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날과의 사투 4
“내려요.”
그가 파란 네온이 반짝거리는 한적한 모텔 앞에 차를 세우며 말했다.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옅은 남색 바지에 짙은 자주색 니트를 입은 그는 생각보다 키가 컸다.
문득 내가 위험한 행동을 한 게 아닌가 싶어 두려웠다. 그렇다고 해도 벗어날 다른 방법이 있지도 않은 상태에서 말이다. 내 생각을 읽으면 정말 위험한 행동을 하고 싶을까 봐 머리를 털듯 불안함을 털어냈다.
여관 문을 열자 얼굴이 여드름으로 덮인 뚱뚱한 남자가 정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몸 속 지방이 얼굴로 옮겨간 그의 얼굴에서 불쾌한 냄새가 났다. 그가 돈을 지불하자 뚱뚱한 남자가 307호 키를 건넸다. 키를 받아 들고 계단을 오르던 그가 걸음을 멈추더니 다시 계단을 돌아 내려 갔다. 곧이어 라면 좀, 이라고 말하는 소리가 났다.
307호 문을 열자마자 그가 크게 한 숨을 쉬며 갈색의 조악하고 축축한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시골의 한적한 곳에 있어서인지 룸 안은 생각 보다 넓고 음울했다.
“처음인가요?”
그가 한 쪽 눈에 웃음을 머금고 물었다.
“처음 이예요.”
“구걸도 처음이죠?”
“그래요. 처음 이예요.”
그가 다시 반대 쪽 눈으로 웃었다.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자 그가 턱을 움직여 문을 열어주라는 신호를 보냈다.
문을 열었다.
키가 작고 통통한 할머니가 익숙하게 라면을 들고 들어와 그가 앉아 있는 탁자 앞에 내려 놓았다. 그가 주머니를 뒤져 만 원을 꺼내 할머니에게 건네주었다. 돈을 받은 할머니는 받지 않은 사람처럼 변함 없는 표정으로 나갔다.
나는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이런 모양으로 먹고 싶진 않았지만 허기를 참을 수 없었다. 라면 냄새가 오히려 내 숨통을 조이는 것 같았다. 라면을 먹는 동안 그를 인식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가 나를 인식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라면 먹기를 멈추자 그가 한 숨을 쉬었다.
“다 먹었으면 문 밖에 놔 둘래요? 냄새가 구역질 나서. 자기가 배부를 때는, 남 먹는 걸 보는 것만으로 구역질이 나죠. 그런데 그걸 또 내가 배 고플 때 먹으면 참 맛있단 말예요. 그렇죠? “
그가 약지에 낀 반지를 만지작대며 말했다.
“이렇게 말하면 비참한가요?”
그가 다시 긴장감을 감추며 물었다.
“대답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돼요. 나도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는 데 넌더리가 나요. 그냥 내가 하는 말을 좀 들어주면 좋겠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을 하는 거예요?”
나는 정말 궁금했다. 그는 왜 이런 수고를 하는 걸까. 나를 동정하는 걸까 아니면 우월감을 지속 하고 싶은 것일 뿐일까.
“어떤 일이요?”
“그냥 이렇게, 이런 곳에서, 내게 이러는 거.”
그가 몸을 앞으로 숙이더니 벌어진 가랑이 사이로 자신의 머리를 밀어 넣었다.
“글쎄요.”
그의 목소리가 가랑이 사이에서 음울하게 흘러 나왔다.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그를 지켜보고 있자니 내 기분도 점차 우울해졌다. 여기까지 따라 오기로 결정한 건 무엇보다 배가 고파서였지만 그의 갑작스런 변화는 어색했다.
“연기 하는 거 같아요. 왜 그러는 거예요?”
그가 얼굴을 들었다.
“연기하고 싶어서요.”
그의 눈이 다시 가늘어졌다.
“돈은 있어요? 내일부터 어떻게 살 거죠?”
“일 해야죠. 그냥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도 있는 거니까.”
“벌고 싶지 않다고 해서 벌지 않아도 된다니 나보다 낫네요. 안 그래요?”
그가 갑자기 킬킬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웃음소리가 상당히 불쾌했다.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웃기 위해 웃음을 연기하는 사람처럼.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 있는 사람보다 포기하기 쉽다는 말처럼 들려요. 손에 쥔 게 없는 만큼 놓을 것도 많지 않으니까 말이죠.”
그가 웅얼거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