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안 마신 지 2년이나 됐을까. 꽤 오랜 시간 멀리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스트레스성 위염으로 병원을 들락날락하던 시절 의사 선생님께선 따끔한 충고를 건넸다. 카페인과 멀어지라는 말과 함께 미각을 상실한 사람처럼 전향했다.
근 2년 동안 카페에 방문하면 자연스럽게 티를 주문하는 나를 발견한다. 지인들은 내게 왜 커피를 안 마시냐고 물어본다. 그럴 때마다 나는 건강상의 이유로 마시지 못한다는 이유를 구구절절 대야 했다. 커피를 마실 때마다 밤에 잠 못 이루는 건 기본이며 속이 울렁거려 하루 종일 메스꺼운 속을 달래야 한다고 말한다. 억울한 표정으로 말한 나를 보고서야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거린다.
보통 카페에 가면 커피 마시는 게 일반적이다. 특히 캐모마일티나 민트 티를 시키면 돈 아깝지 않냐는 말까지 더불어 듣게 된다. 어느 날부터 못 마시는 이유를 설명하기 귀찮았다. 그래서 커피보다는 티를 좋아한다는 말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씁쓸한 커피 맛은 한동안 입안에 머금지 못한 채, 일상을 살아갔다.
이랬던 내가 최근 들어 커피를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커피를 찾게 됐다.
첫 출근 날, 카페에 들렀다. 메뉴 고민도 없이 평소와 똑같이 캐모마일 티를 주문했다. 한 손에는 가방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캐모마일 티를 들었다. 뭔가 부족해 보였다. 내가 원하는 직장인의 모습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유유히 걸어가는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언제 재발할지 모르는 위염으로 고생하기 싫어, 한동안 티만 마셨다. 하지만 피곤함과 폭염으로 인한 더위가 겹친 날, 갈증을 해소할 음료가 절실했다. 그날은 유독 더웠다. 도저히 밍밍한 캐모마일 티가 내 갈증을 씻겨줄 것 같지 않았다. 씁쓸하고 산미가 풍부한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직성이 풀릴 것만 같았다.
카페 키오스크 앞에서 한창 서성이며 고민한다. 마시고 나면 또 불면증에 시달리면 어떡할지, 하루 종일 속이 쓰려 신경 쓰이게 될까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는 더운 폭염을 이길 명분이 되지 못했다.
아마 커피 한 잔에 큰 결심을 하며 주문하는 사람이 나 말고 있을지 모르겠다. 일생일대의 결정을 마친 듯한 표정으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그것도 아주 큰 사이즈로 말이다. 얼음 가득 담긴 플라스틱 컵 안에 담긴 커피를 보자마자 반가웠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사람처럼, 미소를 보인 채 한 모금 마셨다. 온몸이 수혈하는 기분이었다. 시원하다 못해 정신까지 맑아지는 기분이랄까. 그날 나의 갈증은 완전히 씻겨나갔다.
이상하게도 몸에 아무 반응이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속이 울렁거려 하루를 온전히 보내지 못했을 텐데, 잠도 잘 자고 평소와 같이 보냈다. 내심 기뻤다. 드디어 나도 커피 한 잔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니. 씁쓸한 커피 맛으로 인생의 쓴맛을 논의할 수 있다는 엉뚱한 상상에 웃음이 나온다.
2년 동안 꾸준히 스트레스를 관리한 과거의 나에게 감사했다. 평생 못 마실 것 같았던 아메리카노를 마시게 된 시점부터 내 가치관도 점점 변했다. 여기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무슨 가치관을 논하냐고 의문이 들 수 있겠지만, 나에겐 꽤 큰 결심이었다. 하지 못할 것 같은 행동을 평생 묻어두고 살면 안 되겠구나, 다시 변화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끈끈한 다짐을 다진다.
아메리카노 같이 취향도 사람도 마찬가지다. 인생을 즐겁게 만들어주던 오랜 취미가 오히려 나를 해롭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내려놓게 되며, 이런 사람을 만나지 않겠다는 과거의 내가, 새로운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가치관이 두려울 때가 있다. 하지만 오랜 기둥처럼 세워둔 기준이 무너지고 새로운 토대를 쌓아갈 때 즐거움은 배가 된다. 알지 못했던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재미다.
하루에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사람이 됐다. 사소한 것이지만 일상을 꽤 윤택하게 만들어준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에게 잠시나마 짧은 말을 건넨다. 일상에서 고착했던 습관을 잠시 변화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작은 것일지라도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지 모른다. 다양한 자신의 세계를 유영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