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사회 속 축제 - 옥토버페스트

by 아트인사이트


얼마전, 뮌헨에 다녀왔다. 내가 살고 있는 튀빙겐에서 버스로 3시간을 달리면 뮌헨 중앙역에 도착한다. 시끌시끌 번잡한 기차역에 내리자, 눈길을 끄는 옷차림을 한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구글 지도를 켜지 않아도, 그 사람들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큰 광장에 도착한다.

흔히 맥주 축제라고 부르는, 옥토버페스트 (October Festival).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독일의 민속 축제이다. 매년 9월 말부터 10월 초, 독일 바이에른주에서 개최된다. 1810년부터 지금까지 그 역사를 이어오고 있으며 매년 약 600만 명의 인파가 몰린다고 한다.

역시나 그 명성답게 평일 낮 그리고 좋지 않은 날씨에 방문했음에도, 축제는 활기찼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민족 의상을 입은 채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디저트를 판매하는 상점과 기념품 가게가 빼곡히 들어서 있었고, 회전목마와 롤러코스터를 비롯한 많은 놀이기구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옥토버페스트에서는 6개의 역사 깊은 양조장이 옥토버페스트 비어를 제공하고 있다. 각 맥주 회사의 화려한 마차와 행진 또한 사람들에게 즐거운 볼거리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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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아우구스티너의 빅텐트에 들어서자,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많은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빼곡히 붙어 앉은 손님들과 그 사이를 능숙하게 지나다니는 서버들. 신선한 광경이었다. 앉아서 맥주와 닭고기 그리고 소세지를 먹다 보니, 흥겨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주변 사람들은 익숙하게 따라 부르며 일정한 구호에 맞춰서 건배하곤 했다. 독일 사람들에게는 저 노래가 어떤 노래인 걸까. 우리나라에서는 과연 어떤 노래를 남녀노소 따라 부를 수 있을까.

특별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조금은 아쉬운 혹은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어디에서나 한복을 입고 다니고, 민요를 따라 부르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들끼리 똘똘 뭉쳐서 애국심을 되새기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이벤트의 부재를, 그리고 그 필요성을 떠올린다.


현재 우리 대한민국은 저출생은 물론이고 심각한 고령화 사회이다. 며칠 전, 대한민국 평균 나이가 만 45세를 기록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연평균 0.5세씩 늘어나고 있는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고령화 사회는 힘겹다.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인구가 줄어들고 청년들의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피할 수 없어져 버린 고령화 사회에서의. 더 큰 문제를 포착한다. 바로 극심한 세대 갈등이다.

대한민국은 한국 전쟁 이후 50년도 안 되는 세월 동안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냈다. 흔히 '한강의 기적'이라고 말하는 이 짧고 놀라운 성장에는 심각한 부작용이 뒤따른다. 너무 빨리 변해버리는 세계, 그래서 각자가 살아온 세계가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경제 성장을 위해 다 같이 힘을 모으던 5~60대와,인터넷 발달로 인해 개성과 개인을 중시하는 2~30대는 서로를 이해하기 무척 어렵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이 당장 한집에 같이 살고, 평생을 함께한 엄마 아빠를 떠올려보자. 세대 차이를 실감했던 순간들이 분명히 스쳐 지나갈 것이다.

엄마 아빠는 고사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떠한가. 대가족이 사라지고, 핵가족화되면서 노인분들과 함께 생활하며 성장한 아이들은 매우 적다. 청년층은 일상에서 노년층을 보기 어렵고, 노년층은 일상에서 청년층을 보기 어렵다. 각자 사는 세계가 너무 뚜렷하게 분리되어 있기에. 각자의 세계를 넘나들기는커녕, 엿볼 기회 자체가 부족하다. 나의 경험을 떠올려보아도 기껏 해봤자 대중교통이나 은행에서 마주치는. 그렇게 그저 스쳐 지나가는 노인분들뿐이다.



20241009171215_lzvfehpw.jpg 세대 통합의 좋은 예시를 담고 있는 영화, <인턴, 2015>의 한 장면



그렇기에 나는 축제라는 공간을 보면서. 감히. 세대 갈등을 완화할 수 있는 좋은 쿠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좋은 축제는 사회 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에 있어서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좋은' 축제에는 여러 가지 조건이 따라 붙을 테지만, 오늘의 '좋은'은 곧 '모두가 즐길 수 있는'이 될 수 있겠다. 사회의 구성원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그리고 그 참여의 목적이 즐거움에 있는 이벤트가 필요하다. (일터에서의 만남은 서로에게 좋은 인상을 가져다주기 쉽지 않을테니 말이다)

'이웃'이 사라지고, 딱딱한 현관문과 아파트만이 남은 한국은. 일상에서 다양한 연령층을 즐겁고 수평적으로 만날 기회가 너무나도 적다. 아이와 청년, 노인, 그리고 이 세 가지 단어로 담을 수 없는 수많은 다양한 연령의 이웃들이 모여 조금 특별한 (너무 특별하면 안 된다) 일상을 함께 보내는 경험. 삶을 즐기는 모습을 함께 공유하는 것은. 노인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비약해 보자면, 어쩌면 축제는 모든 갈등 해소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고령화와 갈등으로 딱딱해진 사회에 다양성과 활기를 불어넣는 시도. 우리도 조금은 말랑말랑해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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