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금속 공예를 하는 작가 이지오라고 합니다.
- 공예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먼저 여쭤보고 싶어요.
저는 미술대학교로 진학하여 금속공예과를 전공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금속공예를 접하고 시작하게 되었죠. 제가 다녔던 학교가 세공을 위주로 하는 학교는 아니었기 때문에 주로 다른 작업을 많이 진행 했었는데, 저는 어느 순간부터 주얼리가 너무 좋아지더라고요. 그래서 학교에서 거의 저 혼자 계속 주얼리 작업을 해오다가 지금으로 이어졌습니다.
- 작가님께서는 어째서 금속이라는 물성을 활용해서 작품을 제작하시는 것일까요?
표면적인 이유는 ‘제가 계속 금속공예를 하던 사람이기 때문’이지만, 사실 금속이라는 물성 자체가 굉장히 저에게 큰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기도 해요.
제가 평소에 하는 생각들은 굉장히 사라지기 쉽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잖아요. 그런데 그것을 현실 세계에 묶어서 표현할 수 있는 수단 중 금속이 제일 강한 현실감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일상 생활을 하며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가도 제가 만든 주얼리의 뾰족한 부분을 손으로 누르면 그 감각을 통해 저의 현실 감각이 돌아오는 느낌이 들거든요. 여기에 잘 망가지지 않는다는 특성까지 더해져 금속에 많은 매력을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 홀로 주얼리의 길을 걸어오셨다는 것도 참 멋있어요. 작가님께서는 주얼리가 왜 좋았나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요, 하하.
일단 저는 작고 귀여운 것들을 정말 많이 좋아해요. 크기는 작지만, 자세히 보면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 정말 좋았죠.
또 제가 빨리 질리고 성미가 급한 면이 있는데, 주얼리 작업은 한 개체를 만들고 다음 개체를 넘어가기까지의 시간이 굉장히 짧은 편이에요. 저는 크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 하나에 오랜 시간 집중하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단기간 내에 여러 다양한 작업물들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을 많이 느꼈어요.
- 그렇다면 작가님께서 처음 만들었던 금속공예 주얼리 작품을 소개해주신다면.
인어 꼬리를 형상화했던 반지를 만들었어요. 지금 시선으로 보기에는 완벽한 작업은 아니지만, 제가 그 당시 주얼리에 있어서 추구했던 바가 많이 드러났던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단정하고 정형적인 주얼리들보다는 비정형적이면서도 뻗어나가는 느낌의 작업을 그때부터 시작하기도 했고, ‘이 세상에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진행했던 작업이었거든요. 그래서 지금의 제 작업 정체성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의미가 깊은 반지입니다. 브랜드 EZO와 먼 미래 지구의 모습을 담아내는 'OO차원'
- 처음 EZO를 시작했을 때의 추억을 말씀해주시겠어요?
2020년에 처음 시즌제로 주얼리를 발표했었어요.
지금은 제가 현재 추구하는 방향성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서 그 당시에 게시했던 글은 다 내렸어요. 그때는 조금 더 사이버틱하고 우주적인 느낌이 강한 주얼리를 전개했었거든요.
사실 혼자서 시즌제를 진행한다는 것이 아무래도 무리가 있는 작업인데, 오직 주얼리를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무리해서 2021년 후반까지 한 시즌에 3개씩 준비해서 보여드렸던 것 같아요.
- 우주적인 느낌을 추구했던 그때와 지금 추구하는 방향성이 많이 다르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어떤 정체성을 주로 갖고 가고 계시나요?
처음 주얼리를 선보이기 시작했을 때는 오직 ‘멋져 보이는 것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었는데, 2022년 이후로 제가 진정 좋아하는 것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어요. 제가 어릴 적부터 게임, 만화 등을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특히 게임을 아주 좋아했죠. 그래서 현재의 서브컬처적이고 캐릭터성이 짙은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 그렇다면 초반에 작가님께서 생각하셨던 ‘멋져 보이는 것’은 무엇이었나요?
제가 초반에 결심했던 것 중 하나가 ‘주얼리를 하는 사람이 패션을 모르면 안 되니까 패션에 대해 잘 알아야겠다’ 였어요. 지금은 개인적으로 선호하지는 않는 시선이기는 하지만, 주얼리를 패션의 일부로 보는 시선이 있잖아요. 저도 그 당시에는 ‘주얼리를 잘 만들려면 패션에 대해서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죠. 그래서 다양한 패션 브랜드들을 많이 접하고 패션에 대한 시각을 넓혔는데, 그때 제가 좋아하고 ‘멋있다’고 생각했던 패션 브랜드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 저 또한 주얼리를 패션의 일부라고 생각할 때가 많은 것 같은데, 그 시선에 대해서 선호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하 이건 사실 제가 주얼리를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갖고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에요. 저는 주얼리를 패션의 부수적인 요소로 보이는 것에서 아쉬움을 느꼈거든요. 주얼리를 그 자체에 집중해서 패션의 부가적인 요소보다는 하나의 독립적인 개체이자 작품으로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더 있습니다.
