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저작권의 개념은 작품을 창작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권리인데, 근대 이전 예술가들은 대부분 왕족이나 귀족, 교황청 등 지배 계급의 요청에 따라 예술 작업을 했기 때문에, 소유 자체가 왕족이나 교황청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도 근대 이전 많은 예술 작품은 왕실이나 불교 등 종교 단체가 소유한 경우가 많고, 조선의 경우 후기 신윤복이나 김홍도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그림은 누가 그렸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으며, 도자기나 가구 등도 작성자 대부분은 미상이고, 해당 그림이나 가구나 도자기 등을 소유한 가문이 실제적으로 저작권을 갖고 있는 실정인 거죠. 즉 창작자가 곧 저작권자라는 개념은 근대 이후 서서히 형성이 됐다, 이렇게 봐야 됩니다.
모차르트도 왕실이나 주교의 지원으로 작곡을 하고 공연을 했을 정도이므로, 지금과 같이 예술을 '인간 내면과 본성을 탐구하는 본질적인 행위'로서 강조하기보다는 직업의 하나로 분류됐을 가능성이 크고, 따라서 창작 과정에서 황실이나 교황으로부터의 압박도 받았겠지만, 반대로 지금처럼 누군가의 지원을 받아 작업하는 경우 '독립적인 예술가'가 아니라며 다소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적었을 가능성도 큽니다.
예술에 대해 말할 때, 국가가 과학과 같은 쓸모가 없는 예술을 왜 지원해야 하는가, 되묻는 분들에게, 역사를 통해서 국가나 지배 계급이 지원하지 않고 예술이 성장한 예는 없다, 그리고 발전한 문명은 반드시 독자적인 문화 예술을 남긴다, 답변을 드립니다.
설사 조선의 과학이나 다른 기술이 대단했다 하더라도, 신윤복이나 김홍도가 남긴 그림 한 장 혹은 허균이 남긴 홍길동전의 가치에 미치지 못할 때가 있는 것을 보면, 당대 사람들도 그림과 소설의 가치보다 중요한 게 뭔지 몰랐을 리는 없음에도 남긴 터라, 예술을 지원해야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좀 더 멀리 보는 시각도 필요하다, 또 답을 드리고 있죠.
물론 현대에 들어서면서 예술은 지배 계급, 자본주의, 기업, 정치인, 특정 사상 등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역할을 자처하고 있기 때문에, 만약 과거처럼 권력을 가진 지배 계급, 자본주의, 기업, 특정 사상을 가진 계층이 지원했을 때 이 비판적인 역할을 계속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모순적인 상황에 직면하긴 하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일종의 밀라노 황족 요청으로 성당 벽화를 그릴 때 그 압박 속에서 창작성을 나타낼 수 없었는가 하면, 누구도 '그렇지 않다' 답을 할 것이므로, 저는 예술이 나름대로의 길을 찾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저작권이 해당 저작을 지원하고 요구한 계층의 소유에서 벗어나 창작자의 손에 돌아오면서 예술 또한 공적인 영역을 벗어나 사적인 영역으로 흘러가게 되는데, 가령, 근대 이전 화가들은 대부분 왕 혹은 왕 가족의 얼굴을 그리거나, 종교적 혹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이나 날을 기념하거나, 교회나 성당의 벽을 장식하는 일로서 자신의 예술적 심상을 표현했으나, 지금의 예술가들은 일상, 신념, 한계, 연인과의 다툼, 부모님의 죽음 등 '예술인인 나도 겪고 관람객인 당신도 겪는 일'이라는 토대 위에서 움직이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수와 같이 위대한 존재의 탄생을 기념하던 예술가들이 자신이 늙어가는 모습을 매일 촬영하여 보여준다거나 연인과의 다툼 이후 울고 있는 모습을 공유한다거나, 예술이라고 해야 할지 일기장이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작품들이 쏟아지고 있는 겁니다.
과거 위대한 인물의 탄생과 죽음을 묘사함에 있어 등장했던 화려한 상징과 수식들은 사라지고, 주름 지고 피곤하며 노곤한 누군가의 실체 그 자체를 보며 많은 사람들은 '이게 예술이다' 이렇게 말을 하고 있죠. 주름 지고 피곤하며 노곤한 누군가는 현실 너머 존재하는 누구도 다다를 수 없는 존재가 아닌, 나도 되고 당신도 되는 그런 사람인 터라, 예술이 일상을 포함할수록 보편화되고 있다, 저는 이렇게도 봅니다.
게다가 예술이 그림이나 조각처럼 도구를 사용하여 상당 기간 기술을 익혀야 가능했던 시대 또한 지나 카메라 하나만 있으면 촬영해서 그 자체가 예술이 되는 시대가 되다 보니까, 사실상 지금은 '저작권의 시대'를 유연하게 넘어서면서, '창작물이 자신의 정체성이 되고 그 정체성으로 대중에게 인정받는 시대'가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본인의 행위를 예술로 규정하고 있고, 행위는 그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가 되므로 이런 움직임이 가능해지고 있는 거죠.
예술가를 지원한 계급이 소유했던 저작권이 예술을 창작한 예술가에게 '드디어' 넘어온 시점에서 예술은 '신이나 왕이라는 이상'을 포기하고 '너무나 인간적인 인간'으로 그 중심을 향하고 있는데, 사실 인간의 삶은 다른 듯 너무 같기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보편성을 표현하는 예술이 저작권을 갖자고 하면, 예술 자체가 예술가의 정체성이 돼야 하므로, 지금의 예술가들에게는 '당신의 예술이 표현하는 바를 당신의 삶에서 보여주고 있는가' 되묻는 관람객의 시대 또한 됐다, 이렇게 봅니다.
예술이 일상으로 내려오고, 예술가들도 일상으로 섞이기 시작하면서, 예술의 장르 또한 일상적인 것들을 포함하기 시작했고, 예술가들이 삶의 모순 앞에서 고뇌에 차기 시작한 시점도 이 시점이 됐는데, 이 시점에서 우리도 '예술에서 예술가 그리고 예술가가 그려내는 우리 자신'을 드디어 보게 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