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서 피어나는 추억 #1
새로운 핸드백을 장만하기로 했다. 검은 재스민꽃이 아랫부분을 감싸고, 위로는 아이보리색 재스민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듯 수놓으려 한다. 마치 오래된 기억 속에서 천천히 피어오르는 꽃송이처럼.
손가락에 실을 걸기 위해 실을 당기자, 아이보리색 실뭉치가 바구니에서 튀어나왔다. 공처럼 서너 번 통통 튀더니 거실을 가로질러 굴러갔다. 그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고양이 '나비'가 재빨리 실뭉치를 낚아챘다. 작은 앞발로 실뭉치를 붙잡고 머리와 가슴, 발을 이용해 공처럼 튕겨 올렸다. 마치 축구선수가 묘기를 부리는 듯한 모습이 귀여웠다.
나비는 어느새 내 무릎에 올라앉아 코바늘이 움직이는 대로 눈을 따라가다가, 속도가 빨라지면 작은 발을 들어 장난스럽게 살짝 갖다 대기도 했다.
“우리 나비가 엄마 팔 아픈 걸 알고 있네. 천천히 하라고 하네요.” 딸이 웃으며 말했다.
나비는 이틀 후면 이 집을 떠난다. 한 달 보름 동안 우리 곁에 있던 손님이었다.
아들의 학교 후배가 1년 동안 외국으로 떠나며 고양이를 맡아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반대했다.
어릴 적, 넓은 마당에서 강아지, 고양이, 닭 등 많은 동물을 키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좁은 공간에서 동물을 키우는 일이 동물과 인간 모두에게 스트레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생명을 맡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아들은 자신과 엄마의 생각을 절충해서 한 달만 함께 지내보자고 했다. 그렇게 나비는 우리 집의 막내가 되었다.
처음 우리 집에 온 날, 나비는 나를 피하는 듯했다. 반대했던 걸 알고 있는 걸까?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비는 턱시도를 입은 듯, 등이 검고 배가 하얬다. 순한 눈빛을 한 채, 하얀 앞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길고 검은 꼬리를 앞발 위로 살포시 올린 모습은 우아했다.
어릴 적 우리 집의 고양이들은 모두 이름이 나비였다는 이야기를 하자, 아들과 딸은 자연스럽게 나비라고 불렀다.
어느새 나비는 우리 가족의 일부가 되었다. 아들 곁을 맴돌다가, 아들이 외출하면 내게 와서 따뜻한 체온을 나누어 주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나비는 밤이 되면 창밖을 보며 울었다. 동네 고양이들의 울음소리가 나비의 본능을 깨운 듯했다. 아들은 후배의 조언대로 중성화 수술을 고려했지만, 나는 반대했다.
나는 아직 중성화 수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모든 생명은 자연의 이치대로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아들은 내 생각을 존중했다. 그리고 우리는 나비를 원래 주인의 집으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사흘간 코바늘로 뜬 가방에 마지막 끈을 달았다. 그리고 주먹 크기의 실 축구공도 만들었다.
마침내 완성된 핸드백, 축구공과 함께 나비를 품에 안고 사진을 찍었다. “이 가방과 축구공이 우리 나비처럼 까맣고 하얗네.”
나비를 안고 명화집을 넘기다 문득 알베르트 앙커의 〈고양이와 노는 소녀(Girl Playing with Cat)〉가 눈에 들어왔다. 그림 속 소녀는 뜨개질을 멈추고 실을 들어 고양이와 놀고 있다. 고양이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실을 바라보며 두 발로 실을 잡으려 하고 있다. 그림처럼 우리도 ‘고양이와 노는 여인’을 재현해 보았다.
나비와 함께한 한 달 보름의 기억.
나비는 떠나지만, 실 한 올 한 올에 스며든 우리의 시간은 여전히 남아 있다. 손끝에서 감겨 나간 실처럼, 우리의 기억도 그렇게 천천히, 부드럽게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