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아이의 욕구를 채워주면 다른 관계는 불필요하죠

이런 애들은 오히려 친구나 사회 생활이 부수적입니다.

by 이이진

https://youtu.be/qXDZgZUCVrE? si=D7 HPX-nPRkgFTy1 d


이건 제가 성장하면서나 성장한 이후 주변을 관찰한 나름의 내용이므로, 참고만 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통상 아이들이 친해지는 계기는 어떤 어려움이 발생했을 때입니다. 가령 선생님이 숙제를 내줬는데 잘 이해가 안 간다거나, 뭘 모르겠거나, 어떤 친구에게 특별한 감정이 든다거나, 애들이 말하는 이슈를 잘 모르겠어서 소외감이 들거나, 등등 혼자 힘으로 해결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 친구라는 존재가 필요하게 되죠.


따라서 교수님도 성장 과정을 돌아봤을 때, 반에서나 전교에서 항상 1등을 하는 소위 말해 뛰어난 애들은 친구를 사귀지 않거나 사귀더라도 선을 그었던 기억이 날 겁니다. 공부도 적당히 잘하고 아이들과도 적당히 잘 어울리는 애들은 주로 반장이나 회장을 맡게 되고요. 이렇게 항상 1등 하는 애들은 친구보다는 내적 이상향을 추구하는 편이고 목적 지향적이라, 문제도 혼자 해결하려는 습성이 있으며 따라서 어려움이 적거나 있더라도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친구를 잘 만들지 않습니다.


그럼 일반적인 애들이 친해지는 또 다른 계기는 뭔가 하면, 가족과의 불화 (형제나 기타 할머니 혹은 주변인 포함)인 경우가 큽니다. 학창 시절에 문제아인 애들끼리 집단을 형성하고 결속이 강한 이유는 부모나 주양육자로부터 적절한 양육을 받지 못함으로 인하여 소통의 욕구를 채울 수가 없기 때문으로, 이런 애들은 모이면 주로 부모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경향이 있고 이게 확장되면 반에서 인기가 많은 애들이나 (인기가 많지만 사실은 못됐다거나 이런 인식이 필요하긴 하고요) 선생님이나 기타 주변에 권위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비판하는 방식으로 서로 흉금을 터 놓고 친해지게 되는 거죠. (옳다는 취지는 아닙니다, 경향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따라서 일부 부모들은 <얘가 학년이 올라가고 갑자기 친구를 잘못 만나서 매일같이 부모를 원망하고 비판한다>고 말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일부 약한 애들을 이용하는 영악한 애들도 있기는 하나, 통상은 자라면서 감춰왔던 욕구를 발산하는 계기로서 해당 친구와 어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형과 먹을 걸로 다퉜는데 엄마가 형 편만 들었을 경우, 동생이 학교에 와서 친구들에게 이 섭섭함을 토로하면서 친해지는 그런 거랄까요. 아버지가 술을 먹고 자꾸 집에 늦게 와서 부모님이 다툰다, 가족한테 토로할 수 없으니 이런 대화를 하면서도 친해집니다.


그런데 부모들 중에는 아이들이 밖에서 가정 분위기에 대해 말하는 것을 은연중에 불편해하여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가진 경우가 있고, 이런 부모들은 통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경우가 많았고 직업도 나쁘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즉 아이가 원하는 것을 미리 부모가 채워주므로 아이가 굳이 밖에서 부족을 채울 노력을 할 필요가 없게 하는 방식으로 가정 분위기를 다소 폐쇄적으로 만드는 거죠.


제 친구 중에 비교적 부유했던 애는 아버지가 어느 고등학교 교감 그런 거였는데, 그 친구 엄마는 학교 바로 뒤 아파트에 살면서 운동 시간이 되면 심지어 아파트 밖으로 나와 운동장을 볼 정도로 엄청나게 감시를 했고 소풍 준비를 비롯한 모든 일정을 함께 했습니다. 그 친구는 좋은 물건을 쓰고 공부도 적절히 했으며 깔끔했고 거의 모든 과정을 잘 해냈지만, 문방구조차 같이 갈 수가 없을 정도였죠. 엄마가 너무나 헌신적으로 이 친구를 돌봤으므로 (누가 봐도 헌신적인 어머니) 이 친구는 그런 어머니를 두고 친구들과 놀 수가 없던 겁니다.


