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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변의 잡설 Sep 09. 2021

넷플릭스 '디피(D.P.)를 보고 느낀 것들 (2)

- 후임병들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디피 포스터. 왜 에피소드는 고작 6개 밖에 없냐. 시즌 2는 대체 언제 나오냐.



이등병이 처한 현실



군대는 조직이다. 어떤 조직이든 나름의 관습과 문화를 지니고 있고, 새로운 개인에게는 조직 문화에 적응할 것을 암묵적으로든 강요하게 마련이다. 적응하지 못하면 철저히 배제되고 소외된다. 사회에서 막 전입한 이등병들에게 군대 문화는 지극히 낯설고 생소하며, 이해가 가지 않는 부조리 투성이로 보이게 마련이다.


분명 군대는 변하고 있지만, 그 변화의 속도를 이등병이 느끼기란 어렵다. 아기새가 알을 깨고 나와 처음 마주 보는 대상을 자신의 어미로 인식하는 것처럼, 모든 이등병들에겐 자신이 처음 접한 군대가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 군대가 아무리 편하다고 한들, 사회에서 누리던 대부분의 자유를 철저히 박탈당하게 되고, 조직의 틀에 자신을 맞추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하루 24시간 내내 온몸으로 견뎌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내가 본 지휘관들 중 이등병들을 애정을 갖고 바라보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이들은 주로 상병장, 혹은 분대장들을 신임한다. 분대장은 이등병과 숙식을 함께 하는데, 자신의 관점에서 벗어나 이등병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하지만 이등병들에겐 자기 편이 한 명쯤은 필요하다. 내성적인 이등병들은 어느 누구도 믿지 않으며, 스스로를 유폐시킬 것이다. 이는 다시 오해를 낳고 소외로 이어진다. 상부에서는 이를 인지하고 '사랑과 도움이 필요한 병사'와 같은 일종의 관심병사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주기적으로 행정보급관, 중대장, 주임원사 등이 이등병들과 면담을 갖지만, 숙식을 함께 하지 않는 이들에게 이등병들의 속마음을 알아채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이등병이 속마음을 털어놓는다고 해도 비밀유지가 될 가능성 또한 매우 낮다)




내 부사수 이야기



결국 어떤 이등병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한다. 내 부사수로 들어온 민영이도 그런 이등병들 중 한 명이었다. 민영이는 처음 전입왔을 때부터 겁에 질린 표정이었고, 내무생활에 전혀 적응하지 못했다. 결국 전입온지 2주 후에 그는 탄약고에서 배에 공포탄을 쏘았다.


공포탄은 그저 군복을 살짝 해지게 하는데 그쳤지만, 부대는 난리가 났다. 주임원사가 보고체계를 거치지 않고 헌병대에 곧장 찌르는 바람에 여단장도 모르는 사이 헌병대가 즉각 수사에 착수해 민영이에게 부대의 부조리를 낱낱이 캐물었다. 민영이가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중대, 그리고 대대는 약간의 정신교육과 내무부조리 조사를 끝으로 잠잠해졌다. 민영이는 사고 즉시 일체의 일과, 경게근무 등에서 열외되었다. 그 후 네 달간 병원치료와 비젼캠프, 영내대기를 반복하는 생활 끝에 결국 공익근무요원에 편입되어 부대를 떠났다.


선임 2명이 두 달 간격으로 전역한 뒤에도 1달이 넘게 혼자 세 명 분의 일을 감당한 끝에 겨우 받은 부사수였기 때문에, 나는 무척이나 곤혹스러웠다. 애초 민영이가 자대 전입 직후 어리버리한 모습을 보일 때부터 주변의 선임병들과 간부들은 '민영이를 철저히 갈구고 털어야 한다'고, '이런 애는 털어야 더 잘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나는 민영이같은 타입의 이등병은 격려를 해주고 자신감을 불어넣어줘야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간부의 조언을 거부했다. 만약 내가 민영이를 그때 철저히 털었다면 나는, 우리 부대는 어떻게 되었을까?


(사실, 민영이는 우리가 호의적으로 대해주었더라도 부대에 적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민영이는 단체생활을 전혀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의도적으로 군복무 기피를 노렸더라도 어쨌거나 그가 조직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후임병들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이등병 때 그저 부조리로 보이는 것들 중 상병장이 되면서 이해가 되는 것들이 있다. 개인이 조직에 맞춰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군대의 경우 더더욱 그렇다. 또한 새로운 이등병들을 조직에 길들이는 절차는 분명 필요악이고, 이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불편한 진실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 하에 개인을 철저히 통제하면서 개인의 감정, 비인간적인 폭력을 배제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리고 그 폭력이 인간의 아킬레스 건을 철저히 짓밟고 억누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런 폭력이 과연 필요악인가. 내 경험에 비추어 그건 필요악이 아니라 명백한 절대악이었다. 인간의 인격을 철저히 짓밟는 갈굼이 조직을 위해 필요하다는 식의 항변도 어불성설이라고 본다.


과연 개인의 인격을 짓밟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조직의 규율을 유지하는 것은 가능할까. 군대에서의 후임병 통제방식에 대한 논란은 양자간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권’의 문제, 군대라는 ‘현실’의 문제, 어느 관점에서 일방적으로 판단하는 순간, 이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은 요원해지고, 그저 허수아비 논증의 대결구도로 흐를 수밖에 없다. 사실 현실의 많은 문제들이 그러한 것 같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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