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무언가를 기록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기록의 사전적 의미는 ‘글로 어떠한 사실을 적어서 남기는 것’이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여 다양한 매체를 통해 기록을 남길 수 있게 되면서 통상적으로 기록이란 어떠한 사실을 남기는 것으로 통한다. 그 방법에는 사진이나 글, 영상같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어떤 방식을 선택하든지 간에 뭔가를 꾸준히 기록한다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필자는 꾸준히 무언가를 기록하고 남기는 사람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남기는 독후감이라든가, 하루를 마무리하며 쓰던 일기라든가 분명 어렸을 때는 글로 남기는 기록을 곧잘 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잘 하지 않게 되었다. 재밌는 영화를 봐도 감상을 남기지 않게 되었고, 재밌는 이벤트가 있었던 날의 감정도 글로 남기지 않게 되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 된 것일까?
더 이상 무언가를 글로 기록하지 않게 된 건 어쩌면 사진이나 영상에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사진을 찍는 것도, 보관하는 것도 모두 쉽게 할 수 있는 세상이 됐기에 필자는 대부분의 기록을 사진으로 남긴다. 영화를 본 감상은 남기지 않아도 영화표를 찍은 사진은 있다. 맛있게 먹었던 식당의 이름 역시 이미 사진첩에 저장되어 있다. 즐거웠던 날의 추억은 사진 속의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남아 있다.
더불어 SNS의 스토리나 피드에 사진을 올릴 때는 긴 문구를 덧붙일 필요가 없다. 따로 날짜를 적을 필요도 없다. 위치 정보가 저장된 사진이라면 자동으로 장소까지 자동으로 입력해 준다. 무언가를 글로 길고 상세하게 적지 않아도 그저 사진 한 장만으로도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더욱더 모든 기록을 사진에 의존하게 되었다. 밥을 먹기 전에도 사진을 찍고, 어느 곳에 가도 사진을 남긴다. 누구를 만나도 함께 사진을 찍고, 예쁜 것을 보면 사진으로 남긴다. 어쩌다가 사진을 찍지 않은 날에는 괜히 아쉽기도 하다.
물론 기록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고, 사진을 남기는 것은 순간의 풍경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게 도와주는 훌륭한 기록 수단이다.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너무 많은 사진을 보관하기만 하는 건 훌륭한 기록이라고 볼 수 없다. 연달아 찍힌 똑같은 사진을 정리하지 않는다거나, 너무 많이 쌓여 예전 사진을 쉽게 꺼내볼 수 없다면 양질의 기록이라고 보기엔 어려울 수 있으므로.
그렇기에 필자는 기록의 사전적 의미인 ‘글로 남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상황과 배경, 인물, 그리고 감정을 활자로 남기는 것은 보다 생생하게 무언가를 남길 수 있게 도와준다.
사진이나 영상처럼 그 당시에 찍어 남기는 것이 아니라 품과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다시 떠올리는 것부터가 활자 기록의 시작이다. 그 과정을 통해 한 번 더 기록의 대상을 떠올릴 수 있고, 활자로 그 내용을 다듬어 정리할 수 있게 된다. 이는 후에 기록을 다시 들여다볼 때 더욱 풍성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한다.
필자는 최근 그간의 여행을 기록해 두었던 파일을 정리하면서 글로 남기는 기록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았다. 너무나도 다행히도 과거의 나는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길든 짧든 하루의 일정과 있었던 사건을 모두 글로 정리해 두었다. 기뻤던 일, 웃겼던 일, 안타까웠던 일, 슬펐던 일이 전부 생생한 활자로 기록되어 있었다. 여행의 추억과 함께 그 안에 녹아 있는 감정의 흔적도 볼 수 있었다. 찬찬히 다시 읽어보면서 그때 느꼈던 기분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여행하면서 찍어둔 사진을 다시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었다. 찍었던 사진을 다시 보는 것은 그 순간 눈에 담았던 풍경을 다시 회상하면서 그 상황을 떠올릴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데 글로 기록해 둔 여행기를 다시 읽는 것은 그 상황에 느꼈던 기분을 다시 상기시켜 주었다.
스스로 모든 것을 기록하는 것은 생각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진다. 느꼈던 감정을 활자로 정리해 남기는 과정에서 나의 기분은 형태를 가지면서 더욱 또렷해진다. 그렇게 선명해진 감정은 더욱 오래 기억에 남을뿐더러, 그 생생함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 더불어, 상황과 배경을 다시 한 번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사건을 더욱 생생하고 확실하게 기억할 수 있다.
또한 활자 기록은 잘 정리해 두면 나중에 다시 펼쳐보기에도 좋다. 다이어리처럼 한 권의 책으로 보관해도 좋고, 디지털 노트에 폴더별로 정리해 두어도 좋으며, 블로그를 사용해도 좋다.
그래서 필자는 이제부터 기록을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었다. 하루의 일을 정리하는 일기, 책이나 영화에 대한 감상 정리, 여행을 기록한 여행기 등 무엇이 되었든 간에, 글로 남기는 기록을 하기로 말이다.
필자는 여전히 아날로그가 좋아서 일기는 수기로 작성하는 게 좋고, 여행기는 어디서든 꺼내볼 수 있도록 디지털 노트에 정리하는 게 좋다. 성인이 된 이후로 제대로 남기지 않았던 일기를 요즘 열심히 쓰고 있는데, 제발 올해가 가기 전에 이 다짐이 무너지지 않아서 꽉 찬 다이어리로 1년을 추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진으로 순간의 풍경을 영원히 남기는 것. 느꼈던 감정을 글로 적어두는 것. 생생한 현장을 영상으로 남기는 것. 추억할 만한 물건을 구매하거나 향기와 노래로 순간을 기억하는 것. 무언가를 기록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형태의 기록인 글이 기반이 된 채로 위의 부수적인 것들이 함께 한다면 보다 풍부한 기록을 남길 수 있다. 그렇게 길지 않아도 좋다. 잘 쓰지 못해도 좋다. 그저 나다운 글 한 줄이면 충분하다. 기록의 대상은 그 무엇이라도 될 수 있다. 맛있게 먹은 음식과 같이 아주 작지만 소중한 것부터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열심히 한 운동이나 열심히 연습한 무언가 같은 노력의 산물, 인상 깊게 본 공연이나 재밌게 다녀온 여행같이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것 등 그 어떤 것이라도 좋다.
그러니 혹시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다면 그 속에 활자를 추가한 채로 앞으로도 쭉 멈추지 않고 계속해 주길 바란다. 아직 무언가를 기록하지 않고 있다면 먼저 짧은 글 한 줄로 기록을 시작해 보면 좋겠다. 분명 미래의 당신이 아주 고마워할 테니.
꾸준히 무언가를 기록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기록은 무엇보다 값진 재산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