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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진로를 고민해도 그걸 털어놓지 않더군요

남자들이 연애나 결혼에서 오히려 수동적일 경우

by 이이진

https://youtu.be/uEI2 tnyCW3 I? si=8X5 R0 ffJtm6_V52L


남자 (혹은 여자) 중에 사귀는 사이에서 미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기적인 사람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런 사람을 이렇게 좋아한다면 그건 사연자 본인에게도 다소 문제가 있다고 봐야 되나 사연자님이 그 정도로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므로 남자친구분도 크게 문제가 없다는 전제에서 댓글을 답니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연애에서 좀 끌려 다니고 손해 보는 건 인성 때문이라기보다는 관계의 서열 때문에 발생하는 거니까요. ^^


제가 예전에 대학을 졸업하고 막 매장을 냈던 시기에 어떤 커플을 알게 됐는데, 너무 잘 어울리는 커플이라 바로 결혼까지 가겠다 했던 적이 있습니다. 제 전공이 패션이라 같은 계열에서 만나다 보니, 둘 다 스타일도 좋았고, 외모도 독보적이고, 키들도 컸고, 여자는 세련됐고 남자는 지금에 와서 생각해 봐도 상당히 좋은 의미로 특이했고, 뭐 여러 면에서 한 번 보면 잘 잊히지 않을 정도로 멋있는 커플이었고요.


그런데 여자는 뭐랄까 성격적으로 완벽주의고 계획주의적인 면이 있다고 해야 하나? 성실하다고 해야 하나? 빨리 정착하고 싶어 했다고 해야 하나? 반면 남자는 패션을 전공하는 자체에 회의감을 갖고 있다 보니까, 여자와의 속도 면에서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더랬습니다. 지금 사연으로 대입을 하자면, 여자는 남자가 공무원 시험을 합격해서 빨리 가정도 꾸리고 정착을 했으면 좋겠는데, 남자는 공무원 시험을 어떤 면에서는 가족이나 여자친구가 원해서 한다는 그런 압박감을 받다 보니까, 그 자체를 고민하는 상황인 거죠.


신기하게 저는 딱히 남 사생활에 관심이 없는데 와서 자기 연애 얘기하는 분들은 종종 있어서, 이 여자도 근처에서 매장을 하다 보니까 친해져서 둘 사이의 일들을 본의 아니게 듣게 됐던 터라, 여자는 남자가 빨리 졸업하고 자기 가게도 같이 하기를 원했던 터라 남자 숙제도 도와주고 관계에서 진짜 헌신적이고 열정적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반면 남자는 너무 나태해 보인달까? 여자친구가 그렇게 도와줘도 감사할 줄도 모른다는 그런 느낌? 그래서 제가 <그렇게까지 만나냐>, <헤어져야 되겠다>, 그랬었고, <남자를 좀 특이하고 좋게 봤는데 그게 아니었네>,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지금 사연자님 상황하고 저한테는 조금 오버랩되는데요.


나중에 이게 오해인 걸 알게 된 게 남자 하고는 시간이 지난 후에 우연히 압구정인가, 강남인가 여하튼, 길에서 만나서 들어보니까, 결국 둘이 헤어지고 패션과는 전혀 다른 분야를 공부해서 다른 회사에 취업해서 잘 적응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남자는 진로 자체를 고민했기 때문에 여자친구가 열성적으로 도와주는 게 오히려 부담이 됐을 수 있는 거죠. ^^;;;;;; 진로를 바꿔야 하는데 여자친구에게 계속 기다리라고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해서, 같이 브랜드 하자고 막 그랬을 텐데, 그런 것들을 고민한다면 당연히 여자친구에게 말을 꺼낼 수가 없었겠죠.


지금 이 사연도 남자친구가 진짜 공무원이나 군무원이 되고 싶은 지, 진로 자체, 미래 자체를 고민하는 게 아닌지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여자 입장에서는 나를 사랑한다면 그런 고민할 시간에 빨리 자리를 잡아줬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모습이 이기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본인이 행복하지 않으면 결혼도 행복하기 어렵다고 저는 생각하기 때문에, 남자친구가 어떤 근본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 게 아닌지 그것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최악의 경우 좋아하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거나 사연자님이 기다릴 수 있을 정도의 유예 기간을 두고 미래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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