엄마나 아버지가 심지어 민주적이고 아이의 욕구를 모두 수용하는 한편 헌신적인 경우, 아이는 부모보다 만족스러운 또 다른 인간관계를 가질 필요를 느끼지 못하며 표면적으로 외로움도 덜 타고 때로는 사회에서 일정 부분 빠르게 성공도 하는 것 같습니다만, 결과적으로 다양한 인간관계를 경험하지 못 함으로 인하여 일정 시기가 지났을 때 오히려 사회성이 떨어지는 경우를 본 적이 있으며, 실패를 상당히 두려워하는 경우도 왕왕 봤습니다. 부모로부터 대단한 지원을 받은 경우 성공이 늦어지면 상당히 압박을 받기도 하고요.


게다가 요즘에는 부모들이 80세 90세까지도 살다 보니까, 자녀가 40살 50살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안정감을 찾고 사회적인 관계는 피상적인 사람들도 상당히 많은데, 이런 경우도 대부분이 부모가 아이의 욕구를 어려서부터 채워줬고 오히려 사회생활에서는 가면을 쓰도록 했기 때문이라, 성인이 됐을 때 사회생활의 피로를 견디지 못하며, 이런 경우도 저는 일종의 학대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지금 제 나이가 곧 50세인데, 제 나이 비슷한 또래 분들 중에서도 정신적으로 독립이 안 된 분들이 있고, 이런 분들의 공통점이 오히려 어린 시절 혹은 부모를 지나치게 미화하더라는 겁니다. 물론 가정환경이 나쁜 사람보다야 행복한 가정환경을 가진 사람이 더 좋아 보이는 건 사실이니까, 그런 어떤 이익적 측면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딱히 다른 사람이나 혹은 본인만의 사생활이 없고 부모와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등, 결국 보면 독립이 안 된 경우더군요.


즉 부모가 아이를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 키운다는 건, 단순히 옳고 그름을 알려주는 것뿐만 아니라 부모가 없어도 독립적으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배우는 것인데, 아이가 불편을 느끼면 그 순간 부모가 그 불편을 제거해 주므로 아이는 욕구의 충족이라는 단순한 쾌감만 남게 되는 거죠.


자기를 반 친구들이 좋아하지 않으면 불편한 것이고, 그 불편을 해결하려면 스스로 어떻게 행동해야 된다는 그런 걸 배울 기회를 박탈당한다고 봐야 됩니다. 여기서 많은 부모님들이 <반 친구들은 다 사이좋게 지내야 되므로 안 좋아하는 친구가 있는 건 옳지 않다>는 당위로 가곤 하는데, <반 친구> 앞에 여러 조건이 필요하죠.


개인적으로 어떤 일을 할 때 <왜>라고 물어보는 아동을 나쁘게 보진 않는데, 그 <왜>라고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부모가 매번 헌신적으로 알려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모든 사람이 우측통행을 하고 있는 걸 보면서 아이가 <왜 다 한 방향으로 가는 거야?>라고 물어봤을 때, 부모가 부랴부랴 자료를 찾아서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하는 건 아니라는 거죠.


아이가 스스로 궁금증을 가졌을 때 부모는 어떻게 그 궁금증을 찾을지를 안내는 할 수 있어도 궁금증 자체를 매번 해결해줘 버리면 아이는 <왜>만 남고 해결 방법은 알 수가 없게 됩니다. 그리고 동갑 친구들을 만났을 때도 자기는 매번 <왜>만 할 수 있을 뿐이라, <왜>라는 의문으로서 갖게 되는 발전적인 방향이 오히려 인간관계의 발전을 막죠.


여하튼 글이 길어졌는데, 부모가 아이의 모든 욕구를 미리 채워주는 것도 사실상 아이가 사회에서 그 욕구를 스스로 해결할 방법을 박탈하는 것이라, 다른 의미로 압박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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