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톤먼트>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어 단어 ‘Atonement’는 ‘속죄’를 뜻한다. 속죄한다는 것은, 죄를 지은 누군가가 그 대가를 치르고 속량 받는 일을 말한다. 영화에서는 속죄하는 인물이 주인공 ‘브라이오니’로 그려진다. <레이디버그>, <작은 아씨들>로 이름을 알린 배우 ‘시얼샤 로넌’이 어린 브라이오니의 역을 맡았으며, 그녀의 언니, 세실리아는 <오만과 편견> 여자주인공 ‘키이라 나이틀리’가 연기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브라이오니는 영화에서 죄를 짓고 속죄를 이어갈까? 정열적인 사랑, 뜨거운 영국의 여름, 긴장감이 겉도는 이야기 그 한가운데로 당신을 초대한다.
브라이오니의 언니 세실리아와 로비는 서로를 사랑하는 사이였다. 브라이오니가 속죄해야만 했던 원인은, 과거 목격한 사건들에 있다. 어느 날, 로비는 마음을 담아 편지를 보내게 된다. 우연히 로비의 편지를 받게 된 브라이오니는 성숙한 사랑, 그리고 성에 대해 어린 시각으로, 그릇된 관념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세실리아, 로비의 애틋하면서도 정열적인 사랑을 오해하게 되는데, 과장과 외전으로 말을 꾸며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결국 로비는 감옥과 군대 중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군대를 택한다. 영화의 배경이 세계 2차 대전이 이루어지던 1930년대였기에, 영국 군대로 파견되어 전쟁에 참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세실리아에게로 돌아가기 위해 하루하루를 고독하게 버티는 로비.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 모두 로비처럼 집으로 돌아가기를 고대한다.
하지만, 로비는 집에 돌아가는 날을 하루 남기고 병세가 악화하여 세상을 떠나게 된다. 세실리아도 마찬가지다. 로비와의 만남을 고대하다 지하 수도가 폭발하는 사고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게 된다. 결국 그 둘 사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던 브라이오니만이 모든 이야기를 알고 있는 존재로 남아있게 된다. 어릴 적 자신의 행적에 대해 속죄하며, 이야기 속에서나마 두 사람이 행복해지길 염원하는 마음으로 소설 <어톤먼트>를 세상 밖으로 내놓았다.
영화에서 무엇보다도 눈에 띄었던 부분은 원작을 알맞게 각색, 연출한 것이다. 영국 소설가 ‘이안 매큐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영화에 맞게 스토리를 알맞게 각색했다. 특히 시간 순서대로 흘러가는 플롯을 구성하다가 마지막에 브라이오니의 속죄로 평이하게 이어졌던 이야기 흐름을 한 번 끊고 다시 이어진다.
무엇보다도 브라이오니가 소설을 타자기로 작성하기 때문에, 영화의 배경음악이 타자기로 작곡된 점을 주목할 만하다. 그녀가 잘못된 것을 말하거나, 상상 속 일들을 입 밖으로 꺼낼 때마다 거짓말임을 알리는 듯 빠른 리듬으로 타이핑하는 소리가 음악으로 흐른다.
이 빠른 리듬감은, 음악뿐만 아니라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과거 세실리아와 로비가 함께 있는 것을 목격한 브라이오니가 그 모습을 오해한 탓에 빠르게 거짓말과 과장으로 퍼져나간 시퀀스가 있다. 여러 이해관계자에 진술하는 모습이, 또 그 배경이 빠른 템포로 바뀌고, 카메라는 브라이오니의 모습을 다급하게 쫓아가는 듯하게 연출한다. 이를 통해, 그 긴박함과 다급함. 또 앞으로 일파만파 커지게 될 일을 어렴풋이 엿볼 수 있다.
더 나아가 1930년대 영국의 따듯한 봄, 여름을 담은 아름다운 풍경과 평화로운 모습. 그러나 이와 상반되게 후반부로 갈수록 몰아치는 전쟁의 아픔과 상실 등이 대조되면서 더더욱 가슴 한 쪽에 아린 이야기로 와닿는다.
