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때 중학생인 사촌 동생과 대화를 나눴다. 어렸을 때는 명절만 되면 같이 놀고 얘기도 많이 했던 것 같은데, 사촌동생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나서는 나를 서먹해하는 듯했다. 중학생 관심사를 알아오는 것이 내가 추석동안 해야 하는 학교 과제였기에, 이 과제를 핑계로 삼아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다.
관심사는 무엇인지, 요즘 중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어는 무엇인지, 친구들이랑 놀 때는 무엇을 하는지 등등에 대해 알게 됐다. 학교 규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사촌동생이 다니는 중학교에는 슬리퍼와 크록스를 등하교 시간에 신으면 안 되는 규정이 있다고 한다. 사촌동생은 이 규정이 불만이었다. 처음엔 실내화인 슬리퍼를 교실까지 신고 가면 교실이 더러워지니까 규정이 있겠거니 했다. 나도 중고등학생때 슬리퍼가 너무 편해서 선생님 눈을 피해 슬리퍼를 신고 등하교 한 적이 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사촌동생이 있는 중학교는 슬리퍼와 크록스가 실내화로 규정되지도 않았다. 실내화는 eva 실내화만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학생들도 불만이 있었고, 학교 선생님께 왜 안 되느냐고 물어도 봤다고 했다. 선생님께 돌아온 대답은 “몰라. 학교가 정한 거야”였다. 사촌동생은 이제는 규정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든다고 했다. 학생들이 학교 규정을 바꿀 순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 규정이 있었던 건 다른 선배들이 건의를 했어도 안 바뀌었다는 증거이고, 학생들은 얘기만 할 뿐 얘기해봤자 학교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당 학교에서 eva 실내화만 가능한 이유는 학생들의 질서를 지키기 위함일 것이다. 많은 이가 모이는 공적인 장소에서 어느 정도의 복장을 갖추는 것도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것 중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답변한 방식은 잘못됐다. 아무 이유 없이, 학교가 정한 거니까. 라는 답변은 학교에서 학생들이 얼마나 큰 영향을 받는지 간과한 듯하다.
청소년이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 구성원으로서 원활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회참여태도를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생활 지도에서부터 학생들의 사회참여태도를 기르기엔 역부족인 것처럼 보인다.
선거 이후만 되면 거의 고정적으로 나오는 기사가 있다. ‘20대 투표율 저조’, ‘20대 투표율 전 연령대 중 최저치’ 20대는 왜 정치에 관심이 없나. 왜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가. 라며 20대 청년들의 정치 참여 태도를 비판하는 이들도 많다. 그런데 학생들이 가치관을 형성하는 학교에서부터 학생들이 학교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무시하지 않는가. 지금의 20대는 그동안 중고등학교에서 ‘학교의 규정은 학교가 정하는 것이고, 그 규정은 학교의 질서를 위해 지켜야 한다’는 논리를 주입받았다.
혹자는 지금의 20대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연령대도 모두 그런 교육을 받아왔다고 할 것이다. 학교에서 규정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논리를 주입받아왔고, 어쩌면 더 먼 과거에는 더 강압적인 방식으로 주입받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학교 밖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1960년대부터 90년대까지는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를 몸소 실현한 시기이다. 이 시기의 학생들은 누가, 어디에서, 어떤 과정으로 민주주의를 퍼지게 했는지 직접 경험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다르다. 이미 어느 정도의 민주주의는 만연해 있고, 지금의 학생들은 태어날 때부터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왔기에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어렵다.
흔히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 작은 사회에서 학생들이 자신은 학교 규정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면, 학생들은 어디에서 민주주의를 배우고 말할 수 있을까.