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과 감각을 연결하는 여행

밤하늘에 피어난 봄

by 박영미

밤하늘을 수놓은 벚꽃을 바라보았다.

검은 비단 위에 하얀 실과 연분홍빛 실로 정성스레 꽃을 수놓은 듯, 나뭇가지마다 몽글몽글 피어난 작은 꽃들이 밤하늘을 환하게 밝혀주었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밤이었지만, 어둠은 오히려 꽃들의 빛을 더 또렷하게, 강렬하게 피어나도록 만들었다.

숨이 멎을 듯한 아름다움과 고요. 신비로운 풍경 속에 말을 잃고 한참 서 있었다.


주세페 아르침볼도, <봄 Spring>, 1573. 루브르 박물관.

그때 문득 떠오른 그림이 있었다. 르네상스 후기의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작품 <봄>. 다채로운 꽃과 식물로 형상화된 젊은이가 왼쪽을 바라보는 초상화다. 발그레한 뺨 위에 피어난 분홍 장미꽃, 하얀 데이지꽃들로 장식한 눈부신 목걸이, 예쁜 꽃들과 백합의 방울이 달린 화관. 검은 배경 위에서 그 생생한 아름다움은 마치 밤하늘 벚꽃처럼 살아 숨 쉬는 듯했고, 그림 밖으로 꽃향기가 은은히 퍼지는 듯했다.


아르침볼도의 <사계> 연작은 자연을 하나의 생명체로, 계절을 사람의 얼굴로 형상화한 회화적 유희이자 시적 변주였다. 이는 단순한 미적 장식을 넘어, 반복되는 생의 윤회와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인내와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중 <봄>은 겨울의 끝에서 움튼 새싹과 채소의 여린 새순, 그리고 꽃으로 이루어졌다. 이 꽃과 식물은 겨우내 추위를 견뎌낸 끝에 피어난 생명의 첫 호흡이자 얼굴이다.

생명의 정점에 선 아름다움, 그것이 ‘봄’이다.


이 따스한 생명의 유희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본 이는 당시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2세였다. 그는 아르침볼도의 <사계> 그림 속에 담긴 자연의 이치와 풍요의 의미를 이해했고, 예술의 재치를 읽어냈다. 그리고 그것을 기꺼이 웃음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낮에 본 봄꽃의 향연이 밤에도 이어졌다.

우리는 이 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겨우내 움츠렸던 가지들이 3월부터 봉오리를 부풀리더니, 세상은 하얀 목련, 노란 개나리, 하양과 분홍 벚꽃으로 온통 물들었다. 따스한 봄바람이 나뭇가지 사이를 살랑이며 지나갈 때, 길가의 나무들은 생명의 존재로 눈부시게 빛났다.

조르쥬 피카르, <장미빛 나무 아래 SOUS L'ARBRE ROSE>, 1908.

비발디의 <사계> 중 <봄>에서는 바이올린의 선율이 생명처럼 투명하게 공기 속으로 피어올라 봄의 기운을 노래한다. 붓으로 그린 봄의 얼굴이 아르침볼도에게 있다면, 음표로 현악기로 그려낸 봄은 비발디에게 있었다. 자연은 늘 다른 예술의 형태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우리는 그 예술을 통해 계절과 교감하고, 삶과 연결된다.


그러나 봄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화사한 벚꽃은 곧 질 것이다. 연둣빛 잎이 돋아난 나무는 풍성한 여름의 그늘을 짙게 드리울 것이다. 꽃이 사라진 자리에 피는 잎은 또 다른 생명의 시작이다.

벚꽃의 찰나적 아름다움은 지나가고 우리는 언젠가 벚꽃의 아름다움을 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무는 잊지 않고 그늘을 내어줄 것이다.


봄은 그렇게 조용히, 그리고 깊이 우리 곁을 다녀간다. 그 짧은 머무름 속에서 우리는 예술을 만나고, 생명을 느끼며, 무엇보다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얻는다. 어쩌면 그게 바로 봄이 우리에게 건네는 고요하고도 찬란한, 가장 소중한 선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