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린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거야
K-POP 4세대가 한국 음악 시장을 힘차게 끌어가고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걸그룹과 보이그룹이 런칭되고 있는 가운데, 하이브의 산하 레이블인 ‘어도어’에서 지난 2022년 ‘뉴진스’가 런칭됐다. 민희진의 프로듀싱으로 탄생한 이 그룹은 New Jeans라는 이름이 뜻하는 것처럼, 질리지 않는 시대의 아이콘 포부가 담겼다. 그 시작도 놀라웠다. 데뷔곡 ‘Attention’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다섯 명의 소녀들은, 푸른색 계열의 스포티한 옷을 입고 긴 생머리를 흩날린다. 이들은 청량한 이미지를 강조해 현시대 '청춘'의 대명사로 거듭났다.
그리고 여기, 또 다른 청춘을 노래하는 걸그룹이 있다. 바로 ‘tripleS(트리플에스)’다. tripleS는 지난 2023년 2월 13일에 데뷔한 모드하우스 소속 24인조 다국적 걸그룹이다. 케이팝 역사상 멤버 수가 24명인 그룹은 이들이 유일무이하다. 트리플에스의 활동 방식은 조금 독특하다. 새로운 조합의 유닛을 계속해서 만들어가는 그룹이기 때문인데, 그 유닛을 DIMENSION(디멘션)이라고 부른다.
또한 각각의 디멘션이 앨범을 발매해 음악방송에 출연할 때는, ‘Debut’의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Comeback’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서로 다른 유닛이어도 새로운 그룹이 아니라 트리플에스라는 한 그룹 내의 활동으로 여긴다고 볼 수 있다. ‘모든 가능성의 아이돌’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안에서 자유롭게 결성되고 흩어지는 트리플에스. 그들이 사회에 제시하려는 그 ‘가능성’은 무엇일까? 다음 3곡의 대표곡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트리플에스를 대표하는 곡에는 모두 ‘La La La’로 시작한다. 그 첫 시작은 2022년 9월 25일에 결성된 첫 번째 유닛, AAA의 ‘Generation’이다. 앨범의 이름은 [ACCESS]로, 타이틀곡의 노래, 뮤직비디오는 현실적인 서울 소녀들의 모습을 담았다.
뮤직비디오의 시작은, 검은색 옷을 맞춰 입은 소녀들이 SNS 영상을 찍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곧이어 하얀 옷의 선생님이 등장하자, 소녀들은 얼음처럼 굳은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유로움이 되고자, 자기 취향에 맞는 옷을 갖춰 입고 핸드폰 영상과 함께 서울 곳곳을 누비며 춤을 추고 영상을 찍는다.
‘Generation’은 특히 현실적인 모습이 정말 많이 고증된 점으로 공감을 샀다. 점점 고도화된 디지털 사회에서 각종 SNS와 영상들로 청소년 세대들도 자기를 표현하려는 욕구가 강해졌다. 이를 그대로 반영하는 듯, 가사에서는 ‘나는 내가 좋은 걸 High 너의 관심 시선 하트까지’를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 또 뮤직비디오에서는 자유롭게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이 각종 SNS에 담긴 것처럼 연출된다.
익숙한 아파트 단지의 길거리, 지하철역, 건물의 엘리베이터 등. 너무나도 익숙한 공간들이 소녀들에게는 꿈을 펼칠 무대가 된다. 자유로워지고 싶은 꿈에서는 우리가 주인이고, 또 시대의 아이콘이라는 메시지를, 누구나 느끼고 있는 생각과 잠재된 욕구로 풀어내고 있다. 이렇게 곳곳을 무대로 춤추던 4명의 소녀는 노래 끝에서 결국 현실로 돌아와 다시 검은색 옷을 맞춰 입고 춤을 춘다. 하지만 꿈이 곧 현실이 되는 듯. 또 현실에서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듯. 처음 입고 나온 모던한 스타일의 옷과 달리 각자의 방식으로 커스텀 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소 어두운 무드와 비트의 ‘La La La La La’로 시작하는 ‘Rising’은 2023년 2월 13일에 발매한 트리플에스의 첫 번째 EP이자 데뷔 앨범이다. 전체 완전체(24명)는 아니지만, 새해마다 열리는 자연발생 DIMENSION까지 모인 ‘Rising’ 10인조 또한 완전체로 본다.
‘Rising’의 뮤직비디오에는 ‘Generation’처럼 검은 옷을 입은 소녀들이 버스에서 리듬을 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검은색은 현실, 그 외 다채로운 색감은 자신의 개성을 표현한 꿈임을 알 수 있다. 버스정류장에서 다채로운 4명의 소녀가 동작을 맞춰보며 춤을 추지만, 그 옆 학생들은 가사처럼 소녀들을 향해 박수 세례를 보내지만, 뒤에선 위선뿐이다.
