 진정한 근본주의자라면 그들이 정통한 것은 고사하고 완전히 이해한다고 감히 주장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여전히 복종한다).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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