- 현재는 귀여운 것들을 만들어낸다고 했는데.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귀여움’이란 무엇인가요?
저에게 귀여움이란 ‘수상하지만 갖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제가 주얼리를 시작하게 된 큰 계기 중 하나가 저의 소유욕과 물욕이거든요. 시각적으로 만족스러운 것을 보면 소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데, 저는 제 마음에 다는 작업물들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스스로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 저의 주얼리의 첫 시작이었기 때문에 ‘수상하지만 갖고 싶은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 세계관에 대하여 여쭤보고 싶어요. 정말 방대한 세계관을 세밀하게 구상하고 계시고, 그 세계관 속 캐릭터도 정말 다양하게 구성하신 것 같아요. 작가님의 세계관에 대해 소개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명확하게 지칭하는 제목이 아직 정해지지 않아 ’OO차원’이라고 표현하고 있어요. 이 OO차원에 대한 이야기를 제가 주얼리를 올릴 때마다 그 주얼리의 이야기와 함께 설명드리고 있죠.
OO차원은 지금으로부터 굉장히 먼 미래예요. 제가 생각하기에 아주 먼 시간의 간격은 다른 차원과도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OO차원에는 지금과는 다른 차원에서 살고 있는 존재들이 있는 거예요. 인간이 모두 멸종하고, 인간이 살아있을 당시 그들을 지키기 위해 만들었던 프로그램인, ‘엔젤라’라고 하는 개체들만 소수 남아있게 되죠.
인간들이 모종의 이유로 모두 멸종하니 엔젤라들의 목적은 사라졌어요. 남아있는 엔젤라마다 성격도 다르고 추구하는 바도 달라서 그 성격에 따라 인간들이 멸종한 이후의 행동을 하게 되죠.
예를 들어 엔젤라 중 하나인 ‘민트라’는 굉장히 원칙적이면서도 강한 성격을 소유하고 있어 연구자 포지션을 맡고 있어요. 인간이 모두 멸종해서 일을 할 필요가 없어졌음에도 원칙적인 성격 탓에 자기 일을 놓지 않고 어찌 보면 쓸모없는 일을 계속 반복하는 엔젤라입니다.
이와 같이 지켜야 하는 인간도 없고, 그 사실에 공허함을 느끼는 엔젤라들이 많은 상태에서 제정신을 유지하며 나만의 길을 선택한 엔젤라들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에요.
엔젤라들은 인간을 너무나도 그리워해서 인간의 영혼을 저장해놓았는데, 그 인간의 영혼을 기반으로 다시 창조하는 것이 '에키루'라는, 저의 세계관 속 마스코트 같은 존재들입니다. 이 에키루들은 자신을 창조한 엔젤라들과 어느 정도 닮은 면모를 갖고 있는데, 앞서 말씀드렸던 민트라의 에키루 ‘로로’는 다른 에키루들에 비해 조금 더 명석한 두뇌를 갖고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 굉장히 방대하면서도 깊은 세계관이네요. 이런 세계관은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을까요?
제가 평소에도 창작물들에 대한 설정이 있는 것을 굉장히 좋아해요. 그래서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게임을 할 때에도 꼭 설정부터 다 찾아보죠. 특히 세계관을 구상하는 작가님들께서 어떤 식으로 세계관을 구상하는지 보는 것을 굉장히 좋아해요. 그렇게 좋아하다 보니 저도 작품을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하나하나 고민해서 의미를 부여하며 점차 완성되기 시작한 거죠. 제가 아무것도 안 하고 생각만을 하는 시간을 갖는 경우도 매우 많은데, 그때도 이 OO차원 세계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요.
- 시간의 간극을 다른 차원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도 인상 깊어요.
제가 금속을 좋아하는 다른 이유이기도 해요.
금속의 물성 자체가 굉장히 망가지기 쉽지 않아요. 실제로 현대에 출토되는 유물들도 거의 다 도자기 혹은 금속이 많잖아요. 그래서 저도 주얼리들을 금속으로 굉장히 많이 만들어서 먼 미래에 저의 작업물들이 누군가에게 유물과도 같이 발견되었으면 좋겠다는 꿈과 목표가 있어요. 먼 미래의 누군가가 이것을 보고 한 번쯤 과거에 대해, 저의 세계관에 대해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죠. 그렇게 되면 저의 작업물들은 시간의 간극, 더 나아가 차원을 뛰어넘은 것과 마찬가지잖아요. 물론 제가 생전 유명해지고 많은 사랑을 받아도 참 좋을 것 같고 기쁠 테지만, 미래의 사람들에게 발견되는 그때가 저에게는 굉장히 의미가 깊을 것 같습니다.
- EZO의 대표작을 소개해주시겠어요?
