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살인이 쾌락일까 싶지만 쾌락은 뭐든 지나치면 추해요

피와 시신을 보는 건 본능적인 두려움을 주니까 이해가 힘들죠

by 이이진

https://youtu.be/8 y8 HXBQnp90? si=aKA9 Dqv77 HOs67 i0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도대체 어떻게 그 끔찍한 살인이 쾌락일 수 있을까' 궁금하겠지만, 사실 쾌락은 어느 선을 넘으면 다 추하고 끔찍합니다. 술도 친한 사람들과 적당히 취하면 감당 가능한 쾌락이지만 인사불성으로 취하는 수준에 이르면 그 모습이 너무 추하죠, 마약도 그렇습니다. 처음 약물을 할 때는 집중력도 높아지고 자신감도 생기고 창작에 대한 열의도 생기고요, 사기도 그렇습니다, 아무 노력 없이 사람 마음을 움직여서 큰돈이 생긴 걸로 흥청망청 쓰고 살 수가 있거든요.


대부분의 쾌락, 그리고 특히 범죄에 바탕을 둔 쾌락은 작은 노력으로 큰 성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너무 즐거운 것이고, 때문에 중독되기가 쉬운 겁니다. '재벌 집 숨겨둔 자식이다', '유명 성형외과 의사다', '해외 유명 투자 회사 임원이다', 이런 거짓말 하나로 수억 원을 받아낼 수 있고, 심지어 (유명한) 혹은 마음에 드는 사람과 결혼도 할 수 있으니, 이보다 즐거운 일이 없죠. 연애도 그렇습니다. 연애 자체는 인간에게 큰 즐거움이지만 문어발로 아무 하고나 연애하고 관계하고 책임 안 진다면 그것도 끔찍한 쾌락이죠.


특히 마약으로 인한 빠르고 순간적으로 뇌가 느끼는 쾌락을 실제 어떤 작업으로 얻고자 하면 거의 불가능합니다. 마약은 뇌를 일시적으로 자극하여 단순하고 즉각적인 쾌락만 줄 뿐이라, 실제 그 정도 쾌락에 이르자면 엄청난 고통과 인내가 수반되는데, 그 긴 고통과 인내를 일반 인간이 견디기가 쉽지 않아요.


다만 사기나 연애나 음주나 마약은 어떻든 초반에는 누가 느껴도 즐거운 쾌락을 주는 반면에, 예를 들어 큰 노력 없이도 남에게 돈을 얻어 흥청망청 쓸 수 있다거나, 만날 수 없는 이성을 만나게 된다거나, 뇌에 즉각적인 자극을 준다거나, 일시적으로 관계를 원만하게 한다거나 등등, 살인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는 시신을 마주한다는 점에서 '이게 어떻게 쾌락일까' 의구심이 드는 것일 뿐이죠.


마약을 처음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언론이나 경찰이 떠들 정도로 위험한 건 아닌데' 하는 생각과 마약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이상한 건 아닌데' 하는 편견이 깨지는 경험을 하게 되고, 연애도 '다들 이렇게 즐기고 사는 거 같은데, 어떻든 서로 좋아서 하는 건데 문제가 되나', 이렇게 되는 반면, 살인만큼은 '도대체 시신과 피를 보는 행위가 어떻게 처음부터 즐거운 일일 수 있을까', '어떻게 그 끔찍한 모습에 중독이 될까', 이게 좀 의문일 뿐, 어떻든 쾌락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건 추한 결론이 나온다, 저는 이렇게 보고요.


또 이들은 '왜 피해자를 생각하지 않을까' 이렇게 질문을 하게 될 텐데, 이들 나름대로는 피해자에게 해줄 만큼 해줬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가령 연애 사기 피해자에게는 '연애하는 동안만큼 누구보다 사랑했다, 이 정도로 사랑해 본 적 없다' 생각을 하고 (대표적으로 전청조로서 피해자에게 남자로 보이기 위해 본인 가슴도 절제했으니 사랑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돈으로 사기 친 사람에게는 '같이 잘 살아보려고 한 것뿐이다, 그리고 같이 먹으러 다니고 잘해줬다', 이렇게 생각을 하며, 마약으로 중독시킨 사람에게는 '너무 힘들어 보여 위로 차 건넸을 뿐이다, 그 사람 힘든 건 나밖에 모를 거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세뇌하기 때문에, 그들에겐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고한 사람을 살해하거나 도둑질한 경우에도 '그 여자는 몸을 파는 여자다', '종교인이 재산 욕심이 많다', '그 아이는 낯선 사람을 잘 믿으므로 내가 아니어도 어차피 누군가 납치했을 거다', '왜 문을 열어 놓고 사는가, 누구라도 도둑질을 했을 거다' 등등 이렇게 생각하고 실제 가해자들은 이런 터무니없는 이유로 살인하고 물건 훔치는 게 타당하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과연 시신을 만드는 행위가 어떻게 처음부터 쾌락이 될까' 이 부분은 저도 좀 생각을 해보고는 있는데, 여하튼, 사회가 설사 허용한 쾌락이라 하더라도 어떤 쾌락이든 일정 수준을 넘으면 추해지고 범죄자가 된다는 거를 말씀드리고 싶네요.


이 드라마 모티브인 정남규를 찾아봤는데, 의외로 여성 연쇄살인범이나 이런 범죄자 중 혼자 고독하게 사는 경우 이상으로 조부모나 엄마와 같은 상대적 약자를 보호자로 두고 사는 경우가 상당히 있는데, 정남규도 엄마 그리고 누나와 함께 살았네요. 엄마를 말 그대로 갈았던(?) 애드먼드 컴퍼도 엄마의 학대 속에서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면서도 같이 살았고, 제프리 다머도 할머니와 같이 살 때부터 연쇄 살인을 시작했거든요. 여성 보호자 특히 자식에게 둔감하고 무관심한 보호자와 사는 범죄자들 중 끔찍한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아, 이런 범죄자들 만나는 게 참 힘든 일이겠으나, 재미라고 하면 이상하겠지만, 여하튼 보람도 있으실 텐데, 부럽기도 합니다. 흠흠. 그리고 최근에는 CCTV가 발달하면서 들킬 가능성이 커지자, 오랜 기간을 두고 하나하나 죽이는 연쇄 살인보다는 한 번에 다수를 죽이는 경향으로 변하는 거 같습니다. 최근에는 여의나루 역 지하철 방화 이런 사건이 있죠.


남기태 배우 AB


출처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요약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가정폭력이라고 폭력만 있는 게 아니라 웃음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