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친은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가족과 소원해져 중국에 체류할 때 건물미화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고, 이전에는 니트를 제조하는 공장에서 일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친은 외부에 가난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싫어하여 자주 새옷을 사주고 깨끗하게 빨아 입혔으며, 지금도 그런 모친의 성실함에 대하여는 저도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웃집에서 우유를 얻어먹었다고 따귀를 때릴 정도로 가난하더라도 자존심을 잃지 않는 것을 높이 봤죠.
그런데 건물미화업을 시작하고 모친은 은행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상대하기 시작하면서, 저에게 돈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이중적인 잣대를 취했으며, 성형을 시작했고, 계급 의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았던 모친은 틈만 나면 저와 은행원들을 비교하며 사정이 있어 변변한 직업이 없이 다툼만 많은 저를 초라하게 만들었으며, 부친 또한 비교하였죠.
제가 모친으로 인해 자녀로서 겪은 수많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모친에 대하여 가능하면 언급하지 않았던 것은, 모친은 가난하더라도 항상 깨끗하게 옷을 입히고 남에게 얻어먹지 말도록 혼쭐을 낸 자존심에 대한 그 존중에 있었으나, 건물미화업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잘 사는 사람들에 대한 허영스런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저는 따라서 가난한 사람이 부자나 잘 사는 사람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내면이 강하지 못하면 무너진다고 하는 것을 모친을 통해 알게 된 상황입니다.
모친은 니트 공장에서 기술자로 일을 할 때는 자기 직업에 대하여 자부심도 있고 무엇보다 저에게 기술자라는 책임의식을 심어줬지만, 건물미화업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있는 사람들을 의식하고 불필요한 친절을 베풀었으며, 저는 이런 모습을 건물 미화업을 하는 여성들에게서 봅니다.
화장실에서 손을 닦으면 옆에 서서 집사처럼 휴지를 건네주려 기다리는 미화원, 에스컬레이터에서 사람들 안전에 문제가 생겨도 아랑곳하지 않고 안전 의식 없이 자기 할 일만 하는 미화원, 남들이 밥을 먹고 행복하게 쉬고 있을 때 굳이 이를 불편하게 하는 미화원,
자기 할 일만 하면 되는데, 사람을 의식하는 미화원들이 너무 많은 거죠. 더군다나 백화점이나 이런 데서는 사람들도 쉬고 쇼핑하러 오는 건데 이를 의식하는 미화원이 너무 많아 몇 번은 항의한 적도 있습니다.
저는 모친이 니트 공장에서 일 할 때가 자존심도 있고 자존감도 있었다고 생각하며, 건물미화업을 한 뒤로 대화도 통하지 않고 오로지 비교만 남았다는 점에서 해당 직업을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습니다.
특히 2017년에 심장 비대로 진료 결과가 나오고 2022년에는 척추가 골절이 됐는데도 보조기를 착용하며 육체노동을 했을 때는, 제가 욕설까지 하며 일하는 걸 반대함에도 일을 나갔을 때는, 저는 마음에서 이미 모친을 내려놨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모친 사망 후 모친 직장을 갔을 때, 제가 보기엔 이상해진 모친이나 직장에서는 성실했다고 하므로, 제 모친으로서의 존경은 없어졌다 하더라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존중하는 마음으로, 소송은 진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