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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인사이트 Jun 23. 2023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


중학생 때, 같은 반에 노래를 잘 하는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가끔 친구들이나 선생님이 노래 한 곡 해 달라고 부추기면 마지못해 노래를 부르곤 했다. 가수가 아닌 열네 살짜리 중학생의 노랫소리가 그렇게 듣기 좋다는 건, 그리고 서른 명 남짓의 사람들 앞에서 온 교실이 울리도록 자신 있게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건 꽤나 충격적이었다.

 

프랑스에서 어학원에 다니던 시절의 일이다. 수업 시간에 팀을 나누어 앉아 랜덤으로 뽑은 미션을 하나씩 해야 했다. 내 차례가 되었는데 '알고 있는 노래 한 곡 부르기'가 나와버렸다. 머뭇거리다 결국 노래를 하지 못했고, 차례는 넘어갔다.

 

몇 바퀴가 지나간 뒤 맞은편에 앉아 있던 미국인 친구가 같은 미션을 뽑았다. 평소 쾌활하고 낯을 가리지 않는 성격이었던 그 친구는 어떻게 할지 궁금했는데, 영어로 생일 축하 노래를 휘리릭 부르더니 "노래 불렀다! 이제 됐지?"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집에 돌아온 나는 '노래 시작했다 노래 끝났다'라도 할걸, 뒤늦은 후회를 할 수밖에 없었다.

 

자취를 몇 년째 하다 보니 집에 혼자 있을 때 노래를 흥얼거리는 습관이 생겼다. 특히 설거지를 할 때는 물소리에 목소리가 묻혀 좀 더 자유롭게 노래를 부르게 되더라. 발라드부터 댄스곡, 인디, 힙합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부른다. 혼자서는 마치 이곳이 콘서트장인 양 온갖 노래를 메들리로 불러젖히지만 나에게는 아주 친하고 편한 사이가 아닌 이상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노래를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랬던 내가 언젠가부터 가끔 남들 앞에서 나서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프랑스어 과외를 할 때였는데, 수업을 어떻게 재미있게 할까 고민하다 프랑스어 노래를 듣고 부르며 가사에 있는 단어와 표현들을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렵지 않은 노래를 골라 함께 들어보고, 해석도 하며 한 소절씩 불렀다. 내가 먼저 시범을 보였고 학생분과 같이 천천히 따라 불렀다.

 

학생분은 "저 노래 못해요~"라며 부끄러워하셨지만 나중에는 노래 수업을 언제 또 하냐고 할 만큼 좋아하셨다. 나도 사실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걸 부끄러워하지만 선생님이라는 역할일 때는 없던 자신감도 생겨서, 잘하든 못하든 시키지 않은 노래를 하게 되더라.

 




어제는 몇몇 지인들과 함께 글램핑을 다녀왔다.

 

한 분이 기타를 가져왔는데, 고기도 먹고 게임도 하다 보니 시간이 늦어버려 기타와 함께하는 캠프파이어는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와야 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터라 돌아오는 차 안에서 라이브 공연을 하게 되었다.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듣는 기타 연주와 노랫소리는 상상 이상으로 낭만적이었다.

 

모두가 함께 후렴구를 따라 불렀고, 한 곡이 끝나면 다 같이 환호했다. 그렇게 몇 곡을 즐기다 보니 하나둘 한 곡씩 부르기 시작했다. 다들 살짝 쑥스러워하더니 기타 반주가 시작되자 이내 그런 기색 하나 없이 노래를 불렀다. 어색해하던 찰나가 무색하게 한 명 한 명이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한 분이 내게도 한 곡 하겠냐며 권했다. 여기서 나는 선생님이 아니었고 노래를 잘 하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서 노래를 불러보았다. 다 함께 기타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는 건 생각보다 큰 즐거움이었다. 차 안에서 울리는 기타 소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잊지 못할 것이다.

 

잘 하지 않아도 괜찮으며 모든 것을 잘 할 수는 없다. 그냥 재미있게 하면 된다.

 

못 하는 노래를 즐기고 못 하는 운동을 취미로 하면서 조금씩 나를 사랑하게 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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