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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인사이트 Sep 04. 2024

관광객 모드 발동


나는 폴란드의 가을, 겨울 학기와 봄, 여름 학기 모두를 경험했다. 계절마다 매력이 분명했다.

 

어떤 사람들은 유럽의 가을 겨울의 낮이 몹시 짧기에, 우울함에 잠식될 수 있다고 충고한다. 어둠이 누군가의 마음을 잡아먹은 적은 있겠지만, 적어도 나의 마음은 어둠에게 내어주지 않았다. 내가 경험한 유럽의 어둠은 컴컴하지 않았다. 밤이 빨리 찾아오는 만큼, 더 멋진 야경들과 조명들이 도시를 밝혀주었다. 나는 가을 겨울에 소중한 추억들을 많이 쌓았다.

 

하지만 그런데도, 누군가 내게 폴란드에 한 학기만 머무를 수 있다고 한다면, 나는 봄 여름 학기를 택할 것이다. 가을 겨울의 추억 양과 비교해서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비교해 보았을 때 봄여름 학기의 내가 모든 면에서 조금 더 가벼웠기 때문이다.

 

사실 나의 두 번째 학기는 계획되어 있지 않았다. 짧지만 길었던 고민 끝에 나는 한 학기 연장을 택했고, 방학에 한국에 들어와 비자를 다시 발급받고 폴란드로 향했다.

 

두 번째 학기, 즉 봄 여름 학기에 나는 정말 걱정 없이 행복했다. 두 번째 학기를 기대하지 않아서일까, 별 탈 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모든 게 익숙해진 덕분에 더 이상 새로 적응해 나갈 것이 없었다. 만약 있었더라도, 새로운 환경에 뛰어드는 용기가 반년 새 커졌기에 쉽게 헤쳐 나갔을 것 같다.

 

모임에 자주 참여하고자 노력했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폴란드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친구들 덕분에, 폴란드라는 나라에 대한 애정이 더욱 커졌다. 그 중, 나와 가장 마음이 잘 맞았던 친구가 있다. A라는 친구이다.

 

나의 소중한 친구 A가 지난 월요일에 한국을 방문했다. 원래 9월 여행을 계획했는데, 나의 개강으로 인해 8월 말로 앞당겼다. 그렇다면, 내가 일주일 동안 함께 여행해야 하는 거야? 집순이인 나는 친구가 오기 전부터 걱정부터 한가득 안았다. 자신이 없었다. 나의 체력이 따라 줄지 미지수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친구와 서울 이곳저곳과 수원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결국 몸살이 나서 주말 내내 골골댔다.)

 

폴란드에서 1년간 생활하면서, 관광객 모드 발동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 깨달았다. '시간이 많으니까, 다음에 가면 되지, 다음에 해보면 되지' 라는 생각이 나의 시야를 점점 조여왔다. 출국하기 며칠 전에 관광객 모드를 발동해 크라쿠프 시내를 돌아다녀 보고 깨달았다. 이런 다짐의 날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면, 한국에서도 관광객 모드를 발동해 보겠다고.

 

A 친구 덕분에 나의 다짐을 생각보다 빨리 실천했다. 숨 막힐 듯이 더운 여름 태양 아래에서 낙산공원, 남산타워, 홍대, 성수, 수원 화성을 열심히 다녔다. 처음으로 경복궁에 한복을 입고 입장해 보았다.

 

일이 년 새에 서울의 주요 관광지가 외국 관광객들로 가득 찼다. 뿌듯하면서도, 이상하게 섭섭했다. 정작 한국 사람들이 더욱 한국스러움을 못 느끼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 때문인 것 같다.

 

 



한국의 아름다움이 좋다.

한국다움이 좋다.


선선한 가을이 오고 있다.

날을 잡고 서울을 찬찬히 걸어봐야겠다.

관광객 모드를 자주 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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