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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인사이트 Sep 28. 2024

이해에 의존하지 않는 수용의 온기를 읊다




〈딸에 대하여〉 속 엄마에게는 큰 걱정거리가 하나 있다. 바로 요양병원에서 돌보고 있는 어르신 제희다.

 

왕년에 작가로 활동했던 제희는 어려움을 겪는 전 세계 고아들을 후원하며 의미 있는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이제는 가족 하나 없는 치매 노인이 되어 열악한 시설에 보내질 위기에 처한다. 엄마는 상태가 좋지 않은 제희를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는 병원 직원과 말다툼하는가 하면 이제희재단을 찾아가 그동안 제희가 후원한 아이들의 명단을 받아 그들에게 연락을 돌리려 한다.

 

엄마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제희에게 과도한 관심을 쏟아붓는 것은 단지 그가 제희의 충실한 전담 요양보호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학 강사로 일하는 똑똑한 딸을 길러낸 고학력자 엄마에게 많이 배우고 많이 베풀었음에도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고 대접도 받지 못하는 제희의 상황은 부정하고 싶은, 그러나 자기에게 곧 다가올 미래다.

 

“저분 여기서 이런 대접 받으실 분이 아니에요.”라며 제희를 연민하는 그의 마음에는 자기도 나이가 들면 제희처럼 남들과 다를 것 하나 없는 평범한 노인으로 전락해 외롭게 죽어갈 거라는 두려움이 선연히 녹아 있다.    




엄마가 그 두려움의 해결책으로 삼는 것은 다름 아닌 딸의 미래다.

 

그는 동성 연인 레인과 수년간 교제 중인 그린에게 남자와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리기를 종용한다. 그렇게 하면 딸도 자기도 모두 의지할 곳 없이 홀로 늙어가는 암울한 미래를 피해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는 굳은 믿음에서다. 위층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처럼 남녀 부부가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이른바 ‘정상가족’만이 진정한 가족의 형태라고 생각하는 엄마에게 그린과 레인이 사랑의 힘으로 함께한 몇 년의 시간은 한낱 소꿉장난일 뿐이다.

 

그러나 그린과 레인의 관계를 고집스럽게 부정하던 엄마는 함께인 그들의 모습을 서서히 마주하기 시작한다. 그린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해고당한 동료 강사의 연대 시위에 앞장서다 다쳤다는 연락을 받고 응급실에 도착한 엄마는 그린의 옆에 먼저 와 있는 레인을 본다.

 

엄마가 커다란 수박을 들고 혼자 낑낑대며 올라야 했던 오르막을 그린과 레인은 수박을 한 손씩 나눠 들고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평온하게 오른다. 둘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엄마의 생각과 달리 두 사람은 이미 뿌리를 얽어 서로를 지탱하고 서 있는 두 어린나무처럼 삶의 무게를 나누어 지고 있었다.

 

엄마가 딸과 그의 동성 연인과 한집에서 생활하면서 교외의 낙후된 요양시설에 방치된 제희까지 자기 집에 모시기로 하는 것은 가족에 대한 그의 한결 옅어진 구분선을 짐작게 한다. 그는 되도록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던 레인과 어느새 식탁에 마주 앉아 함께 식사하고, 아무 사이도 아닌 제희를 레인과 함께 살뜰하게 보살핀다.

 

이런 그의 모습을 보면 남편과 사별한 엄마와 레즈비언 커플인 그린과 레인, 그리고 독거노인인 제희가 한데 모여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구운 빵을 나눠 먹는 평화로운 어느 따스한 오후의 장면은 어쩌면 이것도 하나의 가족일 수 있겠다는 엄마의 작고 비밀스러운 상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해가 수용에 선행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어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받아들이지 않기에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해에 의존하지 않는 수용의 온기를 읊는 〈딸에 대하여〉를 생각하며 세상에는 마음을 열어야 비로소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음을 되새긴다. 그리고 머릿속에 찬찬히 그려본다. 여전히 굳게 닫힌 수많은 문 앞에 서서 때를 기다리고 있을 무수한 이야기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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