영화에는 브라이오니의 거짓말과 그릇된 시각으로 야기하는 사건들이 결국 로비와 세실리아를 갈라놓게 한다. 그러나 그 외에도 짚어볼 만한 몇 가지 주제가 있다. 먼저, 전쟁에서 마주하는 폭력성이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영화는 1930년대 영국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세계 2차대전으로 수많은 젊음이 희생되어야 했던 때가 배경인데, 로비처럼 감히 수를 헤아릴 수도 없는 군인들이 집으로 돌아가기를 소망한다.
로비가 전쟁에 참전하며 소녀들의 사체가 정리되지 않은 참혹함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길고 긴 전쟁 끝 무렵, 로비가 덩케르크에 다다랐던 장면이 그 장면과 상반된다. 일부 군인들은 누군가를 해쳐야 한다는 생각 대신, 회전목마를 타고 여가를 보내는가 하면, 일부 군인들이 한 곳을 응시한 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염원을 담은 노래를 부른다.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전쟁에서 발생하는 물리적 폭력들이 아직도 회피와 속죄로 남아있는 것처럼, 영화에서는 직접적이면서 간접적으로 ‘폭력’의 한 시각을 제시했다.
또 성(性)과 관련된 폭력과도 연결된다. 세실리아와 브라이오니에겐 오빠가 있다. 이름은 리옹. 그리고 그의 친구 ‘폴 마샬’은 아무도 보지 않는 풀숲에서 성폭행을 저지르게 된다. 그 광경을 본 브라이오니는 폭행범이 ‘로비’라며 거짓으로 진술해버린다. 결국 마샬은 아무 일 없는 듯 결혼하게 되는데, 사회적인 지위에 올라 영위롭게 생활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연출된다.
이런 장면들은, 사회를 냉철하게 찌르는 역할을 한다. 독일은 아직도 전쟁 피해자들을 생각하며 진심으로 과거를 돌아보며 반성한다. 반면, 여전히 사회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을 회피하며 2차 폭력을 가하는 이들도 있다. 진심으로 속죄하거나 아무일 없는 듯 회피하거나. 문제를 수습하려는 각각의 삶의 태도는 현재까지도 많은 이에게 가치의 기준과 비판점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 질문을 주인공 ‘브라이오니’에게도 묻게 된다. 브라이오니는 폴 마샬의 결혼식에서 무언가를 깨달은 후 세실리아와 로비에게 속죄하러 나선다. 하지만, 이 속죄마저 ‘거짓말’이라면. 또 속죄가 오직 그녀가 출간한 책에서 이루어진다면 어떻겠는가? 브라이오니는 ‘책’을 출간함으로써 자신의 잘못에 대해 속죄했다. 영화를 본 관람객 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두 사람에게 닿지 못하므로 그 태도는 이기적이고 오만함이다.”라고 생각하는 편도, “이제라도 속죄한 모습은 충분히 용서될 만하다.”고 인물을 감싸는 편도 있다. 그러나 세실리아와 로비의 이루지 못한 ‘행복’을 위한 출간이었으나 정작 누구에게 닿는 행복인지는 알 수 없다. 그 모순만은 명확하다.
영화 <어톤먼트>는 <오만과 편견> 감독 ‘조 라이트’의 영화로, 고전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점에서 상당 부분 <오만과 편견>을 떠올리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덩케르크에서 남자주인공 로비가 전쟁터를 걸어가는 시퀀스에서는 하나의 긴 롱테이크로 촬영되어 영화 <덩케르크>, 또는 <1917>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브라이오니가 그린 소설 속, 세실리아와 로비의 모습이 바닷가를 거니는 연인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장면에서는, <인셉션>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마리옹 꼬띠아르가 회색빛의 광활한 해변을 걷는 장면과도 오버랩됐다.
청춘의 사랑을 ‘여름의 푸르름’으로만 담지 않고 조금은 서늘한 연출과 플롯으로 관람객들을 사로잡은 영화 <어톤먼트>. 신선하리만큼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 이야기는, 탁월한 영상미뿐만 아니라 긴장감 넘치는 사운드와 구성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절묘하게 쥐고 미세한 떨림을 선사한다. 그 울림 끝에서는, 상실의 서늘함이 차갑지만은 않은, 1930년대 영국의 여름으로 기억될 것이다. 세실리아가 햇살이 내리쬐는 어느 오후에 분수대로 뛰어들던, 로비와 꽃다발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던, 애틋한 만남 속 미래를 기약하던 따듯함과 영원함 같은 것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