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9월 중순에도 낮 기온이 30도를 훌쩍 넘었다. 추석 연휴까지도 자는 내내 이불을 차 내버리게 만들었는데, 역시나 기상관측 아래 가장 늦은 열대야였다고 한다.
저번 주만 해도 몇 미터 걷는 동안 땀이 줄줄 났다. 이 더위가 영원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더니 다음날부터 어이없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단 하루 만에 가을이 된 것이다.
가을이 왔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여름이 지나간 것이다. 끈적하고, 화끈거리고, 또 얼기설기 뭉쳐서 찡그림을 자아내는 여름이 말이다. 둔탁한 주먹 같은 여름은 내게 그다지 반가운 계절이 아니다. 여름에는 온 힘을 다해 나를 짓누르는 것들에 기력을 놓고 끌려다니기도 한다.
산책하고 나면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뜨거운 땀이, 에어컨이 꺼지면 이불을 걷어차게 만드는 묵직한 공기가, 온종일 귀를 울리는 매미의 쨍한 목소리가. 쩍쩍 달라붙는 체온과 습도가.
자연스레 가을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됐다. 여름의 고통을 견디고 나서야 받을 수 있는 보상이 된 것이다. 더위 끝자락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 때야말로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철저하게 적용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부터 여름을 더 깊이 파고드는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일종의 고생 끝 환희를 극대화하기 위한 의식이랄까. 여름철에 할 것들 목록을 만들고, 일을 벌여 놓은 다음 꾸역꾸역 울면서 한다. 그게 무엇인지는 매해 여름마다 바뀐다.
올해는 사이드 스플릿, 다르게 말하면 ‘좌우 일자로 다리 찢기’라는 나름 거창한 계획을 세웠다. (유연함과는 거리가 먼 내 신체로 봤을 때 거창한 목표가 맞다) 사이드 스플릿은 매해 버킷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항목이기도 하다.
어릴 적부터 발레, 리본, 토슈즈, 깔끔하게 머리를 묶어 올린 하이번 같은 것들을 동경했다. 나풀나풀 가볍지만 우아한 동작들과 섬세한 선, 그리고 은은하게 반짝거리는 미소까지. 그 모든 요소는 마법 같은 아우라를 가진다.
’내가 저런 우아한 동작을 할 수 있다면‘하는 상상은 웨딩 피치, 카드캡터 체리를 보던 유치원생의 나만큼이나 눈을 반짝이게 만든다. 번거로운 것이 섞이지 않은 색감의 순수한 로망이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발레는 초등학교 입학 전 3개월, 약 3년 전 2주간 단기간 수업을 들어본 것이 전부다. 이런저런 이유로 지속하지 못하다가 (아마 초등학교 입학 후 다른 학원에 다니게 되면서, 결혼 준비로 인해) 이제야 다시 로망에 불을 지핀 것이다.
기어코 그것들을 실현해 내고자 이번 여름을 던졌다. 퇴근하고는 스트레칭 전문 학원에 가 수업을 듣고, 주말에는 요가 강사인 친구와 한강에서 만나 속성 과외를 받았다. 집에 있을 때도 바닥에 가능한 만큼 다리를 스트레칭하고 앉아 짧은 드라마 한 편이 끝날 때까지 버텼다.
그리고 글을 쓰는 지금. 나는 그렇게 꿈꾸던 사이드 스플릿을 완성하지 못했다. ‘결국 완벽한 다리 찢기에 성공했다’는 글을 쓰기 위해 장장 2개월 반을 노력했는데, 결실은 그리 풍성하진 않았다.
스플릿 각도 150도에서 가을을 맞았다. 사실 이 때문에 글을 올릴까, 주제를 바꿀까 여러 번 고민했다. 원하는 걸 성취했다는 결론에 다다르는 게 마땅하다고 여겼기 때문. 계획을 하나씩 도장깨기 하는 맛으로 살아가는 J(계획형 인간)로서 자존심도 상했다.
하지만 찬찬히 짚어보니 이것 또한 괜찮다고 생각한다. 여름이 지났다고 해서 내 로망이 끝난 건 아니니까. 다리 각도를 90도로 맞추기도 힘들었던 과거를 생각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이기도 하다. 이처럼 매일의 고생스러운 노력은 결국 무언가를 가져다준다. (같은 정도의 고생이 앞으로도 이어지면, 가을이 끝나기 전에는 원하는 수준에 이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
과일은 뜨거운 햇빛을 받고 자라야 더 달다고 한다.
그저께 마트에서 잘 익은 무화과를 골라 왔다. 어제 느지막이 일어나 브런치로 무화과 그릭요거트를 만들어 먹었다. 저녁에는 와인에 곁들이기 좋은 무화과 치즈구이. 무화과들 사이로 칼집 낸 브리치즈를 넣고 메이플 시럽을 한 바퀴 둘러 에어프라이어에 구워준다. 20분 만에 완성되는 간단한 레시피지만, 맛은 풍성한 근사한 안주가 된다.
따가운 햇살 아래 뛰어다니며 바쁘게 산 나도 조금은 당도가 높아졌을까. 무화과를 한입 베어 물며 생각했다.
뜨거운 여름은 매번 잘 익은 알맹이를 선물로 주고 떠난다. 그래서 가을이면 여름에 대한 이상한 애틋함이 느껴진다. 매일의 고집스러운 고생이 원하는 결과물을 못 냈다고 해서 가을바람을 느끼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누구보다 벅차게 가을을 받아들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