<키메라 엔젤 네코루>라는 작업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키메라’는 실험을 통해 탄생한, 원래라면 존재하지 않았을 생명체를 의미해요. 이 친구는 키메라이기 때문에 날개가 두 쌍에 머리도 두 개인, 우리에게 굉장히 낯선 신체 구조로 되어 있어요. 그런데 사실 키메라의 존재는 다른 사람의 욕망, 일종의 악의에서 태어난 존재잖아요. 그런데 비록 그렇게 태어난 존재라고 할지라도 굉장히 평안하고,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전개한 작업이에요. 비록 어떤 의도를 갖고 자식을 낳고 생명을 탄생시켰을지라도 그 생명은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을 직접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있죠.
하지만 그렇다고 이 친구가 ‘주체성’과 ‘권리’ 등의 강렬한 단어랑 어울리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일반적으로 키메라들은 창조자들에 대해서 원망하거나 ‘나는 왜 태어났는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는 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이 친구가 자신이 태어난 과정에서 원망이나 해답을 찾으려는 의지 없이 평온하게 삶을 유영하듯 살 수 있는 존재가 되기를 바랐어요.
이 친구는 제가 만든 세계관에서 가장 공격력도 높고, 에키루의 머리와 엔젤라의 날개, 그리고 엔젤라가 예전에 대적했던 괴수의 심장을 가진 캐릭터입니다.
- 이렇게 세계관이 방대하면 금속공예 외에도 다양한 카테고리로 뻗어나가며 작품을 전개해도 좋을 것 같은데.
하하. 사실 주변인으로부터도 그런 제안이나 의견을 많이 들었어요. 실제로 저도 현재 소설 작업을 개인적으로 하고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는 금속 작업을 너무나도 좋아하고 있고, 금속 아니면 다른 것을 할 생각은 없다고 지금까지 계속 생각해 왔어요.
사실 금속 작업이라는 것이 금전적으로 필요한 부분이 많아요. 재료비, 작업실 등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배가 고픈 일이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수입이 많지 않은 초반에는 이 금속작업을 유지하는 것이 아주 힘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금속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제가 금속을 정말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지금 저 혼자서 금속 작업을 하며 저의 상상력을 펼치는 지금이 제일 행복한 것 같아요. 앞으로 이 세계관을 계속 전개해 갈 때에도 다른 물성이나 카테고리를 시도하기보다는, 이 세계관을 펼치면서 조금 더 규모가 있는 금속 작업을 하며 스토리를 많이 담아내고 싶습니다.
- 이번 '웁서울 2024'에 참여해 주셨는데, 이번 DP 때 가장 중요시한 부분이 있다면.
저는 '웁서울 2024'에서 제 세계관의 전경을 조금이라도 가져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에키루들이 탑에 서 있거나, 옆에 떠다니는 느낌으로 DP를 했죠.
지금 저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난색 위주로 구성이 되어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이 난색이라는 색 계열이 생명 활동과 굉장히 연관이 깊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저의 00차원은 더 이상 인간이 살지 않고 생명 활동을 하는 것들이 거의 없으니 난색이 모두 사라진 한색 위주의 전경을 구현해 냈습니다.
또한 에키루들은 전부 인공적으로 만들어지는 생명체이기에 사실 연구실 속에서 태어나는 생명이라고도 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아크릴 볼 안에 에키루들을 넣어 태어나는 중의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했습니다.
- 이번 웁서울에서 특별한 추억도 쌓았을 것 같은데.
지금까지 만든 에키루들 중에서도 제일 처음 만든 에키루가 있어요. 그런데 그 작품은 어떤 고객님께서 선물용으로 구매하셨죠.
그런데 이번 2024 웁서울에 그 작품을 선물 받으신 분께서 찾아와주셨어요. 저에게 ‘작품들이 너무 좋다, 선물 받았던 목걸이를 잘 간직하고 있다’ 말씀을 해주셨죠. 제일 처음 만든 에키루가 저의 작품을 좋아해 주시는 분과 소통까지 연결해 준 거예요.
그래서 그 에키루 목걸이를 제가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하하.
- 다음 오프라인 계획이 있으실까요?
사실 저는 들어오는 제안마다 거의 다 참여하고 있는 편이에요. 오프라인 작업은 항상 즐겁고, 제 작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랑도 만날 기회가 많으니 저도 그분들로부터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기회가 된다면 항상 오프라인에서 여러분을 만나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EZO 브랜드는 어떤 브랜드가 되길 바라나요?
제 작업 중 다수를 차지하는 작업이 조그마한 에키루 작업이에요. 저는 이 에키루들이 어찌 보면 제가 이 세계로 불러온 하나의 생명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제가 에키루들을 작업할 때 안쪽을 다 갈아서 비워내요. 그런데 여기에는 금속 특성상 질량감을 줄이기 위한 의도도 있지만, 안쪽이 비워져야 이 에키루들의 이름도 써줄 수 있고, 영혼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에키루들의 정체성에 있어서 꼭 필요한 작업이죠. 그래서 저의 작업물들을 하나의 생명체로서 소중하게 바라봐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