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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변의 잡설 Sep 09. 2021

넷플릭스 디피(D.P.)를 보고 느낀 것들 (3)

- 군복무로 인한 트라우마와 그 치유의 필요성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군인들이 시민들을 향해 발포하던 순간의 총소리였다.



그 총소리는 내가 군대에서 쐈던 K-2소총의 총소리와 여지없이 닮았다. 정확한 명칭은 모르지만, K-2소총의 방아쇠를 당기면 총 몸체가 타당~ 하는 소리와 함께 진동하면서 윗부분 틈 사이로 탄피가 튕겨져 나가면서 팅~ 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 당시 군인들이 K-2소총을 사용했을 것 같진 않고, 당시 썼던 소총의 총소리와 K-2소총의 총소리가 같거나 아니면 K-2소총의 사격음을 채음하여 영화를 만들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총소리가 귀에 맴돌았고, 당시 명령에 따라 투입된 군인들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내가 혹시라도 그 당시 군대에 있었다면, 그리고 '폭도를 때려잡으라'는 명령을 받고 광주에 투입되었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영화 '7월4일생'에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귀국한 톰 크루즈처럼 여생을 PTSD에 시달리며 지내지 않았을까.




영화 '7월 4일생'의 한 장면. 톰 크루즈는 베트남전 참전 후 PTSD로 고통받는 상이군인으로 분한다.



광주에서의 그 일이 있은지 불과 41년 밖에 되지 않았으니, 당시 투입된 군인들 중 많은 이들이 살아있을텐데 그 이들은 대체 그동안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왔을까. 모든 것은 다 운명이고 팔자라고 생각하지만, 만약 내가 당시 광주에 투입되어 직접 내 손으로 시민들을 쏘아 죽였다면 그 운명을 긍정하며 살아가진 못했을 것 같다.


후회하지만 과거를 돌이킬 방법은 없고, 결국 남은 방법은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아가거나, '어쩔 수 없었다'며 웹툰 '26년'의 전두환 경호실장처럼 자신의 행동을 불가피했던 것으로 합리화하여 그 시대의 어둠을 넘기는 커녕 오히려 그 어둠 자체를 부정하거나.





군인들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되는가



"광주에서는 무고한 민간인들이 일방적으로 학살당한 것인데, 왜 피해자들을 논하지 않고 가해자들만 이야기하느냐"는 반박이 있을 수 있겠다. 피해자들을 논쟁에서 배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로 지목되고 간주되는 군인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자는 것이다.


당시 군인들이 민간인들을 살해하기는 하였지만,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 아니라 국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동원되었다면 이를 참작하여 무죄가 될 수 있을까.



형법 제12조 (강요된 행위)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이나 자기 또는 친족의 생명 신체에 대한 위해를 방어할 방법이 없는 협박에 의하여 강요된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형법에서는 '저항할 수 없는 폭력'에 의하여 강요된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언듯 규정만 보면 군인들은 면책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상관의 위법한 명령이 있더라도, 부하는 소속 상관의 명령이 명백히 위법 내지 불법인 명령인 때에는 이는 직무상의 지시명령이라 할 수 없으므로 이에 따라할 의무가 없다고 보는 것이 우리 법원의 해석이다.



상명하복의 관계에 있는 상관의 지시라고 하더라도 범죄를 저지르라는 상관의 지시까지 하급자가 복종해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논지 이유 없다.
대법원 1967. 1. 31 선고 66도1581 판결 [업무상횡령,동교사,증뢰,알선수뢰]



결국 국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징집되어, 타의에 의하여 병영 내에서의 폭력행위 뿐 아니라 민간인 살해까지 하게 된 이들은 단순한 죄책감으로 인한 고통 뿐 아니라 범죄자의 굴레에 갇히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당시 학살에 가담했던 공범이라는 점에서 쉽게 얼굴을 드러내지 못한다. 이들 또한 국가폭력의 희생자일 수 있음에도 말이다.







광주에서와 같은 대규모 비극에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그동안 병영 내에서 일상적으로 자행된 폭력의 경우는 어떠한가. 


'디피'에서 조석봉(조현철)은 선임병들의 압력을 받고 결국 야밤에 이등병들을 집합시켜 구타한다. 한호열(구교환)은 창고로 정해인(안준호)을 데려가 구타하는 시늉을 하는데 그치지만, 조석봉은 그 정도의 여유와 유도리를 부릴 짬도 융통성도 없다. 결국 조석봉은 타의에 의해 공범이 되며 기존의 폭력 질서에 복무하고 만다.


사실 군대의 공고한 질서 아래에서 이등병들에게는 처음부터 그 질서에 순응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 일부의 경우 초반에는 반발하지만 점차 체념하면서 순응하고 만다. 살아남기 위해서.


물론 일부 이등병들이 순진하게 육군규정상 고충처리 규정에 따라 지휘계통에 부조리 사실을 알리는 경우도 있으나 이내 해당 조직 선에서 흐지부지 무마되고, 해당 고발자의 신원은 부대 내에 소리소문없이 전파되어 공공연하게 왕따가 행해지며 결국 '지휘계통에 따른 고충처리'를 불신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게 된다.


(마지막까지 반발하여 결국 그 질서를 전복하는 경우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비율상 많지 않을 것이고 설령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세운다고 하더라도 후임병들이 이를 순순히 계승하리라는 법은 없다.)


결국 대부분의 병사들은 기존 질서에 무력하게 순치되고 나아가 질서를 체화하며,

그 질서를 경험하기 전과 후의 모습은 결코 같을 수가 없다.


그동안 많은 젊은이들이 군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고 전역했고, 국가는 이들을 위한 어떠한 심리 치유 프로그램도 제공하지 않았다. 오히려 '군대 너만 갔다온거 아니다', '너보다 내가 더 힘들었다'와 같은, 서로의 불행조차 견주는 사회 분위기를 무책임하게 방치했을 뿐이다.


상처의 치유는 과거에 있었던 일을 그대로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그동안 군에서는 수많은 사고가 발생해왔고 대부분 소리소문없이 잊혔다. 매주 인트라넷을 통해 사고소식이 전파되었고, 외진차 국군일동병원에 갈 땐 언제나 근조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고는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디피의 대대장이 강조했던 것처럼, 군에서 발생한 일은 철저히 군 내에서만 무마되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군사기밀'이라는 이름 하에 사회로부터 철저히 폐쇄된 집단 속에서 발생했던 폭력과 부조리들이 절대로 은폐되어서는 안되고, 은폐될 수도 없을 것이다. 결국 언젠가는 터져나오게 되어 있다.


‘진짜사나이’와 같은 판타지 예능이 아니라, ‘용서받지 못한 자’, ‘디피’와 같은 리얼리즘 드라마가 예비역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다. 벌써 수많은 예비역들이 자신의 군생활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으며 위로받고 있지 않나. 진작 국가가 제도적으로 했어야 할 일이다. 국가의 직무유기로 인한 공백을 채우고 상처를 치유하는 일을, 일개 드라마가 해내고 있다. 


국방부는 '디피'의 사례는 극히 일부분이라고 발뺌할 것이 아니라, 예비역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 그게 조국에 젊음을 바쳐 희생해온 순종적인 젊은이들에 보답하는 길일 것이다. 소모적인 떡밥만 던지며 국민들을 편가르고 싸움붙일 게 아니라, 군인들이 진정으로 존경받고 예비역들이 위로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적극 조성하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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