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날과의 사투 5 - 자작소설

by 이이진

진부한 날과의 사투 5


그는 피곤하게 굴고 있었다. 우월감의 대가로 현금을 줄 수는 있지만 동정 자체는 타인에게 줄 수는 없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구걸이 실패로 돌아 간 이유가 모든 사람이 동정에 대한 대가를 현금으로 지불할 거라 믿은 나에게 있음을 그는 별 노력 없이 납득시켰다.


“성자가 청소부가 되는 거 어떻게 생각해요?”


내가 물었다.


“글쎄. 왜요? 성자는 되고 싶지만, 청소부가 되고 싶은 사람도 있나요?”


그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 왜 성자와 청소부를 비교한 걸까요?”


“청소부가 성자가 됐으니까, 아닌가요?”


“그럼 성자가 청소부보다 좋은 건가요?”


그가 한 숨을 쉬었다. 미간을 움직이더니 고개를 갸우뚱 했다.


“좋다, 나쁘다 할 순 없는 문제 아닌가요? “


나는 그에게 더 이상 이 질문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사실 이 질문을 그에게 해야 할 필요가 없다. 나는 그의 생각을, 그는 나의 생각을 결국 털 끝만큼도 고칠 수 없을 테니까. 그래도 나는 생각을 멈추지 않을 거다. 청소부가 되고 싶은 게 더 어렵다는 내 생각을.


입을 다물고 침묵하자 그가 한 손을 입가에 대고 물었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였는지 말해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얘길 듣고 그 인상이 바뀌는지도.”


그가 내 앞으로 의자를 가져 와서 앉았다. 나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정말 이상해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계속 말해야만 하거나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생겼을 땐 아무도 들어주질 않는 날들의 연속이라서 말이죠. 왜 이런 악순환이 생긴 걸까를 생각해 봤는데……”

그가 다시 눈썹 위를 만졌다.


“나한테는 세 살 위의 형이 있었어요. 사실 별로 중요한 얘기는 아닌데. 그 형이 내가 중학생이 된 해에 병으로 죽고야 말았죠. 아주 빌어 먹을 놈이었는데, 적어도 내 눈에는. 개 등에다 오줌을 싸고 병아리를 옥상에서 날리고 날 괴롭혀서 원하는 걸 부모님께 얻어내곤 했으니까 나한테만 개 자식이 되는 거였죠. 난 형이 끔찍하게 싫었지만 형은 나보다 키도 크고 공부도 잘했고 운동도 잘했어요. 뭐든 뛰어난 형을 미워할 자격 같은 건 없었던 거죠, 사실. 하지만 형의 모든 걸 알고 있는 건 나 하나였어요. 형은 중학교를 들어가면서 아프기 시작했고 결국 내가 중학생이 된 그 해 여름방학에 죽었죠. 더운 여름 날 친구들하고 농구를 하고 있었는데. 부모님도 주변 친구들도 슬퍼하며 위로했지만 난 정말 아무렇지 않았어요. 실감이 나지 않았으니까. 아마 그 때부터 시작이었을 거예요. 내 연기 말이죠.”


그가 침을 삼켰다.


“사람들은 나를 보면 내 형을 떠올리죠. 날 보면 형부터 떠올리는 거죠. 나는 나고, 형은 형인데 말이죠. 타인의 인생에선 불행한 역할의 엑스트라처럼 돼 버린 거예요, 졸지에. 형이 죽었다고 해서 웃긴 장면을 보면 웃고 싶지 않다거나,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 다거나, 불량청소년이 되면 안 된다거나 하는 법칙은 없잖아요? 그런데 불행하게도 스스로의 최면에 걸려버린 거예요. 그 때부터 정말 하고 싶은 말은 할 수 없는 사람이 돼버린 것 같은데. 타인의 삶에서 불행한 이미지로만 남고 싶지 않아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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