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관계에서 허세와 허풍은 여전히 유력한 무기로 쓰이는 듯하다. 검증할 시간도 기회도 없이 앞다투어 경쟁하는 바닥에서는 공공연히 속고 속이는 게 하나의 관습처럼 자리 잡기도 한다. 그 바닥 진입을 위한 필요조건, 이를테면 시계와 구두, 벨트, 고급 차 등을 장착한 채 만나, 술자리에서 달콤한 말들을 주고받는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이미 사업체 하나를 세우고, 손익분기점을 넘겨 정산까지 받기에 이른다. 캐시백, 백마진, 리베이트는 양념이다. 마치 수형자들이 출소 후의 대업을 다짐하면서 감옥에서 도원결의를 맺는 것처럼. 그 와중에 뒷주머니를 챙기듯 웃음을 흘리면서도 속마음을 들키지 않는 것이 진정한 프로다. (그러한 프로들 중 가시적인 무언가를 해내는 이들도 있다. 그 세계에서 살아남는 비결을 터득한 이들이다.)
그러한 속습이 공공연히 행해진다고 하더라도, 속인 놈이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다. 다만 속는 놈도 일정한 책임을 지게 된다. 그저 속은 죄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그것이 시장의 질서이고 근대법 체계에서 승인된 일종의 공리이다. 자기 책임 하에 위험을 부담했을 뿐(자기책임의 원칙)이고, 이러한 자기책임의 원칙은 복잡하고 위험성이 높은 거래라고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속은 사람이 선수가 아니라, 그저 종잣돈 조금 굴려서 목돈 만들어보려던 평범한 서민층이라고 하더라도 결론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증거를 남겨야 한다. 어떠한 약속을 할 때 그저 말로만 그칠 게 아니라, 계약서, 녹취록 등의 증거를 남기고, 공증을 받는 것이 자연스럽다. 언제든 속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돈을 빌려줄 땐 담보를 잡아야 하고, 연대보증을 세운다고 하도 보증인의 신용도를 확인해야 한다. 상대방의 말을 언제나 의심하고 조금이라도 수상한 부분이 있으면 명확하게 해소하고 넘어가야 한다. 찝찝한 기분을 달콤한 기대 따위로 은폐하려 들면 안 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증거를 남기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우리 사이에 뭘 그러냐', '너 나 못 믿어?', '되게 쪼잔하게 구네'와 같은 반응을 무릅쓰면서까지 계약서를 쓰자고 요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내용증명을 보내면 '나랑 싸우자는 거냐'라고 멱살 잡으려 드는 게 현실이다. 의뢰를 받아 상대방에게 내용증명을 보냈는데, 상대방이 대뜸 내 사무실로 전화해서 내게 험한 욕을 한 적도 있다. 변호사에게도 그러는데 하물며 당사자에게는 오죽할까.
그럼에도 증거를 남겨야 한다. 거듭해서 강조하고 싶다. 증거를 남길 마음가짐이 되어 있지 않다면, 애당초 위험을 부담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게 상책이다. 거래를 하지 마라. 돈을 빌려주지 말고 투자를 하지 마라. 그게 어렵다면 아예 손해 볼 것을 각오하는 게 좋다. 예를 들어 돈을 빌려주면서 차용증을 남기지 않는다면, 그냥 그 돈은 애당초 포기하는 게 좋다. 상대방이 돈을 갚으면 고마운 것이고, 안 갚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거래에서나 사적인 관계에서나) 상대방이 온갖 미사여구를 덧붙여 다정하게 미래를 약속한다고 해도, 이를 그대로 믿지 않는 게 좋다. 그저 자연스레 흘려듣고 일말의 기대감조차 갖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계약서 쓰자고 요구하지 못할 거면 말이다. 서글픈 현실이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그럼에도 그 현실을 거스르는 소수의 예외적인 경우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니 내가 만약 그러한 경우를 겪게 된다면, 그건 억세게 운이 좋고 감사한 거다. 누군가에게 호의를 받는다면 그건 결코 자연스럽거나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