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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진 Jun 06. 2024

언급을 했지만 나중에 더 심하게 나빠지는 상황을 보면

임대인의 연락두절 문제가 이제야 이슈가 되는 안타까운 상황

이제와 얘기하면 제가 뭔가를 알고 한 것 같아지긴 하지만, 그러니까 10년쯤 전에 상가 임대인과 소송을 한 적이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도 경찰이랑 단기 임대 아파트 집주인이랑 소송을 개시하고서 한국에 오니까 또 같은 상황이 펼쳐져 있었던 거죠. 임대인이 이유를 알 수 없이 욕설을 하는 등 해괴한 갑질을 하고 결국에는 수리가 필요한 시점에 연락을 두절한 것이 계기가 된 것인데요. 물론 수리에 있어서 제가 책임질 부분이 있었을 수도 있으나 어떻든 임대인의 허가가 필요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임대인과 연락이 닿아야만 했었습니다. 


그러나 임대인은 연락을 전혀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곧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으로 아무래도 옷 매장은 강남이 낫겠다는 생각에 저 또한 매장에 집중하기보다는 강남으로 옮기고자 조사를 하고 다녔던 터라, 결국 저는 대출을 받아 강남의 한 사무실 자리를 알아보게 되고, 사무실에서 영업을 하자면 해외 바이어가 필요하겠다는 막연한 생각에, 일단 매장 문을 닫고 프랑스 파리로 바이어를 찾는다면서 떠나게 됩니다. 


사실 제가 어려서부터 나름 싸가지도 없었고 ^^;;;;; 규정이나 어떤 관행을 무작정 따르는 것도 별로라 하다 보니까, 사회생활을 하면서 법적으로 해결해야 되나 이런 갈등에 놓인 적이 많았는데, 막상 법적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한다는 게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어서 계속 미루거나 회피하는 상황이 연속적으로 발생했었습니다. 그 때문에 상가 임대인과도 당시 각종 분쟁이 있었으나 억울하다 하소연만 했을 뿐 실제 소송으로 가지 않고 그냥 내가 떠나자, 이런 결론이 나오게 되는데요. 저를 돌아봐도, 저 스스로가 규정 따위라면서 안 지키는 사람이면서, 규정의 끝판왕인 법률에 문제 해결을 맡긴다는 거에 너무 거부감을 가졌던 거죠. 던져 놓고 뭔가 심각해질 거 같으면, 도망 다니고 피하고 그랬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도착한 파리에서도 비슷하게 임대인과 문제가 발생하고 경찰에 강제 연행이 되는 일을 겪으면서 문제 해결은커녕 하루라도 더 파리에 체류할 자격부터 살피는 일들이 반복됐고, 이게 그러니까 결국 법적으로 어떤 문제를 접근하는 하나의 시도가 되더라고요. 저는 법이라는 걸 막연히 범죄, 규정, 억압 따위로 생각하고 그걸 굳이 지켜야 되냐, 법 없이 사는 게 훌륭한 거 아니냐, 이런 입장이었다면, 외국인으로서 인종차별이랄까 어떤 문제를 당했을 때는, 법적인 장치 없인 해결이 안 되는 걸 체감하게 됩니다. 뭐랄까,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틀을 비로소 체감하게 됐다고 할까? 


그래서 결국 한국에 와서도 상가 임대인을 상대로 생애 처음으로 소송이라는 걸 진행하게 되는 데요. 물론 소송을 시작할 당시에도 사법부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고, 그렇다면 사법부도 좀 이런 상황을 인지해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갖긴 했지만, 사실 이렇게까지 제가 진지하게 십 년 가까이 온갖 소송에 매달리며 각종 제도나 사법부나 이런 감시 활동을 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 안에 제가 생각하는 (이게 옳은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정의랄까, 그런 게 실현될 줄 알았지, 이렇게 오랜 시간을 저 나름대로도 또 고통받고 그럴 줄은 몰랐던 거죠. 


물론 제가 프랑스 파리에서 경찰을 고소하기로 마음먹고 비자 문제로 일단 영국 런던으로 나가면서 동료에게 "다시 파리로 돌아가면 소송을 시작하게 될 텐데, 아마도 그게 인생을 바꾸게 될 거 같다, 지금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을 거고, 그래도 갈 거냐?" 묻긴 했습니다만, 그게 지금 이렇게 이런 상황을 만들고 또 저를 만들 것까지는 저도 몰랐던 거 같습니다. 


사설이 길었는데, 제가 왜 이 말씀을 드리냐면, 그때 당시 제가 많은 사람들에게 임대인이 연락을 받지 않거나 의무를 하지 않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서 블로그로 포스팅도 하고 했지만, 다들 그건 결국 월세를 내지 않으려는 변명이 아니냐는 시각이 너무 팽배했다는 것이고, 지금에 와서는 전세 사기 문제부터 보면 임대인들이 연락을 받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각종 의무를 법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전무하다는 제 우려가 실제 사회 문제가 되는 걸 이제야 보고 있다는 거죠. 


물론 계약서에는 임대인이 목적물을 목적에 맞게 사용하도록 하라는 등의 조건이 달려있긴 하지만 사실상 그렇게 안 해서 임차인이 월세를 안내는 방식으로 저항하면 운 좋으면 임대인으로부터 이사 비용 받고 이사 나가면 되는 상황이, 제가 소송을 시작했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는 더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된 게 참 기분이 그렇다는 겁니다. 


전세의 경우에는 억 단위로 돈을 임대인에게 주게 되는데 임대인이 연락을 받지 않아도 강제할 아무런 방법이 없다는 문제는 지금까지도 전혀 해결이 안 되고 있고요. 그러니까 제가 10년 전에 이런 활동을 개시하면서는 나는 이렇게 억울하게 패소하고 말지만 적어도 십 년 뒤에는 뭔가 해결되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했던 게 결국 제10년도 이렇게 흐르고 임대차 문제는 더더욱 복잡한 양상을 보이게 됐다는 게 뭐랄까, 문득, 섭섭한 기분이 드는 것을 막기가 힘드네요. 당시 제가 걱정했던 것처럼 임대인들을 법적으로 규제할 장치가 마땅히 없다는 것은 더 큰 문제로 돌아왔습니다. (이런 글을 쓰면 미친 임차인들 언급을 할 텐데, 이거는 권리에 대한 사회적 제재 영역이니까요)


그나마 덕분에 배운 것은 선한 의도로서 뭔가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다소 이기적인 선의일 수도 있겠으나) 그게 반드시 원하는 결과를 이룩해 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고, 본래도 조급한 성격은 아니긴 하지만 기다리는 자체에서 삶의 즐거움을 찾게 된 정도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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