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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인사이트 May 22. 2023

넷플릭스 시대




더글로리가 그렇게 재밌다며.

 

스트리밍 플랫폼을 사용할 줄 모르는 엄마가 내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글로리의 시즌2가 공개된 지 얼마 안 됐을 시기였고 드라마의 인기는 체감상 남녀노소 누구나 더글로리 이야기만 할 정도로 기세가 대단했다.


엄마가 넷플릭스를 드라마를 보여달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마찬가지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대대적인 흥행 탓에 플랫폼을 구독하지 않아 전국적으로 소외된 기분이었다나 뭐라나. 겸사겸사 집에 들른 엄마에게 아이패드를 건네고 볼일을 보러 집을 나섰다. 한참 후에 집에 귀가하니 엄마는 반나절 동안 앉은자리에서 시리즈를 모두 시청했다. 이거 드라마, 재밌다. 그날의 짧은 감상이었다.


나는 무려 다섯 개의 플랫폼을 구독 중이다. 각기 다른 플랫폼마다 독점으로 내놓는 작품이 달라서 문어발식으로 걸치고 있는 취미 생활이 배는 늘어난 셈이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동거 가족이 아닌 타인과의 계정 공유를 막겠다며 엄포한 것이 큰 화제였다. 나 역시 친구들과 공유하여 오랜 기간 구독해 온 소비자 입장에서 아쉬운 처사가 아닐 수 없었다. 넷플릭스를 필두로 우후죽순 생겨난 온갖 디지털 플랫폼을 생각한다면 계정 공유까지 막는 플랫폼은 더 이상 메리트가 없기 때문이다. 꾸준히 오리지널 작품을 내놓겠지만 계정 공유를 막는다면 굳이 비싼 1인 구독료를 내고 시청할 이유는 사라진다.


<넷플릭스 시대의 글쓰기>라는 책을 읽었다.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을 위한 아주 두껍고 전문적인 글이었다. 물론 전문적으로 시나리오 글쓰기를 배울 생각은 아니었지만 tv를 시청하는 사람들의 방식이 완전히 달라지면서 흥미를 갖게 되었다.


대부분의 내용은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스킬에 대한 설명이었지만 이제는 당연시 여겨지는 플랫폼의 존재에 대해서 다시금 곱씹을 수 있는 기회였다.


대표적인 스트리밍 플랫폼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작품이 공개될 때마다 이른바 ‘한꺼번에 보게 하자’는 방식으로 전회차를 공개해 왔는데, 이는 매주 방송되는 TV 프로와 비교하면 굉장히 혁신적인 방법이었다. 요일별로 방영되는 드라마를 손꼽아 기다리며 일주일 내내 예고편을 돌려보던 일상에 기다림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다.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언제든지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들은 매주 사람들이 TV 앞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지 않았으며,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함으로써 더 나은 작품을 내놓을 수 있다고 믿었다.

 




["디지털 플랫폼들과 스트리밍 플랫폼들은 젊은 시청자에게 호소하는 획기적이고 개성 넘치는 콘텐츠를 내놓으며 분명히 말해 왔어요. ‘우리가 당신의 본거지’라고요."]  - <워런 리틀필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인터뷰 중>


넷플릭스의 ‘한꺼번에’ 방식은 굉장히 편했다. 일명 젊은 시청자의 니즈를 파악하여 빠르고 간편한 검색과 취향을 파악한 작품 추천까지. 랜선으로 동시간 시청하기 등 새로운 방법을 끊임없이 제안해 왔다. 플랫폼을 이용하며 가장 좋았던 점은 바로 방영 시간에 맞춰 작품을 시청하지 않고 자유롭게 선택하여 시청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친구는 지금 막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을 시청하는 시간에 애니메이션을 감상할지언정 언제든지 내가 원하는 시간에 오리지널 작품을 시청 가능했다.


그런데 디지털 플랫폼이 각광받으며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자 다시금 브라운관 앞에 삼삼오오 모여 인기작을 기다리던 때로 돌아간 것 같은 건 왜일까. 예고했던 공개일을 기다리며 각자의 모니터 앞에 모여 앉아 기대하는 마음이 그랬다. 각자의 집에서 홀로 시청하는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나는 최근에 개봉한 전도연 주연의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을 감상하며 혼자가 아닌 모두와 즐기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배로 즐거웠다.


게다가 국내가 아닌 세계적으로 동시공개되는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서로 다른 네트워크를 다이렉트로 연결하는 것처럼 짜릿하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tv 시리즈를 시청하는 방식은 사뭇 달라졌으나 사람들이 드라마, 영화를 즐기는 방식은 그대로 있는 것 같았다. 고대하던 작품을 기다리고 함께 시청하고 울고 웃으며 느낀 감상을 오래도록 나누는 것.


책의 마지막 챕터인 ‘세계 텔레비전 탐방’을 살펴보면 다른 문화 또는 다른 사회를 보는 현실적인 창구를 통해 문화적 고립을 막아야 하는 시대임을 짚어준다. 이제는 플랫폼을 통해 스웨덴 드라마, 미국 시트콤, 드라마까지 모두 시청이 가능하다. 스트리밍이 가능한 프리미엄 드라마에 익숙해짐에 따라 시청자도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k드라마 속성에 대해서 신랄하게 이야기하는데 주로 방송 통신 심의 위원회에서 규제되고 있는 부분이었다. 매주 방영하는 드라마 특성상 빠듯한 제작일정에 따른 잦은 밤샘 촬영과 시나리오 수정 등으로 질 떨어지는 결말을 완성하기도 했다. 보통 인기 연속극이 그렇다. 캐릭터나 서사에 인기를 얻는가 싶으면 시청률을 위해 억지로 이야기를 늘리고 얼토당토않는 서사를 부여해 개연성을 걷어차버렸다.


디지털 플랫폼은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며 일상에 자연스레 녹아들었지만 여전히 잔소음이 많다. 그러나 편리성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은 더 이상 일방적으로 제공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브라운관 앞을 지켜 온 세대조차 플랫폼으로 유입되고 있다. 더 넓은 세계를 받아들이고자 모여든 사람들을 어떻게 붙잡아야 할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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