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밑, 맨 오른쪽 서랍장은 나의 큰 보물 상자다. 내가 아끼고 소중해하는 갖가지 물건들이 들어 있으니 보물 창고라고 해도 무방하다. 아주 어렸을 때 좋아했던 캐릭터 스티커들부터 직접 만든 소품들, 그리고 좋아하는 앨범 CD들과 엘피들까지. 나의 추억을 차곡차곡 담아 넣은 서랍장은 어느새 나의 진심과 취향까지 묻어나는 서랍장이 되어 있었다.
"돈 주고도 못 살 무언가"라는 관용어가 있다. 이는 돈 주고도 살 수 없을 만큼 아주 소중한 것들을 모아 일컫는 말이다. 서랍장 속엔 아주 오래된 신발 상자 두 박스가 있다. 두 박스는 말 그대로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것들이다. 그리고 말이 품고 있는 의미처럼 아주 아주 소중하다.
나의 두 편지 상자.
나는 편지를 좋아한다. 편지지를 고르고, 편지를 쓰고, 편지지를 꾸미고, 편지지를 동봉해서 상대방에게 전달해 주고, 상대방에게 답장을 받는 행위까지의 과정을 사랑한다. 유치원에서 어버이날을 기념해서 엄마 아빠에게 쓴 편지들을 제외해도, 혼자서 또박또박 그렇지만 간간이 잘못된 맞춤법이 보이는 편지들이 엄마 아빠 방 서랍장에 꽂혀 있는 것을 보면 나는 꽤 어릴 때부터 편지를 좋아했던 것 같다.
나의 편지 호황기는 초등학생 때였다. 일기를 쓰는 것보다 더 부지런히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곤 했으니깐 말이다. 편지를 받으면 그에 대한 답장을, 답신이 오면 답신에 대한 답장을 보냈다. 답장에 답장을 보내는, 이 과정을 정말 여러 번 반복했다. 영원히 우리의 편지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참으로 어여쁜 믿음들이 있었다.
가끔 그 시절에 받았던 편지를 읽어보면 피식피식 웃음이 난다. '이런 이야기들을 하니깐 매일 매일 편지를 쓸 수 있었겠지..' 그렇다. 그때 나와 친구들에게 편지란, 서로의 페이지를 뜯어 보관할 수 있는 교환 일기에 가까웠다.
이처럼, 어렸을 때는 특별한 날이 아닌 그저 평범하디 평범한 날에도 편지를 보냈다. 평범한 날에 받은 편지들이 더 기분 좋고, 설렌다는 것을 경험해 본 나는 아직도 깜짝 편지의 맛을 잊지 않고 있다. 몽실몽실하고, 펼치기 전까지 부푼 기대감을 안게 만드는 편지.
하지만, 디지털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편지는 점차 생일이나 기념일에만 주는 덤 선물이 되어가는 분위기다. 편지의 낭만을 잊고 지내는 사람들이 안타깝다. 가끔 문득문득, 예전이 그립기도 하지만, 반대로 이런 기류 덕분에 편지를 더욱 소중하게 품게 되었다.
라쿠나 장경민 님이 블로그에 '생일은 유독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게 강렬히 느껴지는 날'이라는 말을 남기신 적이 있다. 생일날만큼은 편지를 전달해 주는 문화 덕분에 내가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이 증명 되는 것 같다. 생일이라고 꼬박꼬박 편지를 챙겨 건네는 친구들이 있어 참으로 행복하다.
나는 편지의 힘을 믿는다. 편지지 속은 내가 가장 솔직해지는 공간이다. 감정이 말보다 앞서, 하고 싶은 말을 몽땅 털어놓지 못하고 울기만 하는 나에게, 사랑을 대놓고 외치기에 부끄러워하는 나에게 편지지는 숨을 공간을 아낌없이 제공해 준다. 왜인지 편지를 쓸 때는 솔직해지고, 용감해진다. 무의식중에 입고 있던 나의 망토 한 겹을 벗은 기분이랄까. 덕분에, 나는 편지로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나의 진심을 전한다.
해가 지나도 한 구절은 외우고 있는, 내게 항상 응원이 되는 몇 편의 편지들이 있다. 그중 지난 생일에 받았던 편지를 실어본다.
어떨 땐 네가 나랑 비슷한 사람이라고 느껴, 그래서 더 마음이 갔을 수도 있겠다. 내가 본 너는 마냥 밝고 잘 웃는 예쁜 동생 같다가도, 속은 또 여려서 꽤 상처 받으며 자랐겠구나 싶고,,, 그러다가도 문득 문득 던지는 말에 누구보다 단단한 마음이 느껴져서, 언니인 내가 오히려 위로 받고 힘을 얻게 될 때도 있어 ㅎㅎ 그럴 때마다 나는 '서영이가 참 큰 사람이구나, 스스로 알게 될 때는 더 멋진 사람이 돼 있겠구나' 한다!
알지 못했던 모습의 나를, 잊고 있었던 나를, 나에게 소개해 주는 편지들을 써주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나에게 사랑을 보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
PS. 소중한 사람들에게 짧아도 괜찮으니, 글로써 마음을 전달해 보는 것은 어떨까.
2024년 여름날
사랑을 담아, 서영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