그러나 소녀들은 그런 시선 따윈 상관없이, 자신만을 믿으며 춤을 추겠다고 노래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다른 소녀들이 하나둘씩 모이더니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대형을 맞춰보며 ‘Rising’ 노래에 맞춰 춤을 춘다. 그러면서 하나가 된 이들은 노랫말로 ‘비바람 좀 더 세게, 더 강해질 내게 바래’라며 어떤 시선도 이겨내겠다는 다짐을 전한다. 이어진 장면에서는, 다시 검은 옷을 입은 소녀들이 보인다. 그들은 핸드폰 불빛으로 무대의 조명을 만들고 가운데 춤을 추는 이들을 위한 무대를 꾸민다. 아무도 우리를 달갑게 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스스로 무대가 되겠다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한 번쯤은 모든 대중에게 사랑받는 댄서가 되고 싶다는 상상을 했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무대 아래에서. 또 여전히 어두운 옷을 입고 핸드폰 불빛으로 응원하던 소녀들은 무대 아래에서 무대 위 자신들을 그려보며 꿈을 꾼다.
최근 발매된 트리플에스의 ‘Girls Never Die’는 24인조 완전체로 무대를 풍성하게 꾸린 곡으로, 오직 희망만 있을 것처럼 느껴지던 꿈 아래, 현실의 씁쓸함과 공허함을 표현한 곡이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듯, 뮤직비디오의 시작은 까만 새가 깃털을 흩날리며 추락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Rising’의 활동 멤버 수를 떠올리게 하는 9명의 소녀는, 누군가의 죽음을 추모하기라도 하는 듯 묘지를 둘러싸고 있다. 가사 ‘세상은 늘 화려한 꿈 내 눈이 멀게 눈부셔’와 상반되는 장면으로, 소녀들은 텐트를 방으로 삼아 생활한다.
현실은 꿈처럼 달콤하지 않고, 보이는 것과 달리 고통과 시련을 분명하게 겪는다. 이에 소녀들은 욕조에 물을 받아 고의로 잠수하기도, 감정을 감추려 화장을 진하게 덧바르기도, 또 횡단보도에서 아슬하게 사고를 면하기도 한다. 그때 검은 날개 반쪽을 나눠 단 소녀 2명이 화면에 등장한다. 그리고 욕조에 잠식당한 소녀 앞으로 몸을 담그며 들어온다. 위기 앞에서 눈을 마주 보며 ‘다시 해볼까’라며 용기를 얻은 소녀는, 다른 소녀와 손을 맞잡고 건물에서 힘차게 하강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 가진 날개를 하나로 합쳐 한 마리의 검은 새로 태어난다. 뮤직비디오는 마지막 장면에서 트리플에스의 멤버 수 24마리가 아닌 23마리의 까만 새가 자유롭게 하늘 위로 날아오르며 끝난다. 24명의 소녀에게는 추락이 곧 죽음이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쓰러져도 일어나, We Go We High’라는 가사처럼, 그 어떤 추락과 하강이라도, 함께한 모든 것들은 반드시 상승함을 믿기 때문이다. 하나가 된 두 소녀의 모습이, 또 힘차게 비상하는 트리플에스의 모습이, 그들의 슬로건 <우리는 하나이자 스물넷입니다>를 단단하게 설명해 준다.
24인조라는 전례 없는 가능성을 보여준 트리플에스. 그들만이 가지는 진실한 이야기와 침착한 설득은, 이 시대 미디어의 순기능과 예술 활동의 역할에 대해 곱씹어보게 된다. 디지털 사회가 급성장함에 따라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SNS가 넘쳐나게 됐다. 이에 따라 표현하고 싶은 욕구와 더불어 각종 감정이 뒤섞인 사회가 지금의 모습이다. 그리고 학생의 신분으로, 명확함 없이 흔들리며 성장하는 세대에게 이런 사회는 종종 넘쳐나는 괴로움을 만들기도 한다. 트리플에스의 소녀들처럼, 자유롭게 춤추고 싶다가도 주변의 시선과 좌절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때 트리플에스는 부풀어있지 않은, 현실적인 희망을 건넨다. ‘Girls Never Die’의 “우린 본질 속에 진주가 될래”라는 가사처럼,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만든다. 그렇게 자신의 진주를 찾을 수 있도록 격려한다. 또 그 과정에서 어떤 고난이 있어도, 함께 이겨낸다면 결코 추락은 없을 거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로써 꿈만 같고, 화려한 모습이 아이돌의 전부가 아님을 일러준다. 트리플에스는 뉴진스와 대비되어 ‘어두운 뉴진스’라는 타이틀로 불리곤 했다. 물론 모든 곡이 그렇진 않지만, 어두운 옷과 분위기는 처음 발매된 곡 ‘Generation’의 가사 “데카당스 이곳으로 날 던져 Generation”로 알 수 있다.
이때 데카당스란, 단어 자체로는 ‘퇴폐’, ‘쇠락’을 뜻한다. 하지만 19세기 프랑스에서 시작한 문예사조에서는 ‘퇴폐적이면서 한편으로는 예술적인 것’을 지칭한다. 분명 우리에게도 언젠가 지나갔을 검은 새의 그림자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예술처럼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게 어두움마저 수면 위로 꺼내 공감하고 나누며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것. 보이고 들리는 것에서 더 나아가 공중과 하나가 되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자'는 가능성과 함께 뻗어나가는 것이, 진정한 아이돌, 우상의 모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