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이라는 것은 그동안 내게 단순한 유희를 넘어서 하나의 삶의 낙과도 같은 것이었다. 우울과 불안, 좌절 등으로 인해 삶의 돌파구를 찾고 싶을 때, 나는 대개 서점에서 책들을 보며 위안을 얻거나 온라인에서 독서모임을 검색했고, 때로는 직접 모임을 조직하기도 했다.
주로 학부생 때 책을 읽고 세미나를 했는데, 대개 그 책들은 기존의 관심사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철학, 정치학, 사회학 등 내 지적 결핍을 충족해줄 책들을 읽고, 나와 관심사, 세계관이 비슷한 이들과 함께 토론을 했다. 나름 좋은 시간들이었다. 사람들과 함께 사회이슈에 대해 이야기하고, 내 생각이 그들의 생각과 비슷하다는 것을 확인하며 유대감을 느꼈다. 모임을 할 때면 외롭지 않았고 따스했다. 나보다 똑똑한 이들에게 지적인 자극을 받고 경외심을 느꼈으며, 모임 후 한동안 일상을 활기차게 보낼 동력으로 삼을 수 있었다. 모임과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이 내겐 일종의 ‘뽕’과도 같았던 셈이다.
다만 아쉬웠던 점도 있다. 물론 지금에 와서 비로소 드는 생각이기는 하다.
첫째 대개 내가 참여했던 모임들은 '운동'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모임을 통해 사회 진보의 필요성을 확인하면서 그 반대의견의 논거를 분석하는 일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의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하는데, 특정 성향, 특정 부류의 질문은 원초적으로 봉쇄되었던 것이다.
둘째, 텍스트를 이해하는 데에 소홀했다. 독서모임은 어디까지나 텍스트 자체의 해석이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함에도, 텍스트 해석은 다소 제쳐둔 채 변죽만 울린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다. 이를테면, 철학과에서 칸트 원전을 강독할 때 한 문장 한 문장을 떼어놓고 분석을 하는데, 내가 참여했던 독서모임에서는 텍스트를 다 읽어오지 못한 채 모임이 진행된 경우가 잦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 그 원인은 크게 2가지 정도였을 것이다. 먼저 나의 지적 불성실.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읽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열심히 읽었다면 궁금한 점을 안고 모임에 참여하여 질문을 던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모임 리더의 부재. 텍스트를 성실히 읽고 고민을 안고 왔다 하더라도, 그러한 고민이 담긴 질문을 해소해줄 정도로 텍스트를 장악한 고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쨌든 어린 시절 내가 했던 독서모임의 기억, 그리고 그 모임을 통해 만난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내 곁에 남아있다.
직장인이 되면서부터 한동안 독서모임을 하지 못했다. 실무를 익히고 기존의 법리를 공부하고 새로운 판례를 좇아가는 것도 버거웠다. 다른 업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사치로 느껴졌고, 무엇보다 ‘좋은 법률가’가 되기 위해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개업 후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을 때에는, 공교롭게도 코로나가 터져 오프라인 모임을 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몇 달 전 불현듯 모임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시대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나 홀로 골방에 틀어박혀 리서치를 하고 서면을 쓰고, 법원과 사무실을 오가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찾아오는 의뢰인들을 만나기는 하지만, 소송에 온 관심이 쏠려 있는 의뢰인들에게 사건 외의 것들을 물어보기는 어려웠다. 물론 반드시 사람을 만나야만 다른 업계, 다른 주제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에 각종 정보들도 차고 넘친다. 그런 핑계로 미루고 미룬 게 벌써 몇 년 째였다. 이번엔 일단 나가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온라인 마케팅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당시 내가 수임하던 사건은 주로 오프라인을 통해 들어왔는데, 매출이 꾸준히 이어져오긴 했지만 분명 새로운 루트를 개척할 필요성이 있었다. ‘내년(2023년)에 경기침체가 심해진다’, ‘지옥이 기다린다’는 설들이 곳곳에서 들려와 두려움이 엄습했고, 여러 법무법인들이 이미 온라인 마케팅에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었으며, 수임루트를 다각화해두어 해가 될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어느 독서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한 달에 한 권 마케팅 관련 책을 읽고 오프라인에서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었다. 내가 기대하던 대로 마케터들이 많이 있었고, 그 외 마케팅에 관심이 많은 자영업자들도 많았다.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자극이 되었다. 내가 모르는 업계 용어를 들을 때면 답답함보다는 희열이 느껴졌다. 그토록 원하던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대체로 선하고 개방적이었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 주저함이 없었지만, 다른 이들의 이야기도 열심히 들어주었다. 어떤 이가 고민을 이야기하면, 도움 되는 해답을 주고자 애썼다.
우선 모임장을 맡고 계신 분이 마련해온 발제문을 중심으로 토론이 진행되었다. 발제문은 그동안 내가 해왔던 모임의 발제문과는 사뭇 달랐다. 내가 보았던 발제문들은, 텍스트를 2-3장 정도로 요약하고, 그 아래에는 몇 가지의 질문을 추가하는 방식이었다. 텍스트 요약에 힘이 들어가고, 질문은 다소 피상적이었다. (물론 철학, 정치학 고전 세미나의 특성상 어쩔 수 없었던 점도 있다)
그런데 이번 모임의 발제문은, 그야말로 질문 중심의 발제문이었다. 텍스트 요약이 생략된 채 오로지 질문만, 최소 10개 이상의 질문들이 담겨 있었는데, 각각의 질문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모임장님이 해당 업계에서 15년 가까이 종사해온 입장에서 여러 경험을 반추해 만든 질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구처젝인 지식과 경험이 없다면, 질문은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질문이 구체적이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참석자들의 토론도 구체적으로 진행되었다. 다들 업계에서의 고민과 의문을 가진 채 모임에 참석했기 때문에, 토론의 밀도 또한 높았다.
이 모임을 통해 얻은 두 가지 긍정적인 변화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 모임을 선택하게 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나, 그리고 내 사무실의 온라인 홍보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였다. 몇몇 온라인 홍보대행사들과 면담 후 고민이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머릿속만 복잡해진 상태에서 모임에 오게 되었다. 모임을 통해 마케팅을 오랫동안 고민해온 분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리고 모임장님이 추천해주신 책을 통해, 다다른 지점은 내가 가진 고유한 강점을 부각해도 좋겠다는 결론이었다. 남들이 좇는 '대세'에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위안을 받기도 했다.
다른 하나는, '질문'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질문이 있으면 좋고, 그 질문이 구체적이면 더 좋다. 이번 모임에서 모임장님의 깊이 있는 발제 덕분에, 질문이 구체적일수록 자기 학습뿐 아니라 상호 간 대화도 보다 깊어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는 텍스트를 읽을 때뿐만 아니라, 업무에도 응용하여 일하면서 되도록 질문을 남겨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업무에 사로잡혀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그 와중에도 깨어있으려 노력하는 것. 그리하여 흐름에 떠내려가지 않는 삶이 참 중요한 것 같다. 물론 그만큼 어렵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짧은 기간 동안 열띤 토론과 적극적인 참여, 그리고 무엇보다 영감을 주는 발제에 감사드린다. 모임을 통해 만난 모든 분들이 올 한 해 앞으로 더욱 잘 되시기를. 행복이 함께 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