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이 그러니까 자기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닐까, 집단 착각
사실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는 어떤 현상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을 가질 정도가 되려면 그 현상에 대한 배경 지식이 있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기후 문제만 봐도 그렇죠. 대충 생각하기에는 지구가 뜨거워진다 이 정도이지만 내부에서 보면 각종 이해관계와 과학적 지식이 산재해 있습니다.
심지어 이 문제가 얼마나 복잡하냐면,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이 문제와 연관돼 있는 RE100에 대해 상대 후보가 언급하자 모른다면서 알려 달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대통령 후보도 모르는 주제를 일반 국민이 인지하고 개인적인 의견을 갖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런 글을 쓰면 또 득달같이 달려와서 정치인은 썩었다, 현 정부를 규탄한다, 이렇게 댓글을 달 듯합니다만, 그런 취지가 아니라는 점을 다시 언급드리고 싶고요. 댓글만 달면 정부 비판을 하는 분들이 쏟아지고 있어서)
그러나 관련 정책은 쏟아지고 있으므로 일반 국민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취사 선택하면서 정부나 여론을 따라갈 수밖에 없고, 정부나 여론은 자신들의 결정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관련 정보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쏟아내고 있는 거죠. 그렇다고 일반 국민 하나하나가 스스로 의견을 내고 어떤 결정을 할 만큼의 충분한 지식이 없으니 결정을 늦춰 달라 할 수는 없는 것이, 국민 전체가 기후 정책에 대한 주체적인 의견을 낼 때까지 이해하는 순간이 온다는 자체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필요한 시기를 위해 정책을 발의한 경우 이를 따라가지 못해 손해를 보는 것은 결국 결정을 늦춘 국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게다가 사람이 다 각자 생긴 것이 다르듯이 관심사 또한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쉽고 알기 쉽게 설명을 해도 대부분은 듣고 마는 거지, 거기에 집중해서 어떤 특정한 결론에 이를 정도가 되지도 못합니다. 따라서 일단 시행되는 정책에 대해서, 우르르 따라간다면 만약 잘못된 결정이라면 그 많은 사람들이 같이 손해를 보는 것이니까 자신의 책임은 별로 없지만, 우르르 따라가지 않아 혼자 남겨진 경우 발생하는 손해는 온전히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겁니다. 차라리 많은 사람과 함께 욕먹는 게 낫지 혼자 버려지는 게 더 고통스러운 법입니다.
확장하면 학교 폭력도 인간의 이런 습성에서 일정 부분 자유롭지 않아 발생하는 것으로, 같이 욕을 하는 것이 편하지 혼자 남겨지고 싶은 학생은 없다고 봐야 합니다.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하고 선택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나쁜 짓이라도 누가 같이 해줘야 즐거운 게 인간이라서 그렇습니다.
또 현대 사회는 각종 문제나 현상에 대해 가히 폭증적으로 정보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에, 해당 현상이나 문제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만 쏟아내는 정보도 빠르게 처리하기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라, 이제는 AI를 만들어서 관련 정보를 처리하게 하려는 수준에 이르렀으며 (일반 컴퓨터로 처리가 불가능한 수준의 데이터라서) 개인이 어떤 주체적인 의견을 가지고 제시하는 것이 쉽지 않아 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치 그것이 진실이고 사실이며 충분히 조사가 된 것처럼 의견을 쏟아내는 비전문적이고 공격적인 사람을 일반 사람이 인지하고 방어하기는 쉽지가 않은 거죠. 자신의 의견이 따로 없기 때문에 누군가 강력하게 떠들어 대면 그게 진실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마는 겁니다.
과학의 대중화라고 과학자들이 심혈을 기울이는 작업이 있는데 이게 과학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일반 사람들이 알기 쉽게 하려는 시도입니다. 법률 쪽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있고 대부분의 전문 지식을 다루는 사람들이 다 겪고 있는 문제죠. 그러나 전문 지식을 가지고 일반 대중을 설득해 보려는 분들은 다 알고 있겠지만 지식이 보통 쌓여서는 이렇게 전달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차라리 전문가와 다투는 게 때로 쉬울 정도로서 일반 대중이 이해도 하고 관심도 갖게 하는 자체가 아주 어려운 거죠.
