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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인사이트 Aug 04. 2021

소셜 미디어의 다음 목적지는 어디일까

디지털 시대의 진정성


 

 

타셈 싱 감독의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2006)은 특유의 상상력으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관객에게 경이로운 이미지를 보여준다.

 

영상미에 압도된 나는 새삼 CG 기술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영화는 특수효과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으며, 영화 속 장소들은 모두 이 지구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었다. 당연히 CG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 진짜였다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날로그 시대의 영화에 경의를 표하고자 일부러 특수효과를 배제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감독의 말과 별개로, 이 영화는 디지털 시대를 사는 우리가 디지털 미디어의 이미지에 대해 어떤 전제를 가졌는지 생각하게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이미지가 거짓일 가능성을 전제하며, 이는 단순히 디지털 이미지가 담고 있는 내용이 진실인지 아닌지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말하자면 우리는 스크린에 나오는 디지털 이미지의 내용보다는, ‘수정 가능성’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미디어 자체의 인지된 특성 때문에 디지털 이미지가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고대 그리스의 화가,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의 이야기는 흥미로운 사유의 틀을 제공한다.

 

그림을 아주 잘 그렸던 두 사람은 어느 날 서로의 솜씨를 겨뤘는데, 제욱시스가 그린 포도 넝쿨은 지나가는 새가 날아들 정도로 사실적이었다. 자신의 승리를 예감한 제욱시스는 파라시오스가 무엇을 그렸는지 확인하려 그의 그림을 덮은 장막을 들췄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림을 덮은 장막 자체가 파라시오스의 그림이었고, 제욱시스는 파라시오스의 승리를 인정한다. 새의 눈을 속인 사람의 눈을 속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라캉은 파라시오스의 승리를 ‘시선에 대한 응시의 승리’로 말하며, 파라시오스의 그림은 제욱시스의 욕망을 유혹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고 설명한다. 이는 파라시오스의 그림이 실재를 충실하게 재현했기 때문에 제욱시스를 이긴 게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두 사람의 그림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제욱시스의 그림은 실재를 충실하게 재현했고, 파라시오스의 그림은 인간의 욕망을 짚어냈다. 여기서 ‘커튼 뒤에는 그림이 있을 것’이라는 욕망을 ‘인식’으로 바꿔서 생각해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즉 파라시오스의 그림은 이미지를 담고 있는 미디어 형식 자체에 대한 인간의 인식을 반영한다.

 

정리하자면 이미지의 진정성에 대한 인간의 인식은 두 층위에서 작동한다. 첫 번째는 제욱시스적 진정성, 즉 이미지의 내용이 가진 진정성이고 두 번째는 파라시오스적 진정성, 즉 이미지를 담고 있는 미디어 형식의 진정성이다. 그리고 이 글에서 다룰 '진정성'은 후자, 즉 내용을 담고 있는 형식의 진정성을 의미한다.

 



 

디지털 미디어는 아날로그 미디어와 달리 정보를 숫자의 형태로 저장하고 전송한다. 이로 인한 가장 큰 변화는 정보의 수정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는 효율성의 측면에서 엄청난 장점인 동시에, 디지털 미디어의 파라시오스적 진정성을 저해하는 특성이다. 진정성의 부재는 특정 분야에서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하는데, 타인과의 친교를 목적으로 하는 소셜 미디어에서 특히 그렇다.

 

관계 맺기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진정성인 만큼, 사람들은 SNS에서도 어느 정도는 타인의 진실한 모습을 기대한다. 그렇기에 SNS에서 진정성을 추구하는 태도는 누군가에겐 특정 플랫폼을 사용하지 않는 원인이 되는가 하면, 누군가에겐 또 다른 플랫폼을 찾아 나서는 원동력이 된다. 이는 SNS 생태계에 변화를 가져오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SNS가 사진을 주된 미디어 양식으로 사용했을 때는 디지털 이미지의 진정성에 대한 공통의 믿음이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진을 보정하고 합성하는 것은 일반인도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되었고, 이는 디지털 이미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초래했다. 디지털 시대의 사진은 이제 신뢰할 수 없는 대상이 된 것이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유행 이후엔 영상을 기반으로 하는 SNS가 급부상했다. 짧은 영상을 주로 올리는 SNS인 ‘틱톡’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자, 최근 인스타그램이 ‘릴스’라는 짧은 영상 포맷을 도입한 건 SNS 생태계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사진보다 영상을 선호하는 시대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소셜 미디어 분야에서 영상을 선호하는 현상의 기저에는 진정성이라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물론 영상 미디어도 CG를 통해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지만, 적어도 일반 대중에게는 영상을 수정하는 일이 사진을 보정하는 일만큼 쉽지는 않다).

 

같은 관점에서 음성 기반 SNS ‘클럽하우스’의 선풍적 인기는 단순히 스노비즘적 욕망의 표출이 아니라, ‘목소리’의 인지된 진정성을 증명하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이전에도 음성 변조 및 합성 기술은 존재했지만, 보통 원본의 정체를 숨기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약간 다른 차원의 문제다. 특정인의 음성을 재현하는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지만, 그 정도 수준의 기술이 보편적이라고 볼 수는 없기에 목소리라는 미디어의 진정성은 디지털 시대에도 아직 유효한 셈이다.

 

 

 

 

기술의 발전에 따른 디지털 정보의 수정 가능성은 가끔 무섭기까지 하다. 우리는 SNS에서 딥 페이크 기술로 만들어진 톰 크루즈가 유창한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는 영상을 보기도 하고, 음성 AI를 통해 만들어진 김광석이 부르는 최신 가요를 들으며 기술의 수준을 실감하는 동시에 디지털 미디어의 진정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품는다.

 

나아가 디지털 시대에서 진정성을 추구하는 이들은 발전하는 기술로부터 도망쳐 또 다른 미디어 형식을 기반으로 하는 관계 맺기를 도모한다. 사진에서 영상으로, 영상에서 음성으로, 소셜 미디어의 다음 목적지는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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