조승연 작가 같은 경우도 워낙 쉽고 빠르게 말씀을 잘하니까 이런 지식들이 마치 그냥 던져진 것처럼 쓱 보고 마는 정도에 이르게 하는 거지만, 작가 스스로도 알고 있듯이 이렇게 일반 사람이 이해하고 흥미를 갖도록 말을 하고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고 대단히 많은 시간이 투자돼야 하는 것이지만, 일반 사람들은 그냥 보고 마는 겁니다. 그 보고 마는 것도 부탁하는 수준으로 해야 될 정도죠. 이런 정보 과다 생산 사회에서 어떤 사안에 대해 주도적으로 의견을 내는 사람이 생긴다면 당연히 일반 대중은 그걸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에서는 마치 사람들이 각자 자신만의 의견이 있는데 우둔하거나 공격적인 소수가 이들을 억압하고 이끌어 나간다는 식으로 표현을 하고 있는데, 저는 살면서 어떤 현상이나 문제에 대해 자신만의 독자적인 의견을 가진 사람 자체를 거의 본 적이 없고, (제가 살면서 대기업을 일군 회장이나 유명 정치인 혹은 저명한 예술가나 종교인, 천재적인 과학자, 왕족 등등을 독대하여 만난 적이 없어서 그런 사람들은 어떤지까지는 모르겠는데) 오히려 그런 의견을 일반 사람들 속에서 제시하면 공격을 받는 경험을 훨씬 많이 했기 때문에, 책의 전제가 되는 <일반 사람들이 각자 의견을 갖고 있다>는 부분은 다시 생각해 봐야 된다는 입장입니다.
전문 지식이 쉬워진 것은 지향해야 할 바이지만, 그 전문 지식에 대해 독자적인 식견을 갖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마치 그것이 모든 사람이 가능한 것처럼 전제하는 것은 저로서는 납득이 어렵습니다. 저만 하더라도 비영리 활동으로서 법 관련 활동을 한 지 10년 정도 되니까 (그것도 거의 미치광이 수준으로 파고들어서야) 어떤 사건에 대해 의견을 낼 수 있을 정도가 됐는데, 그 과정에서 제 기본 의식주 자체를 포기해야 할 정도로 파고들었는데, 이게 먹고살 일이 구만리고 딸린 식구가 줄줄이 있는 사람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게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서 다루는 책의 방향은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책을 읽은 것은 아니고 영상에 대한 의견이라고 덧붙이고 싶고요.
전문 지식이 정치적으로 악용되거나 오용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마치 모든 사람이 전문가처럼 지식과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 그 의견을 개진하지 못하는 이유가 못된 소수 때문이라는 관점은 저로서는 납득이 어렵습니다. 진짜로 의견이 있는 경우에 인간은 자신의 의견을 결국 말하게 돼있습니다. 예를 들어 갈릴레오도 죽음의 위험 앞에서는 의견을 굽혔지만 결국 의견을 발설하는 내용이 나오는 것도, 의견이 있고 신념이 있으면 인간은 결국 말하게 돼있어서 그렇습니다.
지금 제가 이렇게 제 의견을 제시하는데, 여기에 대해 반박을 하거나 동의를 하려면 관련 지식을 습득해야 합니다. 최소한 자료를 찾아볼 노력이라도 해야겠죠.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딸린 식구가 구천명이라 먹고 살기에도 빠듯해서 이 긴 글을 읽어주는 정도에서 만족하라는 자세를 취합니다. 혹은 반박을 하더라도 <무슨 개소리야>, <등신 같은 소리 하고 앉았네> 이 정도에 그칠 뿐입니다.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 차원을 넘어 누군가의 자료나 의견을 읽어주거나 봐주는 것 자체가 고마운 것이라는 입장은 꽤 오래전에 정립이 됐습니다.
따라서 제가 유튜브나 이런데 지금처럼 꽤나 긴 글로서 각종 반박 자료 혹은 인정 자료를 주었음에도 (댓글이 상당할 겁니다) 거기에 납득할만한 자료를 가져와서 자신만의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은 한 명도 못 봤고, 있다면 대부분은 쌍욕 정도였습니다. (동의하는 분들은 일단 제외합니다) 통상은 무관심하거나 <뭐야 이건> 정도입니다.
조직에서 지배 세력의 결정에 대해 반박하기 힘든 경향성이 당연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 극소수가 그 큰 기업이나 조직을 지배할 수가 있는 거겠죠. 그러나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이 막연히 착하거나 조용하고 다른 의견을 갖는다는 생각보다는 그 반대 의견을 가진 자체로 이미 해당 조직에서는 대부분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또 다른 지배 계층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이런 경향성이 배제된 채 막연히 지배하는 소수에 대해서 모든 화살을 돌리는 것은 이 또한 갈라 치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글 또한 영상을 10분까지만 보고 작성한 것으로서 저 또한 이 모든 정보를 보고 취합할 정도의 시간이 없는 사람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이제는 30분 정도 되는 영상을 볼 시간도 없이 정보가 가히 쏟아지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